[직업의 정석]"스타워즈 대신 SNL" 나는 특수분장사 오창렬입니다 > 채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Vancouver
Temp Max: 20°C
Temp Min: 16°C


채널

퓨처앤잡 | [직업의 정석]"스타워즈 대신 SNL" 나는 특수분장사 오창렬입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6-04 08:50 조회32회 댓글0건

본문

"당신은 왜 일하십니까?"

 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그야 물론 돈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밥벌이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구두닦이·사육사·버스기사…. 평범한 우리 이웃 14명의 입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일하는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직업의 정석: 당신은 왜 일하는가' 여섯 번째 주인공은 오창렬 씨입니다. / 특별취재팀 


그는 '고마운 사람들' 때문에 일한다. 사랆에게 상처받고 넘어졌을 때, 그를 일으켜준 것이 사람들이었다. 장진 감독부터 개그맨 정성호,유세윤,김민교,.tvN의 예능프로그램 'SNL' 제작진의 이름이 쏟아진다. SNL 트레이드마크인 패러디는 그들과 오창렬 씨의 합작품이다. 우상조 기자

그는 '고마운 사람들' 때문에 일한다. 사랆에게 상처받고 넘어졌을 때, 그를 일으켜준 것이 사람들이었다. 장진 감독부터 개그맨 정성호,유세윤,김민교,.tvN의 예능프로그램 'SNL' 제작진의 이름이 쏟아진다. SNL 트레이드마크인 패러디는 그들과 오창렬 씨의 합작품이다. 우상조 기자

 
할리우드를 꿈꾸다
한 때 연기자를 꿈꿨다. 하지만 군대를 제대하며 포기했다. 대신 분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연기자의 근처에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손재주, 그림 솜씨가 있으니, 조지 루커스 감독의 '스타워즈' 같은 작품을 하면 짜릿하겠다 싶기도 했다. 신문에 실린 특수분장사의 기고문을 보고 그를 찾아갔다. 일하고 싶다는 그에게 특수분장사는 딱 잘라 말했다. “한국에는 일이 없다.”
 
 아쉬운 대로 연극판에 들어가 분장 일을 했다. 하지만 그것만 하다가는 ‘스타워즈’ 근처에도 못 갈 것만 같았다. 유학을 가기로 결심하고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 꽃집 아르바이트, 남대문 밥 배달…. 미국은 비자 받는 게 까다로워, 캐나다로 가기로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이었다.
 
 캐나다에서 만난 특수분장은 ‘신세계’였다. 당시 국내에선 특수분장이라고 하면 사극에 출연하는 배우에게 수염을 붙여주는 일 정도로만 생각했다. 반면 캐나다에선 얼굴·신체 본을 뜨고, 그 모양을 살려 채색을 하는 데만 최대 몇 주일을 썼다. 섬세하고 지난한 작업이었다. 
  

'스타워즈'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유학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특수분장 공부를 하고 돌아왔지만 일거리가 없었다. 밥벌이와 꿈 사이에서 방황했다. 우상조 기자

'스타워즈'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유학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특수분장 공부를 하고 돌아왔지만 일거리가 없었다. 밥벌이와 꿈 사이에서 방황했다. 우상조 기자

 
"날 잡았으니 들어오너라.”
 199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특수분장학교에 다니던 오창렬(47) 씨에게 부모님의 일방적인 통보가 떨어졌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결혼날짜를 잡았다니. 할리우드가 코앞에 있는데, 이제야 어릴 때부터 그려오던 꿈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게 됐는데. 
 
 예식장까지 잡아놓은 완강한 부모님을 이길 순 없었다. 그는 일단 결혼식을 올리고 다시 미국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하며 귀국했다.하지만 2년의 유학 기간을 꼬박 기다려준 아내는 그와 달리 미국행을 원치 않았다.
  

특수분장은 배우가 캐스팅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먼저 배우의 신체 부위 모양을 뜬다. 그리고 역에 맞게 새롭게 그려낸다. 채색과 붙이는 작업까지 마쳐야 일이 끝난다. 통상 제작에 일주일 남짓 시간이 걸린다. 우상조 기자

특수분장은 배우가 캐스팅되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먼저 배우의 신체 부위 모양을 뜬다. 그리고 역에 맞게 새롭게 그려낸다. 채색과 붙이는 작업까지 마쳐야 일이 끝난다. 통상 제작에 일주일 남짓 시간이 걸린다. 우상조 기자



영화판에 가다 
 가장이 됐으니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일감이 없었다. 6개월간 한 푼도 벌지 못했다. 살길이 막막했다. 특수분장 일이 없으니 소품 제작이라도 해야 했다. 방송국 소품팀 일을 얻어 밥벌이를 했는데, 일을 하면 할 수록 ‘내가 이거 하려고 공부한게 아닌데’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직서를 내고 찾아간 곳은 영화 세트 업체. 일 좀 하게 해달라고 사장님에게 매달렸다. 사무실 한 귀퉁이에 책상을 하나 두고 영화 특수 소품을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한 번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김현정 감독, 한석규 주연의 '이중간첩'(2002년)이었다. 뛸듯이 기뻤다. 
  

신정원 감독의 '시실리 2km'를 촬영할 때 모습. 오창렬(오른쪽)씨가 배우 권오중(왼쪽)씨에게 분장을 해주고 있다. [사진 오창렬]

신정원 감독의 '시실리 2km'를 촬영할 때 모습. 오창렬(오른쪽)씨가 배우 권오중(왼쪽)씨에게 분장을 해주고 있다. [사진 오창렬]

 
 이듬해는 특수분장 비중이 좀더 높은 작품이 들어왔다. 김은숙 감독, 이성재·송승헌·김하늘 주연의 '빙우’(2004년)란 작품이었다. 근 1년을 알래스카와 인접한 캐나다 유콘에서 촬영을 했다. 흥행은 못했지만 이 영화를 하면 ‘특수분장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해 신정원 감독의 ‘시실리 2㎞'에서는 아예 특수분장과 헤어, 메이크업 일을 도맡았다. 
 이듬해 한 미술감독의 소개로 장진 감독을 만났다. 그와 함께 한 첫 작품이 '박수칠 때 떠나라'(2005년)였다. ‘거룩한 계보’(2006년)와 ‘아들’(2007년)까지 내리 3년을 장 감독과 함께 일했다. 
  

지하철을 타면 그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사람들 눈가의 잔주름, 옷차림새를 눈에 담아 두었다가 재현하려 노력한다. 우상조 기자

지하철을 타면 그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사람들 눈가의 잔주름, 옷차림새를 눈에 담아 두었다가 재현하려 노력한다. 우상조 기자

 
 밥벌이와 꿈, 그 갈림길
 일을 못할 땐 일만 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일거리가 계속 들어오자 슬슬 딴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영화판에서 10년 넘게 일했는데 살림살이는 별반 나아지질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마음에 걸렸다. 그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는 동안, 노부모는 서울 전역을 돌며 세탁소 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신림동·개봉동·화곡동·천호동…. 
 
 아내 역시 고단한 삶을 살았다. 남편 벌이가 시원찮으니 일하지 않으면 집이 돌아가질 않은 탓이다. 영화 일을 하다보면 지방에 내려가 살다시피 하기 일쑤였다. 그 때문인지 아이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형편이 나아지면 아기를 갖자’고 했으니, 아내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돈벌이에 나섰을텐데, 저는 그때 고집 아닌 고집을 피웠어요.”
  

"저는 즐기는데, 배우는 싫을지도 모르겠어요." 특수분장가 오창렬씨가 작업대에서 상처난 사람 손 모양 시연을 해보이고 있다. 우상조 기자

"저는 즐기는데, 배우는 싫을지도 모르겠어요." 특수분장가 오창렬씨가 작업대에서 상처난 사람 손 모양 시연을 해보이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한눈을 팔다
 돈 생각이 간절하던 그때, 친구가 ‘중국에서 웨딩사업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이른바 ‘한국식 웨딩사업’으로,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를 팔아보자는 것이었다. 꽤 그럴 듯하게 들렸다. 그 친구와 알음알음 소개받은 현지인, 셋이서 2008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가진 돈을 다 털어넣은 장사는 제법 굴러가기 시작했다. 경영은 현지 인 동업자가 하고, 그는 실무를 챙겼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하니 회사 경리 낯빛이 어두웠다. ‘무슨 일이냐’고 다그치니, 현지인 동업자가 이중장부를 만들어 돈을 다 빼도렸다는 것이다. 회사에 남은 돈이 없어 투자금을 회수할 길도 없었다. 중국에 간지 만 2년 만인 2011년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빈털털이가 돼서.
  

개그맨 정성호씨가 한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 소지섭씨로 분장한 모습. [사진 오창렬]

개그맨 정성호씨가 한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 소지섭씨로 분장한 모습. [사진 오창렬]

 
돌아온 탕자와 장진 
 어떻게 그렇게 뒤통수를 칠 수 있나. 사람이 무서웠다. 귀국 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집 밖에 나가질 못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창작뮤지컬 일을 한편 맡았지만, 공연이 끝나도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좌절감이 밀려왔다. 
 
 집에서 두문불출하던 그를 집 밖으로 불러낸 사람은 장진 감독이었다. 그는 “tvN에서 하는 ‘SNL 코리아’란 프로그램을 맡게 됐는데 딱 세 번만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SNL은 사람들을 ‘빵빵 터뜨리는’ 핫(hot)한 패러디의 중심지가 됐다. 개그맨 신동엽·유세윤·정성호·김민교·정상훈 씨 등이 그에게 얼굴을 맡긴다. 장 감독은 ‘하이힐’(2013년) ‘우리는 형제입니다’(2014년) 등 영화 일도 줬다.  
 
 “저는 돈 좀 벌겠다고 이 판을 떠났던 ‘돌아온 탕자’예요. 장 감독님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에요.”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디자인 김은교, 영상 조수진,개발 전기환·원나연 hykim@joongang.co.kr
 
  

'심슨 가족'으로 변신한 배우 장도윤(왼쪽)씨와 이명훈(오른쪽)씨. [사진 오창렬]

'심슨 가족'으로 변신한 배우 장도윤(왼쪽)씨와 이명훈(오른쪽)씨. [사진 오창렬]

나는 왜 일하는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일해요.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던 제가 집 밖으로 나와서 일을 하게 됐잖아요. PD님, 미술감독님들, SNL 출연진들, 제작진, 너무 감사하죠. 

저한테 일이란 밥줄이니까, 이분들이 은인이나 마찬가지에요. 제 이름 석자걸고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준 사람들이니까요.

 제가 한 특수분장이 배우의 연기와 녹아서 잘 부각되면 뛸 뜻이 기뻐요. 가령 대선후보 패러디를 했는데, 시청자들이 똑같다고 칭찬하면 ‘아, 내가 일말의 보템이 됐구나’ 생각해요. 고마운 사람이요? 개그맨 정성호씨 도움을 많이 받아요. 개그맨분들이 무명시절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주변 사람을 선뜻 잘 돕는 편이요. 제게도 일감을 가져다주곤 해요. 너무 감사하죠. 그러니까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일을 다시 하면서 좌우명이 생겼어요. ‘남에게 누가 되지 말자.’ 그래서 출·퇴근길에 공부를 합니다. 

 직업병인지도 모르겠어요. 지하철이 공부방 같거든요. 지하철은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장소에요.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관찰해요. 눈가나 입가의 주름이 어떻게 생겼는지 배울 수 있어요. 사람들의 피부 톤부터 옷 입는 방식까지, 모두 머리에 담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써먹을 수 있으니까요.
   
 옛날에 분장은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어요. 그런데 붓을 잡은 지 23년 만에 ‘특수분장 아티스트’로 인정을 받게 됐어요. 요즘은 우리 영화 산업이 발전해서 SF(공상과학)영화나 전쟁 영화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꿈을 꿔요.   
 
 
영화 현장의 일은 늘 보수가 적고 고됐다. 일년에 700만원을 겨우 벌어들일 때도 있었다. 오창렬씨는 "어려운 시절을 묵묵히 견딘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꼭 좀 써달라"고 했다. 우상조 기자

영화 현장의 일은 늘 보수가 적고 고됐다. 일년에 700만원을 겨우 벌어들일 때도 있었다. 오창렬씨는 "어려운 시절을 묵묵히 견딘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꼭 좀 써달라"고 했다. 우상조 기자



[출처: 중앙일보] [직업의 정석]"스타워즈 대신 SNL" 나는 특수분장사 오창렬입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채널 목록

Total 224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C 927 Brunette Ave, Coquitlam, BC V3K 1C8
Tel: 604 544 5155, Fax: 778 397 8288,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