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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앤잡 | 강남 땅 팔고 캐나다 이민 했다가 폭등한 땅값에 화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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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6-29 16:33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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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자유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1990년대 초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디에이고에서 2년을 살았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했지만 겨울의 돌풍이 싫어 온화한 밴쿠버로 이주했다. 갑자기 터키에 거의 이민 가다시피 해서 6년을 살면서 유럽의 20여개 도시를 다니며 낯선 곳의 정취도 흠뻑 느껴봤다. 이제는 은퇴해 귀소본능으로 돌아온 것이 내가 태어난 한국이 아니고 캐나다 밴쿠버다. 해외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식도 아니고 여행정보도 아닌,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은 이민자의 평범한 일상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편집자>
 

해외에 나가보면 살고 싶은 곳이 한두 군데가 있다. 나는 막연하게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가 보니 쉔부른 궁전이 있는 곳에서 약간만 벗어나도 시골스럽고 여기가 내가 꿈에도 그리던 빈이 맞나 할 정도로 쇠락한 모습에 환상이 깨진 적도 있다.  
  
영국 런던에 가서는 여기서 한 달 살이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면 ‘내 집이 최고구나’ 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는 한 번 사는 인생, 딴 나라에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었는지도 모른다. 
  
1990년대 초 아이 둘만 데리고 미국의 샌디에이고 근처의 소도시에서 2년 동안 생활하다가 마약이 없고 교육환경이 깨끗하다는 캐나다에 이민을 신청해 토론토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민을 온 사람들을 ‘이민동기’라고 부르는데, 처음 만나면 어떻게 이민 오게 됐는지 물어본다.  
  
한국 곳곳에서 온 많은 이민자의 별별 사연이 많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가 행복을 찾기 위해 이민을 했다면 1990년대에는 투자이민, 독립이민 등 시류에 따른 이민이 많다. 나의 경우는 큰 아이가 성격은 좋은데 성적은 좋지 않았다. 둘 다 좋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성적 나쁜 큰 아이 때문에 이민 결심

큰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때였다. 담임선생님 이런 성적이면 고등학교 가기도 힘들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 말을 들은 남편이 이대로 아이를 방치했다가는 만능만 살아남는 한국사회에서 아이가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며 이민을 결심했다. 일단 삼촌이 있는 미국에 보내서 외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지 보내보자고 해서 태평양 바다를 횡단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부모인 우리의 소원은 아이가 그저 영어와 기술을 배워서 제 밥벌이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 미국영화를 보면 슈퍼에서 장을 보고 8기통의 기다란 차에서 셀러리나 바게뜨 빵이 삐죽이 나온 갈색 종이백을 꺼내 부엌 테이블에 놓는 장면이 있다. 그 종이 봉지에 물건을 담을 것이냐 아니면 흰 비닐봉지에 담을 것이냐를 묻는 것이었다. 왜 봉지가 두 종류여야 하는지 투덜거리면서도 그 쉬운 영어도 못 알아들어서 쫄았던 기억이 시작이다. 영어는 웃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온다는 말이 나에게 딱 맞는 이야기라는 것을 그 당시에 처음 깨달았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영어회화가 늘기는커녕 머릿속에서 문장을 지어서 완벽하게 말해야 하는 우리 세대의 고전적인 영어학습의 실체를 온몸으로 확인해야 했다. 특히 전화로 하는 영어 대화는 아예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수화기를 넘기기가 일쑤였다. 
  
언어부터 험난한 이민생활이 어언 20년을 넘고, 고등학교도 가기 힘들다는 큰 아이는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하고 IT 계통의 사업을 하면서 아이도 세 명을 낳아 가정을 이루고 잘 살아가고 있다. 부모의 소원인 영어와 기술로 머나먼 남의 땅에서 말이다. 
  
현장에서 형이 고등학교도 못 간다는 말을 듣던 동생이 하루는 ‘그때 형 선생님이 지금의 형을 보면 뭐라고 할까’라며 회한에 찬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현실을 파악하라고 한 말이겠지만 우리 가족은 얼음 땡이 되어 부랴부랴 이민을 오고 말았다.  
  
느린 성격에다 좋아하는 과목만 잘하고 만능이 되지 못한 큰아이 같은, 좋게 말해서 대기만성형은 이곳 교육이 잘 맞는다고 스스로 위안 삼아본다. 물론 새로운 세계에 정착하기 위한 대가는 가장인 남편이 혹독하게 치렀지만. 
  
이민 오기 전 해외로 여행을 다닐 때는 아무 부담 없이 다녔다. 호텔에서 나오면 뒤도 돌아볼 필요 없이 훌훌 털고 새로운 도시를 신기하게 보며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놀기만 했다. 이민 와서는 이민자로서 남의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에다 먹고 살아야 하는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큰 과제였다. 
  
초창기 이민자가 편의점에서 소다수인 ‘세븐 업(7 up)’을 처음 보고 잘 몰라 ‘칠유피’를 달라고 했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아니지만, 내가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 한인 이민자는 편의점과 커피숍, 도넛 가게를 많이 운영했다. 
   

초창기 이민자가 편의점에서 소다수인 '세븐 업'을 처음 보고 잘 몰라 '칠유피'를 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사진 flickr(Mike Mozart) https://flic.kr/p/oepFDV]

초창기 이민자가 편의점에서 소다수인 '세븐 업'을 처음 보고 잘 몰라 '칠유피'를 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사진 flickr(Mike Mozart) https://flic.kr/p/oepFDV]

  
샌드위치 가게를 하는 지인을 도와줘도 보고 회사 구내에서 커피숍을 하는 사람네도 가 보았다. 그 여자주인은 하도 커피를 따르다 보니 탈장이 생겨 한동안 고생을 했다는 말을 듣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피난민 트라우마가 있는 어떤 가족은 한국에서 전쟁이 날까 봐 강남의 노른자위 땅과 건물을 다 팔고 캐나다에 이민 왔다. 몇십만 달러를 들여 프랜차이즈 도넛 가게를 인수해 운영했는데, 한국에 다녀오면 화병이 난다고 했다. 한국에 가더라도 이민 올 때 건물을 팔고 떠난 동네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돈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아” 
한국의 천정부지로 오른 부동산 가격과 캐나다의 변함없는 꾸준히 안정된 물가를 비교해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를 시작하면 사장은 돈 벌어 직원들 다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혹독한 세금과 직원들의 고임금 때문에 돈만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다는 말을 되뇌며 속에서 열불이 난다고 했다. 
  
장 그르니에(Jean Grenier)가 말했다. 우리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어떤 귀중한 장소와 시간을 통과하면서 만나는 순간에 자기 자신을 되찾아 가는 것이 여행이라고. 여행이 자신을 마주 보게 하는 것이라면, 이민은 낯선 곳에서 그냥 낯선 자신으로 남아있는 것 같은 허전함이다. 또 꿈속에서 집으로 가야 하는데 집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안타까움과 막막함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따금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곤 한다. 

 

결혼처럼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는 이민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이라는 한국의 경제 성적표를 보면서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한다는 결혼과 비슷한 DNA를 가진 것이 이민이라고 생각해 본다. 어쩌면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거기에 덧붙여 소위 ‘이민병’에 걸리기도 한다. 하늘이 두쪽이 나도 꼭 가야 하는 것이 이민이라는 분한테 그 병은 인생길에서 각자가 선택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 병은 약도 없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강영민 칼럼니스트 shygrace12@gmail.com 

[출처: 중앙일보] 강남 땅 팔고 캐나다 이민 했다가 폭등한 땅값에 화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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