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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여섯 살 소녀가 바라본 90년대 스페인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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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0-22 14:06 조회1,6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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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 한 장면. [사진 엔케이컨텐츠]

너무 큰 비극이 닥친 순간엔 슬픔을 직시하기 쉽지 않다. 작은 유리조각을 입안에 머금은 듯 조금씩 아픔이 커지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 눈물이 터진다. 그 아픔이 가시는 덴 시간이 걸린다. 온 세상이 위로해준다 해도. 1993년 여름, 엄마를 잃고 낯선 시골 외삼촌댁에 수양딸로 가게 된 여섯 살 소녀 프리다(라이아 아르티가스 분)가 그랬다. 
 
25일 개봉하는 성장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은 신인 카를라 시몬(32) 감독이 자신의 유년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각본을 쓴 자전적 데뷔작이다. 영화는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소녀가 여름내 겪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섬세하게 그려냈다.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엄마의 죽음을 홀로 곱씹어야 하는 아이와 조카를 딸로 받아들여야 하는 젊은 부부. 이런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사정을 관객이 쉽사리 단정 짓지 않고 찬찬히 뒤좇게 한다.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 한 장면. [사진 엔케이컨텐츠]

 
아무렇지 않게 응석을 부리다가도 사촌 동생에게 심술궂게 굴고, 한밤중 가출을 감행하는 프리다의 변덕이 한 꺼풀, 두 꺼풀 벗겨져 그저 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여린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에선 덩달아 코끝이 시큰해진다. 감독은 자신의 유년기 경험 중 사람들과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이런 감정들을 첫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푸르른 자연에서 구름 흐르듯 흘러가는 영화 속 일상엔 80~90년대 급격한 시대변화 속에 약물 남용, 에이즈 사망자 급증으로 많은 가족이 아픔을 겪은 스페인의 사회상도 자연스레 담겼다. 극 중 언급되진 않지만, 시몬 감독의 부모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이자 과거 상류층이었던 프리다의 외조부모와, 경제적‧철학적 신념을 갖고 시골로 이주한 자식 세대의 갈등도 엿보인다. “아이들은 우리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해해요. 그 모두를 감당할 힘이 아직 없을 뿐이지요.” 시몬 감독의 말이다.
 
사실감 넘치게 세공된 이런 공감대에 힘입어 영화는 지난해 제67회 베를린영화제에서 데뷔작품상 및 제너레이션K플러스(청소년 성장영화 부문) 대상을 받은 데 이어 스페인에서도 영화상을 휩쓸며 여름 시즌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 한 장면. [사진 엔케이컨텐츠]

 
영화의 절제된 분위기를 쥐락펴락한 배우들의 공도 크다. 특히 1000대 1의 경쟁을 뚫고 발탁된 프리다 역 라이아 아르티가스는 첫 연기란 걸 믿기 힘든 깊은 눈빛을 보여준다. 어릴 적 도시를 떠나 스페인 카탈루냐 시골에서 새 가족을 만났던 감독은 실제 유년기를 보낸 시골 마을에서 영화를 찍었다. 프리다 역 배우 역시 시골 경험이 없고 평범치 않은 가족 구성원을 가진 아이이길 바랐고, 오디션에서 아르티가스를 발견했다. 영화 내내 프리다를 졸졸 쫓아다니는 사촌동생 역 아역배우 파울라 로블레스의 천진난만함도 웃음을 선사한다.  
 
아역배우들을 탁월하게 이끈 연출도 돋보인다. 촬영 당시 아르티가스가 7살, 로블레스가 4살로 스페인 법상 각각 하루 8시간, 6시간만 영화를 찍을 수 있었기에, 실제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두 달여 매일 리허설을 거쳤다고. 더구나, 로블레스는 아직 어려 글을 읽을 줄 몰랐다. 아역배우들의 대사를 먼저 읊어주고 따라 한 뒤,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카메라를 가급적 느끼지 못하게 한 자리에 고정하고 자신의 느낌대로 대사를 말하도록 했다.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 한 장면. [사진 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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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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