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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옌볜 윤동주는 좋아하면서 왜 중국동포는 싫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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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1-07 22:00 조회1,2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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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부제 ‘거위를 노래하다’는 극 중 윤영(박해일 분)이 읊는 시의 제목 ‘영아(咏鹅)’를 풀어쓴 것이다. 당나라 때 작품으로, 한국에선 낯설지만 중국에선 국민 대부분이 아는 동시다. [사진 트리플픽쳐스]

“우리한텐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공간도 감독님이 찍어내면 달라지죠. 아, 이곳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었구나 느끼게 됩니다.” 8일 개봉한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에서 장률(56) 감독과 함께한 배우 문소리의 말이다. 그는 영화마다 남다른 시선으로 도시를 비춰온 감독이다. 14년 전 데뷔작 ‘당시’의 중국 베이징부터 충칭(‘중경’), 몽골(‘경계’)에 이어 두만강(‘두만강’), 한국의 익산(‘이리’), 경주(‘경주’), 서울 수색(‘춘몽’) 등을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경계인의 시선으로 조명했다. 그는 중국에서 나고 자란 교포 2세다.
 
이번 영화는 전직 시인 윤영(박해일 분)이 친한 선배의 전처 송현(문소리 분)과 서울에서 군산으로 여행을 떠나는 얘기다. 두 사람은 민박집 주인에게 송현이 마음을 뺏기면서 삐걱대기 시작한다. 개봉 전 서울에서 만난 장률 감독은 “목포대에 특강을 갔다가 떠올린 이야기”라고 했다. “목포 구도심을 산책하는데 일본식 건물이 많이 남아있었다. 아름다운 옛집들이고 그 안에 어떤 향수가 풍긴다. 근데 목포박물관에 가보면 일제의 잔혹한 수탈과 침략의 흔적이 그대로 다 담겨져 있다. 역사가 지나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잖나. 되게 미묘한 감이 왔다. 영화 하나 찍어도 좋겠다, 하면서 박해일씨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장률 감독과 박해일이 처음 만난 영화 ‘경주’(2014). 이번까지 세 편을 함께했다. [중앙포토]

왜 박해일인가.
“친하고 편한데 만날수록 더 궁금해진다. ‘살인의 추억’ 같은 영화에 드러난 그 친구의 모호함은 만들어낸 것 같지 않잖나. 어떤 배우는 연기를 잘하는 방향이 하나인데, 해일씨는 그 방향이 많다. 저는 세상을 바라보면 볼수록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느끼는데, 그 ‘모르는 리듬’을 제일 잘 표현할 사람으로 늘 박해일이 떠오른다. 실제 생활에서 시인 같은 면도 있다.”
 
정작 촬영은 군산에서 했는데.
“목포에서 마음에 드는 민박집을 못 찾았다. 일제강점기 건물이 더 많기로 유명한 도시가 군산이었다. 처음 가봤는데, 목포와 공간의 질감이 다르더라. 이렇게 부드러운 도시는 사랑얘기가 맞겠다, 하면서 문소리씨가 떠올랐다. 영화의 리듬과 정서가 공간을 바꾸면서 많이 달라졌다.”
 

장률 감독

등장인물 대부분이 이방인이다.
“실제 군산에 살아온 사람의 모습은 제가 잘 모르잖나. 나와 비슷하게, 갑자기 엉뚱하게 군산에 가서 어떤 ‘느낌’을 받는 이방인들을 떠올렸다. 민박집 주인(정진영 분)이나 그 딸(박소담 분)도 일본 후쿠오카에 살다가 상처를 받고 군산에 왔다.  문숙 선배가 연기한 군산의 식당 주인도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답을 안 한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 ‘삼포가는 길’에서 문 선배가 맡았던 배역에서 캐릭터를 따왔다.”
 
초기작과 달리 최근 영화는 부드러운 연애담이 많은데.
“과장해서 말하면 제 영화가 말랑말랑해졌다? 그게 한국이란 공간에 와서 저의 느낌인 것 같다. 또 점점 늙어가고 있잖나. 나이가 드니 좀 더 부드러워진다. 세월이 흐르면 정서도 변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와 닮았단 말도 듣는데.
“그 비교엔 아무런 이견이 없다. 두 감독과 모두 찍어본 문소리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완전히 다르다고 하더라(웃음). 내 영화엔 홍상수 감독이 워낙 잘 찍는 남녀의 지질한 관계랄까, 그런 건 없다. 제 캐릭터는 진지하고 엉뚱해서 문제다. 엉뚱한 사람은 자기 고유의 리듬을 가졌다는 점에서 지질한 사람과는 다르다.”
 
영화에는 한국·중국·일본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암시가 읽힌다. 박해일이 연기한 윤영은 해병대 출신 아버지, 조선족 가정부와 같이 산다. 문소리가 연기한 송현은 중국동포의 인권 시위에 참여하지만, 길에서 자신을 고향 친구로 착각한 조선족 여인에게는 신경질을 낸다. 어떤 한국 사람들은 옌볜 출신인 시인 윤동주를 좋아하면서 왜 중국동포를 차별하는가.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잊지 않으면서 왜 일본문화는 좋아하는가, 하는 대사도 등장한다.
 
감독은 “얽히고설킨 그 자체가 우리 일상 같다”며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평소 느낀 것을 영화에 담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 강의를 하며 6년간 상암동에서 살다 최근 가족이 있는 베이징으로 다시 이사했다. 그는 “저는 평소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지만 우리 일상사엔 관심이 많다”며 “일상과 나라가 되게 거리가 멀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그게 문제다. 사람들이 잘 못 보거나 못 본 척하는 실제 일상에 많이 귀 기울이고 작품으로 담아내는 게 창작자의 유일한 역할”이라고 했다.
 
영화에는 민박집 딸에게 자폐증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자폐란 소통의 통로가 막힌 것이죠.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친구는 누구보다 더 소통을 갈망합니다. 윤영과의 교류가 어느 정도 위로가 돼죠. 우리 삶이 그런 것 같아요. 불화의 시대엔 누구나 자폐증을 앓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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