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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김혜수 “초등생 건물주 꿈, 취업난 뿌리엔…우린 어떤 어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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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1-21 22:00 조회1,4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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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수가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IMF 사태를 막으려 한 한국은행 팀장 역에 나섰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인물과 스토리는 만들어도, IMF(국제통화기금) 협상 내용은 가공이 있을 수 없죠. 시나리오 받아 보곤 피가 거꾸로 솟았어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실체가 정말 너무하더라고요. 1997년은 우리 삶이, 가치관이, 양심이 왜곡된 선택을 하게 만든 결정적 시기였어요. 이 영화가 반드시 만들어져, 더 많은 사람에게 그때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97년 온 국민을 뒤흔든 외환위기를 그린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 28일 개봉)에서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 분투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48) 얘기다. 영화는 IMF 구제금융 협상 당시 비공개 대책팀이 운영됐단 사실에 상상을 보태, 국가부도까지 일주일여를 청와대‧금융권‧서민들의 붕괴하는 일상 풍경으로 재구성했다.
 
관료주의에 물든 재정국 차관(조우진 분)은 예고된 위기를 국민 대신 정·재계 고위층의 동문들에게만 귀띔한다. 잇속 밝은 젊은 금융맨(유아인 분)은 국가부도 위기에 역투자해 인생역전을 꾀한다. “괜찮을 것”이란 정부 말을 믿었던 서민들은 그러나 사지로 내몰린다.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이자 가장 갑수(허준호 분)의 운명이 이를 대변한다.  
 
대부분 허구의 인물이지만, 김영삼 대통령이나 IMF 총재 등 실존인물도 등장한다. IMF가 협상안에 내건 조건도 눈길을 끈다. 영화는 대량해고로 인한 실업률과 비정규직 증가, 해외 투기자본에 장악된 금융시장, 빈부 양극화 등 오늘날 우리 경제가 앓는 몸살의 뿌리가 당시의 이 무리한 협상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한다.  

21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김혜수. [사진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국민한테 제대로 공개라도 했어야죠.” 21일 만난 김혜수는 이틀 전 언론 시사에서 완성된 영화를 보곤 다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완성도도 나쁘진 않았지만, 그런 걸 떠나 우리가 영화를 만들며 굳게 먹었던 마음만큼은 지켜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의 어떤 면에 분개했나.  
“IMF가 요구한 과도한 선결 조건은 국제법에도 어긋난다. 도움받는 입장에서 우리 정부도 최소한 나라와 국민의 보호 장치는 마련했어야 했는데 패를 다 버렸더라. 90년대 중반만 해도 80% 이상이 스스로 중산층으로 인식했고 평생직장이란 말이 있었다. 요샌 중산층의 안정적 기반을 가지려고 피눈물을 흘리잖나. 저는 연예인이고 상대적으로 혜택받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떤 분들에게 박탈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협상안을 읽으면서 오늘날 많은 젊은이가 경제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삶의 위기를 느끼고 고통받는 근간이 된 것 같아 너무 속상했다. 요즘 초등학생 꿈이 유튜버와 건물주라잖나. 우리 사회의 시스템, 어른들의 욕망이 아이들까지 돈 생각을 하도록 부추긴 것 같아 충격적이었다.”
 
배우로서 97년을 기억하면. 주연 영화 ‘미스터 콘돔’이 개봉했던 해다.  
“조심스런 얘기지만 연기자로선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좋은 음악들이 거리에 쏟아졌고 개성이 부각되면서 자유롭고 풍요로운 느낌이었다. 그러다 뭔가 불균형과 위험이 감지됐다. 어딜 가도 큰 재난이 있을 때처럼 뉴스가 들렸다. 친지 중에도 타격받은 분들이 있었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IMF 사태가 터지고도 서민들은 우리가 과소비해서 이렇게 된 줄로만 알았다. 십시일반 금모으기 운동엔 저도 동참했다. 그 시절을 그렇게 겪으면서도 몰랐던 게 많다는 사실을 이 영화 찍으면서야 깨달았다.”
 
한시현은 가장 먼저 위기를 예측하고 국민에 알리려 한다.
“한시현 같은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건 있었을 거라 믿고 싶다. 어찌 보면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인물이다. 솔직히 좀 재미없을 수 있단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을 움직이는 진심이 찡했다. 그는 정의의 투사가 아니다. 자기 삶의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기에 그 시대의 부당함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연기 테크닉 차원이 아니라 경제용어와 영어가 뒤섞인 딱딱한 말들 속에 그의 진심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집중했다.”

유아인은 국가부도를 예감하고 이에 역 투자해 인생역전을 꾀하는 금융맨으로 분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하고 관객에게 진정성 있게 전달할 배우론 김혜수밖에 없었다”고 제작자 이유진 영화사 집 대표는 말했다. 한국에서 드물게 경제 소재를 다룬 영화의 여성 주인공으로 다른 대안이 없었단 얘기다. 김혜수는 86년 ‘깜보’로 스크린 데뷔 이후 수십 편의 영화‧드라마에서 선 굵은 캐릭터를 도맡으며 대중과 호흡해왔다. 시선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자연스러움을 겸비한 그의 존재감은 이번 영화에서도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IMF 총재와의 장면은 어려운 협상 내용을 모두 영어 대사로 소화해야 했는데.  
“캐스팅 2주 후부터 5개월 프리프로덕션 기간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다져나갔다. 단어 하나라도 막연하면 말에 감정을 실을 수 없다. 제작진에 뜻풀이를 요청해 두툼한 페이퍼를 읽고 또 읽었다. 굉장히 한심한 지경이었다. 자문해준 경제 관련 교수, 학자분들 설명은 녹음해서 들어도 어려워서 실제 금융권에 종사하는 젊은 분에게 쉽게 강의를 들었다. 저처럼 관객들도 낯설고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은 이해에 방해되지 않게 최대한 쉬운 말로 바꿨다. 영어 대사는 담당 선생님과 경제학자에 자문을 구하며 연습했다. 지나고 보니 ‘한시현처럼’ 철두철미하게 분석하며 그에게 다가갔던 것 같다.”
 
IMF 총재 역을 맡은 할리우드 배우 뱅상 카셀과 호흡은 어땠나.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고 엄청난 배우를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IMF를 겪은 나라 중 우리나라만큼 위기를 극복해낸 사례가 드물다. 뱅상 카셀도 그 지점 때문에 흥미를 가졌다고 했다. 실제 IMF 사태를 면밀히 공부해왔더라. 그래서 더 긴장하며 완벽을 기했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선택해서 한국영화를 찍으러 온 외국 배우라면 티 내지 않아도 같은 현장의 한국 영화인들의 태도를 당연히 볼 것 아닌가. 제가 시력이 나쁘지만 연기할 땐 거슬려서 콘택트렌즈를 잘 끼지 않는데 뱅상의 얼굴의 디테일한 부분을 마주 볼 수 없다는 건 아쉬웠다. 매번 컷하기 무섭게 모니터에 붙어서 확인했다. 외국 배우가 한국영화에 나오면 언어의 정서가 달라 튀기 쉬운데, 이질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게 놀랍더라. 강렬하고 '다 갖춘' 배우였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현장에서 김혜수와 뱅상 카셀이 촬영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엔 여성인 주인공이 90년대 남성 위주 관료사회에서 유리 천정에 맞서 싸우는 모습도 그려진다. 김혜수는 남성 소재가 주를 이루는 한국영화계에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목소리를 내왔다. 3년 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영화 ‘차이나타운’에 이어 ‘굿바이 싱글’ ‘미옥’, 이번 ‘국가부도의 날’까지 여성 주연 영화에 잇달아 도전해왔다.  
 
“20년 전엔 형식적인 레이디퍼스트는 있어도 여성비하 발언이 자연스러웠죠. 남자 상관이 말단 여성 직원에게 커피나 타오란 말을 해도 항의하는 게 이상했던 분위기였어요. 당시 금융조직에 한시현 같은 위치의 실무직 여성이 있었냐 물으니 없었다더군요. 남성형 권력구조 속에 그 정도까지 올라갔다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청난 실력자란 설정이죠. 여성이란 걸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만의 원칙, 소신에 충실하려 했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익히 알려진 우리의 과거대로다. 그는 이런 가슴 아픈 시대를 거치며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 영화가 답을 주진 않지만, 유효한 메시지는 있습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때론 자신 없이, 때론 양심에 반하는 결정을 할 때도 있지요. 돌아보면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어요.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나는 과연 어떤 지점에 있는 어른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보시고 어떤 식으로든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금융위기를 겪기 전까지 소박한 행복을 꿈꿨던 가장 갑수. 당시 예기치 못한 IMF에 휩쓸려간 평범한 서민의 모습을 대변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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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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