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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유튜버 언니와 발달장애 동생, '흥부자' 자매 18년만의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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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2-10 22:00 조회1,1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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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한 장면. 왼쪽부터 장혜영 감독과 동생 장혜정씨다. [사진 시네마달]

“누군가 열세 살의 나한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제 가족들과 떨어져 외딴 산꼭대기 건물에서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살아야 해. 그게 가족의 결정이고 너에게 거부할 권리는 없어. 네가 장애를 타고났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13일 개봉)으로 연출 데뷔한 유튜버 장혜영(31) 감독은 한 살 어린 동생 혜정씨의 삶을 이렇게 돌이켰다. 중증발달장애를 타고난 혜정씨는 꼬박 18년을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살다 지난해 다시 사회로 나왔다. 세 자매 중 둘째언니 장 감독과 함께 살게 되면서다. 장 감독이 ‘생각많은 둘째언니’란 유튜브 채널을 열고 장애인과 여성‧성소수자 문제 등 사회이슈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한 것도 동생과 살기로 결심한 2016년부터였다.  
 
이번 영화엔 1년의 준비 끝에 지난해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의 첫 6개월간 일상과 고민이 두루 담겼다. 미뤄온 소원을 이루듯 신나게 세상을 흡수하는 혜정씨의 흥 덕분일까. 자매가 음악‧영화 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 듯 찍은 영화는 의외로 밝은 분위기지만, 장애인에 대한 통념에 허를 찌르는 대목도 많다.

혜정씨는 18년간 장애인 수용시설에 살았다. 하고 싶은 일들은 모두 "어른이 되면" "나중에"란 말로 미뤄졌다. [사진 시네마달]

 

 

 
막내 장애인 시설에 보내고 부모 이혼…헤어진 가족

 
개봉에 앞서 만난 장 감독은 “동생 스스로 동생의 삶을 선택한 적 없다는 걸 시간이 흐르고야 깨달았다”면서 “내 한 몸 책임질 자신도 없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있었지만, 동생에게 벌어진 일들을 보며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동생이 있던 시설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교사들의 상습적인 인권침해가 2016년 내부고발로 드러났다. 더 큰 충격은 증거가 있음에도 여러 부모님들이 공론화를 원치 않았단 사실이다. 집에서도 아이를 때리는데 남의 아이 돌보는 과정에서 생긴 일을 그렇게 문제 삼으면 갈 곳이 없다, 집에 돌아와도 돌볼 여력이 없다고 말이다. 장애를 이유로 사회에서 격리된 사람들의 인권 추락엔 바닥이 없었다. 동생이 그때까지 감당해온 일들을 처음으로 제 삶에 대입해보며 대오각성했다.”  
 
다른 가족의 도움은.
“동생을 시설에 보내고 얼마 안 돼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언니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갔고 저는 조부모님 댁에 가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 사회에선 장애인 돌봄이 가족, 특히 어머니에게 오롯이 부과된다. 네가 문제 있어서 장애아를 낳은 게 아니냐, 다른 누가 책임지겠냐며 죄인으로 만드는 시선이 있다. 장애인의 비장애인 형제·자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딱 둘이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부모 대신이 되는 것. 어릴 적 저는 후자였다.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돕고 싶었다. 저희 어머니는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의학으로 낫는 질병이 아니란 걸 알고 종교적인 기적을 바라셨다. 역설적으로 부모님은 늘 바쁘시고 저희끼리 놀다 보니 되게 가까운 자매가 됐다. 어떤 사람과도 즐겁게 지내고, 자유로운 동생은 제 스승이기도 하다. 저로선 다시 함께 살게 된 지금 비로소 저다운 삶으로 돌아간 것 같다.”
 

한 살 터울이라 유난히 가까웠던 자매의 어린 시절. 늘 바쁜 부모님 대신 장 감독이 동생에겐 "엄마 대신"이었다. [사진 시네마달]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혜정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보니, 제가 사는 서울에선 우리가 원하는 정도의 공적 지원을 받으려면 서울에서 우리 힘만으로 최소 6개월 이상 살아남아야 하더라. 원래 프리랜서로 영상 일을 해왔기에, 어차피 버텨야 할 시간이라면 이런 문제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 나눠볼 수 있는 형태로 어떤 계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했다.”
 

 

 
연대 자퇴하며 '공개 이별 선언문', 동생 삶 돌아봐

 
그는 “자라면서 우리 자매는 늘 준비되지 않은 자리에 나타난 낯선 존재였다. 이 사회에 ‘속하지 않는다’는 딱지가 붙는 순간 배척당했다. 그래서 속하는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는 방법도 일찍 터득했다”고 했다. 또 “동생이 없을 땐 누군가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을 이유로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다면 나의 삶 역시 내 것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마음을 돌린 건 대학 때다. “최소한 경제적으로 딸들을 건사하려 노력했던 아버지께 자랑 한 마디라도 됐으면 좋겠다”며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지만, 정상에 가까워져도 행복을 장담할 수 없는 무한 경쟁 풍토가 의미 없이 느껴졌다. 4학년이던 2011년 그가 자퇴하며 써 붙인 ‘공개 이별 선언문’이란 대자보는 “여러분은 왜 지금 여기 있는가”란 문구와 함께 세간에 화제가 됐다. 그는 “명문대 졸업장을 따려고 1년 더 다니느니 그만둘 용기를 냈다”면서 “이후 제 인생은 하기 싫은 걸 안 하는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왔다”고 회상했다.  
 
“혜정은 뭔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내게 물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그 말을 들어왔을까. 아무도 자신과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계속 바라고 새로운 약속을 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장 감독이 남긴 연출의 글 일부다. 그는 자퇴 후 동생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평생 시설을 집이라 여기며 살았던 동생에게 함께 살자고 ‘구애’하며 디즈니 만화를 좋아하는 동생과 함께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로 첫 해외여행도 갔다. 

다큐영화 '어른이 되면'의 장혜영 감독. 3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권혁재 기자

 

 

 
"문재인 정부 장애인 케어 진정성은 있지만…"

 
이번 영화엔 혜정씨가 언니 없이 여러 친구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장면들도 나온다. 장 감독은 “사실 친구들과의 얘기가 이 영화의 본질이다. 중증발달장애인도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 수 있다. 이렇듯 격리하지 않고 같이 살면 잘 살아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유튜브를 통해 영화가 한차례 공개되고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으며 자매에겐 응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악플러도 존재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유튜브에 동생과의 일상을 노출하는 것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그 이전의 삶도 안전하진 않았다”면서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없는 상태로 혐오를 겪는 것보단 표면화된 위협이 차라리 낫다. 해결을 위해 뭔가 얘기해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혜정씨와 꿈꾸는 미래는 영화 속 자작곡에도 나온다. 둘이서 무사히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것. 그러나 현 정부가 내놓은 제도엔 아쉬움을 표했다. 지난 9월 청와대 관련 행사에도 참석한 그는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발달장애인 평생대책종합케어가 “장애 문제를 생각하는 진정성은 있으나 예산과 제도는 미흡하다”고 털어놨다.
 
“아직 우리 둘의 삶을 지탱하는 건 제가 잡고 있는 균형이죠. 제가 아프기라도 하면 신기루가 돼요. 인생을 걸고 버티고 있어요. 지금처럼 혜정에게 아끼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져서 튼튼한 보호막이 돼주면 좋겠어요. 이런 영화를 저처럼 사시라고 찍은 건 절대 아니고 제 나름대로 세상에 던진 질문이죠. 유튜브를 통해 계속 소통해 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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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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