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눈을 통해 보는 방법 외의 볼 수 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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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동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3-02-09 13:34 조회9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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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눈을 통해 보는 방법 외의 볼 수 있는 방법
◆ 석가모니의 깨달음이 ‘나’라고 믿었던 존재가 고유한 ‘나’가 아님을 인식했고 그래서 진정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서 얻어진 것이라면 깨달음 자체가 부처가 되는 길이라고 봐야하는 것 아닌가요?
- 지금까지 사람들이 말하는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그래야 할 것 같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앞서 깨달음은 원효라는 승려의 해골바가지의 물 이야기처럼 내 사고를 가로막고 있던 틀을 깨는 과정이에요. 그러니까 석가모니의 진정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는 깨달음이라고 볼 수 있죠.
◆ 그러면 부처가 되는 과정에서는 단순히 진정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뜻인가요?
- 예. 이 세상에는 진정한 ‘나’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또 스스로 진정한 ‘나’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의 경험을 기반으로 사람들에게 깨달음은 어떤 것인지 나름의 생각을 전하죠. 그런데 이러한 깨달음의 상태가 과연 석가모니가 이루었다는 부처와 같을까요?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아니라고 봐요. 아직 하나가 더 남아있거든요.
◆ 그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 그 것이 아마도 승려들 사이에 부처가 되는 비법 아닌 비법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는 바로 그 순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현상이 벌어졌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그 누구도 정확하게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씀만 하시네요. 그래서 그 현상이 무엇인데요?
- 깨달음은 앞서 내가 가진 사고의 틀을 벗어나는 과정이라고 했잖아요?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것과 같이요. 알을 깨고 나오면 그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겠죠. 소리로 또는 감각적으로만 느끼던 세상의 진짜 모습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할 테니까요.
- 맞아요. 그러면 동물적 본능에 따라 살아가던 ‘나’는 진정한 ‘나’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 껍질을 벗고 나면 보이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만 하시네요. 무슨 뜻인가요? 지금까지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없음을 깨닫고 나서 나를 보면 무엇이 보이는 지를 묻는 질문인가요?
- 예, 맞아요. ‘나’라는 존재가 다 허상이고 진짜 ‘나’는 없다면 ‘나’를 보았을 때 무엇이 보일까요?
◆ 없겠죠. 아무것도.
- 바로 그 부분이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는 과정의 마지막 남겨진 또 하나의 알려지지 않은 과정이에요. ‘나’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단순히 깨달아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없다’는 것을 직접 보는 과정이죠.
◆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없는 것을 어떻게 봐요? 깜깜한 밤중에도 별빛이 있는데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어떻게 볼 수 있겠어요? 혹시 비유를 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없다는 것을 눈으로 보듯이 뚜렷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 눈으로 보듯 뚜렷하게 인식한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해 왔던 이야기죠? 특히 불교에서요. 그 이유가 실제로 없는 것을 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자신들이 볼 수 없으니 비유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석가모니가 부처를 이루는 마지막 단계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졌는지 다 알려져 있음에도 그것을 자신의 착각으로 엉뚱하게 해석을 하는 거죠.
◆ 그러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뜻인가요? 어떻게요?
- 사람이 보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는 지 생각해 보셨나요?
◆ 보는 것은 말 그대로 눈으로 보는 것인데 한 가지 방법 말고 또 있나요?
- 있죠. 당연히. 그리고 질문자도 경험한 적이 있을 텐데요?
◆ 아니요. 그런 적 없어요.
- 꿈 안 꾸세요? 꿈에 보이는 건 보이는 게 아닌가요?
◆ 아, 꿈이 있었네요.
- 또 있어요. 제가 예전에 당구를 쳤었는데 그 때 저뿐 아니라 친구들이 가끔 하던 말이 있었죠. 방에 누웠는데 천정에 당구공들이 그려지고 공이 굴러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고요.
◆ 그러고 보니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는 책의 페이지를 그림으로 그대로 저장하기도 하고 또 머릿속에서 책장을 넘기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수학 문제를 풀 때 3차원으로 두뇌에 떠 올려놓고 계산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고요. 그러면 이것도 보는 것인가요?
- 물론이죠. 실제 눈을 통해 시각정보가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두뇌 자체가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당구공을 움직이듯 시뮬레이션도 가능하잖아요. 그러니까 두뇌를 통해 보는 것이죠.
◆ 그러면 없다는 것을 본다는 것도 그 현상을 두뇌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본다는 뜻인가요?
- 맞아요. 꿈은 이성적 두뇌로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없지만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가능하죠. 그리고 후에 이야기 할 기회가 있겠지만 두뇌의 시뮬레이션 기능이 바로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들이 새로운 개념, 예를 들면 인공위성과 같은 개념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 핵심역할을 해요. 보이지 않으니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만들어 봐야 하거든요.
◆ 시뮬레이션을 하는 두뇌에 대해서는 후에 다시 질문할게요. 먼저 궁금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는 방법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 같기는 한데 없다는 것을 두뇌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본다는 것이 부처가 되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죠? 당구공을 머릿속에 그려서 움직이는 것도 두뇌를 통해 보는 것이고 없다는 것을 보는 것도 두뇌를 통해 보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유독 없다는 것을 보는 것이 부처가 되는 열쇠가 된다는 부분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 존재하는 것을 보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쉬워요. 보이는 것을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없다는 것을 보려면 반대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두뇌영역의 불을 모두 꺼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어려워요. TV를 켜면 화면에 동영상이 재생되듯이 재생이 되지만 끄면 깜깜하잖아요? 그런데 사람의 두뇌는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켜져 있어요. 그러니까 끄기만 하면 없는 현상을 볼 수 있죠.
◆ 껐는데 어떻게 볼 수 있죠? TV가 꺼지면 볼 수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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