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업’은 본능적 욕구이자 고통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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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동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10-04 12:39 조회8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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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업’은 본능적 욕구이자 고통의 씨앗
◆ 자녀를 가르치고자 하는 욕망이 결국 자녀의 앞날을 오히려 막게 되는 결과를 야기하면 업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건 이해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욕망이 아이를 가르쳐서 더 발전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가르치고자 하는 의도는 업보라는 이름하에 죄책감을 느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이거든요. 오히려 부족함에서 오는 현상이니까 이해를 해야 할 문제 아닐까요?
- 물론 그렇죠. 하지만 이해한다는 건 누구의 관점일까요?
◆ 타인의 관점이죠. 주변에서 이해해 주면 업보라고 생각하며 자책하던 부모도 조금은 편안해 질 수 있으니까요.
- 물론 어느 정도는 편안해 지죠. 그런데 자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다면, 이 일을 돌이킬 수 있을까요?
◆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부모가 가진 마음의 짐은 조금 덜 수 있지 않나요?
- 비슷한 예를 들어볼까요?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자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거예요. 사적인 부분이 있으니까 큰 골격만 이야기하고 자세한 내용은 뺄게요. 한 부모가 자폐가 있는 아이를 놀이터에 데리고 갔다고 해요. 그런데 이 아이가 다른 아이의 물건을 무작정 뺏어서 자기가 가졌다고 해요. 물론 실제상황은 조금 더 심각했고요. 부모는 너무 창피해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고, 그 다음부터는 놀이터에 나가는 걸 꺼려해서 아이를 집에 데리고 있었다고 해요.
◆ 그러면 아이가 너무 답답해하지 않았을까요?
- 제게 이야기를 전해 준 분이 같은 질문을 그 부모에게 했다고 해요. 돌아오는 답은 물론 답답하다는 거였다고 해요. 그런데 밖에서 창피한 것 보다는 집에서 아이를 못 나오게 하는 쪽을 선택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하면서 여전히 놀이터에는 오지 않았다고 해요.
◆ 한편으로는 이해할 것 같아요. 아이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아이가 피해를 봤고 도덕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아이를 보면서 아주 부끄러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서요?
- 이야기를 전해준 부모님에 제게 이렇게 묻더라고요.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함께 있던 다른 부모님도 궁금하다면서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 자폐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의 공통적인 고민일 수 있겠네요. 다음은요?
-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부모님께 질문했어요. 경험자가 있으니 직접 물을 수 있으니까요.
◆ 뭐라고 물으셨나요?
- 첫 질문이, 그래서 뭘 했는지를 물었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요. 그랬더니 심리 상담을 받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는 자폐가 있어 가르칠 방법이 없으니, 자신이 상담받는 걸 택한 거죠.
◆ 저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해결책을 찾으셨나요?
- 상담사가 아이와 부모를 분리해서 생각하라고 했대요. 그리고 원인을 부모의 어린 시절에서 찾아 설명을 해 주고요. 그렇게 상담을 받은 후 아이의 행동을 보는 관점이 조금 바뀌어서 예전처럼 집으로 숨는 게 줄었다고 하더라고요.
◆ 그러면 문제가 해결된 거라고 봐도 되나요?
- 아니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아이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한다고 해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인데 그게 얼마나 가능하겠어요?
◆ 그러면 민 박사님께서는 뭐라고 제안을 하셨나요?
- 또 물었어요. ‘저놈은 내 새끼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편해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 편안함이 얼마나 갔었을지를요. 답은 정해져 있죠. 내 자식인데다 자폐가 있는데, 내 새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내 새끼가 아닐 수 없잖아요.
◆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받아들이라고 하셨나요?
- 그렇게 쉽게 가면 재미없죠. 그래도 두뇌 발달 방법을 교육하는 사람인데 그냥 받아들이라는 제안은 너무 쉽잖아요. 이 이야기를 나눈 대상이 자폐 아이 두뇌 발달 방법 수업을 듣는 분들이고, 그 중에는 제가 정리한 방법으로 지적 장애를 동반한 중증 자폐임에도 행동이 바뀌고 언어로 소통을 시작하게 된 아이의 부모님도 있었는데요. 제가 제공하는 교육의 힘은 세상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어요.
◆ 그러면 어떤 제안을 하셨나요?
- 이 내용을 다룬 수업에 참여한 분들은 기초 단계를 넘어선 분들이라 제안을 바로 하지 않아요. 스스로 방법을 찾는 방법을 생각하도록 하죠. 그래야 일상에서 아이를 관찰하면 능동적으로 두뇌 발달 방법을 찾을 수 있거든요.
◆ 방법을 제안한 게 아니라면, 다른 접근법이 또 있나요? 아이의 행동이 창피해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면 달리 방법이 보이지 않아서요.
- 이런 경우 기본적인 접근은 감정의 근원부터 찾아가요. 바로 ‘창피함’의 근원이죠.
◆ 그건 앞서 상담사도 한 일 아닌가요? 그래서 어려서 부모와의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을 내렸잖아요.
- 그건 ‘업’을 너무 쉽게 봐서 그래요.
◆ 여기서 ‘업’이 다시 나오는 군요. 설명을 해 주시겠어요?
- 수업에서 한 내용을 정리해서 설명해 볼게요. 감정의 근원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감정을 볼 수 없기 때문이에요. 보여야 뭔가를 찾아가는데, 어디서 오는지를 모르니 찾을 수 없죠. ‘창피함’도 마찬가지예요. 근원을 알 수 없으니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거죠.
◆ 창피하다는 감정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 같은 감정이라도 뿌리가 다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내가 집에서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녔는데, 이걸 누가 사진 찍어서 돌렸을 때 느끼는 창피함의 근원과 지금처럼 아이의 행동을 보고 부모가 창피함을 느낄 때의 근원이 다르거든요. 후자만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이때의 창피함은 부모로서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현실에서 오는 창피함이에요. 바로 인간의 타인을 가르치고자 하는 본능이죠.
◆ 이제 이해할 것 같아요. 자식을 상위권 대학에 보낸 부모가 자식 자랑을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겠네요. 말씀대로라면 이런 본능은 본능적 욕망의 문제라 당사자만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아이를 부모로부터 분리해서 생각하는 방법 말고 다른 어떤 접근법이 있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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