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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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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6-15 08:04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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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용의과감(勇毅果敢)의 인(人)이며 기(己)를 희생하야 동족을 구제하라는 애국적 의협적 열혈이 충일하는 인격자요 겸하야 성(誠)으로써 인(人)과 사(事)를 접(接)하야 민중의 신뢰와 존경을 박(博)하던 이라.』


- 최재형에 대한 추모 기사(<독립신문> 1920. 5. 15)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 역사는 최재형(1860.8.15 ~ 1920. 4. 7)을 빼놓고서는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최재형은 러시아 독립운동 활동에 지대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국민 중 그를 독립운동가로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무척 드문 것이 현실이다. 이는 대한민국이나 중국에 비해 러시아 지역에서의 독립운동사 연구가 활발하지 못했음에 기인할 것이다. 또한 북한과 대치한 상태로 체제 경쟁하던 시기에는 러시아 국적의 최재형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연해주에 거주하던 최재형과 한인들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항일투쟁을 벌였다. 가난한 노비로 태어나 모국인 조선으로부터 받은 것 하나 없었음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최재형 선생.


최재형은 1860년 8월 15일 함경북도 경원(慶源)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재형의 러시아 이름은 최 표트르 세묘노비치이다. 최재형의 부친 최흥백은 가난한 소작인으로 매우 낙천적이고 호방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다. 최재형의 어머니는 재색을 겸비한 기생이었다. 1869년 가을 부친 최흥백은 부인을 고향에 남겨둔 채 최재형과 형만을 데리고 훈춘을 거쳐 러시아 최초의 한인 마을인 지신허(地新墟)에 정착했다. 


지신허 마을로 이주한 2년 후인 1871년 11살의 어린 최재형은 무단가출을 감행하게 된다. 얼마 전에 형 알렉세이와 결혼하여 새로운 식구가 된 형수의 미움과 차별 때문이었다. 가출을 약속했던 2명의 친구는 두려움으로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가 버리고, 혼자 남은 최재형이 무작정 걷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바닷가에 굶주림과 피로로 탈진해 쓰러져 있던 어린 최재형을 구조한 사람들은 러시아 상선 선원들이었다. 


이들은 최재형을 자기들의 배로 데려갔다. 상선의 선장과 부인은 최재형을 정성껏 보살펴 주었고, 선원으로서 심부름하며 일할 수 있게 허락하였다. 러시아 사료에서 최재형은 표트르 세묘노비치 최라는 이름으로만 기록된다. 


선장의 부인은 어린 최재형에게 러시아어는 물론, 러시아 고전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가르쳐 주었다. 더욱이 최재형은 소년 선원으로서 힘든 노동을 통해 굳은 의지와 인내심을 키울 수 있었다. 


1878년 선장은 최재형을 자기 친구가 경영하는 상사(商社)에 소개해 주었다. 최재형은 선원 생활과는 아주 다른 사업 세계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최재형은 상법을 공부하고 사업상의 러시아어를 습득하였으며 나름의 인간관계를 넓히는 등 성인으로서의 독립적인 생활을 하였다. 


10년 만에 최재형은 1881년 부친 최흥백 등 가족들을 찾았다. 그동안에 가족들은 이미 지신허 마을을 떠나 인근의 얀치헤(煙秋)로 다시 이주해 살고 있었다. 농사꾼인 부친은 변변찮은 농기구나 가축조차 없었다. 최재형은 그동안 모은 돈으로 말, 젖소, 닭 등을 사고 새로이 집을 지었다. 


최재형은 연추로 돌아온 1년 후인 1882년 결혼하였는데 최재형의 나이 22세였다. 첫 번째 부인은 세 아이(아들 1, 딸 2)를 낳고 네 번째 아이를 낳다가 아이와 함께 사망했다. 최재형은 1897년 김 엘레나 페트로브나(1880-1952)와 재혼을 하여 8명의 아이(아들 3, 딸 5)를 가졌다. 


연추로 돌아온 지 몇 달 후, 러시아 정부는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두만강 하구 국경지대에 이르는 군용도로 건설을 시작하게 되었다.


 최재형은 러시아 관리들과 부역에 동원된 한인들 간에 중재자 역할을 하였는데, 특히 불행하고 차별받는 처지에 있음에도 러시아어를 몰라 불평불만을 해소할 수 없었던 한인들의 상황을 대변해주었다. 이런 때문에 당시 한인들 간에 최재형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부역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한인 노동자들의 입을 통하여 최재형의 이름이 한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인사회에서 최재형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최재형은 러시아 관리들의 돈독한 신뢰를 얻게 되어, 러시아 정부는 1888년 “도로 건설에서 노고와 열성을 보여주었다.”라며 은급훈장을 주었다. 최재형이 러시아 정부로부터 받은 첫 번째 훈장이었다.


1893년 최재형은 러시아 최초로 우리의 면장(面長) 또는 읍장(邑長)에 해당하는 도헌(都憲)에 선출되었다. 이는 최재형이 그만큼 러시아 정부의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었고, 한인사회에서의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도헌에 선임된 같은 해 최재형은 두 번째의 은급메달(스타니슬라브 綬章)을 받았다. 다음 해 최재형은 제1차 전(全) 러시아 읍장대회에 참가하였으며, 2년 후인 1896년 최재형은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였다. 


연추도헌으로서 최재형이 중점을 두었던 사업은 한인 자녀들을 위한 교육이었다. 도헌에 취임하기 전인 1891년 최재형은 연추마을(下연추마을)에 정규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아이들에게 철저한 러시아식 교육을 위해 설립한 것이다. 최재형은 연추 니콜라예프스코의 소학교에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2천 루블의 장학금을 내는 등 열성으로 학교 운영을 후원하였다. 또 우신학교(又新學校)를 설립하여 교장으로서 학교를 운영했다. 또한 연해주 지역 한인 마을에 32개 소학교를 세우는 데 큰 지도력을 발휘했다. 최재형은 러, 일전쟁(1904) 특수로 러시아 군대에 소고기 및 건축 자재 납품 사업과 임대 사업을 통해 연해주 굴지의 거부가 되었다. 


최재형의 장학금을 받고 사범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이들 졸업생이 모교의 교사로 와서 활동했다. 졸업생 가운데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군 장교로서 러시아를 위해 공헌을 남긴 자도 적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는 최재형의 이러한 공헌을 인정하여 1902년 교회 헌당식이 거행되었을 때 최재형에게 금메달 훈장(스타니슬라브 綬章)을 주었다. 연추 니콜라예프스코예 소학교는 1899년 하바롭스크에서 개최된 박람회에서 교육 부문에서 동메달의 장려상을 받는 등 연해주 내 최우수 러시아 소학교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재형은 러, 일 전쟁(1904)이 끝나자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한반도 정책을 직접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일설에는 최재형의 일본행이 당시 일본에 체류 중이던 박영효(朴泳孝)와 연락이 되어 그와 상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6개월 만에 연추로 돌아온 최재형은 곧바로 항일투쟁을 위한 의병조직에 나섰다. 헤이그에서 이준(李儁)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노령 한인들의 애국심과 분노를 고조시켰다. 최재형은 전(前)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 이범윤(李範允)과 노보키예프스크에 의병본부를 설치했다. 1908년 봄에는 자금과 의병모집을 목적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이미 87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던 안중근(安重根), 김기룡(金基龍), 엄인섭(嚴仁燮) 등이 다른 동지들과 함께 최재형의 의병본부에 합류했다.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었던 이위종(李偉鍾)이 부친 이범진(李範晉)의 명령을 받고 노보키예프스크로 왔다. 


1908년 4월 최재형은 이들과 함께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고 총장에 선임되었고, 부총장에 이범윤, 회장에 이위종, 부회장에 엄인섭, 서기에 백규삼(白圭三) 등이 선출되었다. 해외에서 우리말로 발행된 최초의 일간지인 <해조신문> 1908년 5월 15일 자에 발표된 [동의회 취지서]는 "우리도 개개히 그와 같이 철환(鐵丸)을 피치 말고 앞으로 나아가서 붉은 피로 독립기를 크게 쓰고 동심동력하여 성명을 동맹하기로 청천백일에 증명하노니 슬프다 동지제군. 이여"라고 끝맺고 있다. 


<동의회> 소속 의병부대는 1908년 7월 초부터 9월에 걸쳐 국내 홍범도 부대 등과 연합 작전을 펼치며 함경도 국경지대로 진출하여 일본군 수비대와 격전을 벌였지만, 안중근이 영산 전투에서 패하고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과 수적인 열세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최재형은 1909년 1월, 재정난으로 폐간되었던 <대동공보(大東共報)>의 사장으로 취임하여 격렬한 논조로 일제를 비판하고 한인들에게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최재형의 집에는 한인 애국지사들이 자주 체류했다. 안중근 의사 역시 하얼빈에서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처단하러 떠나기 전, 최재형의 집에 머물며 사격 연습을 하였다. 최재형은 안중근 의사를 위해 여비를 보탰다. 1911년 2월에 작성된 일본의 첩보 자료는 안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 안공근이 연추에 빈번하게 출입하고 있으며, 안 의사의 ‘처자가 지금 연추 최재형 방에서 쉬고 있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1912년에도 안 의사의 부인과 어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의 집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1910년 12월 최재형은 연추에 <국민회>를 설립하고 회장에 취임하였고 자신의 주택을 본부 사무실로 제공하였다. 비밀로 조직된 <국민회>의 목적은 학교 설립과 교육의 장려, 인재 등용, 국권 회복 등이었다. 1910년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합병하였고, 합병선언 다음 날인 8월 30일 13도창의회(十三道義軍)의 지도자 42명을 체포하였다. 러시아 당국은 이 가운데 이범윤 등 7명을 이르쿠츠크로 추방하였다. 이들에게 부과된 죄목은 이들이 니콜스크-우수리스크 군수를 살해할 모의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물론 일제가 날조한 문서에 근거한 것이었다. 


1910년 일제의 한국병합으로 <대동공보>가 폐간된 이후 한인들은 그 후속 신문의 발간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대양보> 발간이 결정되자 최재형은 사장직에 취임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대양보>는 인쇄기가 분실되면서 지속해서 발간되지 못하였다.


1911년 최재형은 연해주에 러시아 정부의 공식적 허가 받은, 한인의 실업과 교육을 장려할 목적을 가진 합법적 단체로서 <권업회>를 발기하였다. 1911년 6월 1일 최재형이 발기 회장으로, 홍범도 장군이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러시아 당국의 공식 인가받고 개최된 1911년 12월 17일의 <권업회> 공식 창립대회에서 최재형은 도총재(都總裁) 유인석(柳麟錫)에 이어 김학만, 이범윤과 함께 총재로 선출되었다. 


1918년 6월, 러시아 연해주의 니콜리스크 우수리스크에서는 제2회 특별 ‘전로 한족 대표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 참석자 전원 만장일치로 최재형이 이동휘와 함께 명예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19년 3월 17일 연해주에 설립된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으로 활약했고, 그해 4월 11일 출범한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 총장(장관)에 임명됐다. 


1920년 4월 최재형은 일본군에 체포되었고, 재판 없이 만행적으로 총살되었다. 상해에서는 상해 거류민단의 주최로 3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최재형과 순국한 인사들을 위한 추도회가 개최되었다. 이 추도회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이동휘를 비롯한 각부 총장 전원이 참석하였으며, 국무총리 이동휘가 최재형의 약력을 소개했다. 유족들의 회고에 따르면, 1921년 상해 임정 대표단이 최재형의 유족들이 살고 있던 니콜스크-우수리스크를 방문하여 부인과 자녀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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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在亨銃殺, 으로령 「니코리크」에서 일본군에게 총살당해//同別報


‘아령(俄領)에 있는 한인사회의 개척자’, 러시아 ‘한인사회의 제일 인물’,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大恩人)’으로 추앙받았던 최재형은 국권을 상실한 조국을 위해 투쟁하다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대동공보를 발행해 항일의식을 고취한 언론인이자, 한인 마을마다 민족학교를 설립한 교육자였다. 나라를 잃고 연해주를 떠돌던 동포들은 그를 ‘따뜻한 난로(페치카)’라며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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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월 10일 일본 외무성 기록(왼쪽 사진)에는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이 반일 무장투쟁 단체 독립단 단장으로 활동한 내용이 적혀 있었고, 5월 1일 기록에는 같은 해 4월 최 선생이 피살돼 순국할 당시의 정황이 기록돼 있다.


이번에 발견된 최재형의 죽음에 대한 1920년 5월 1일 자 비밀문서에는 ‘노령 니콜리스크 불령선인(不逞鮮人) 상황’이란 제목이 붙어있었다. 불령선인(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은 일본 제국주의자가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인을 이르던 표현이었다. 문서의 발신인은 조선총독부 경무청장, 수신인은 일본 내각 관료들이었다. 기록엔 1920년 4월 5, 6일 이틀간 러시아 니콜리스크(현 우수리스크)에서 벌어진 상황이 담겨있었다. 당시 조선인 가택에 들이닥친 일본 헌병대는 곳곳을 수색한 뒤 76명을 체포했다. 그들은 니콜리스크 부시장을 맡고 있던 최재형 선생에 주목했다고 한다. 


“배일 조선인을 선동하고 우리 군을 저격하는 등 무기를 사용해 반항적인 행동을 했다. 혁명군을 원조하는 주모자로 판명됐다”는 게 일제의 판단이었다. 


결국 최 선생은 이날 오후 헌병부대에 이끌려 이송되던 중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문서 말미엔 ‘헌병분대가 청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최 선생 등이 빈틈을 노려 달아나서 어쩔 수 없이 사살했다고 적혀있었다. 일제에 총살된 것으로 알려졌던 독립 영웅의 비참한 말로, 게다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였다. 


별처럼 왔다가 별처럼 간 사람, 최재형! 그의 이름은 아직도 우리 가슴의 별빛 언덕 위에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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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 [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지식과 개념의 차이 민동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8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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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지식인이 아닌 창조적 사고능력을 지닌 사람들 민동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0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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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 [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새로운 지식을 배워가는 공부는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민동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7 362
748 [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내시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7 305
747 [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이해를 통해 지식을 배우는 과정에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다! 민동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1 291
746 [민동필 박사와의 일문일답] – 동물의 두뇌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모습 민동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4 298
745 [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칠지도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2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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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 [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심창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0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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