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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 국민과 소통하는 영국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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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4-22 14:26 조회1,8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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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영국의 여왕이 이번 주 90번째 생일을 맞았다. 영국 역사상 최장수 군주이고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뿐 아니라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및 카리브해 주변 국가 중 12개의 여왕이며 53개 국가로 구성된 영국연방(Commonwealth)의 수장이기도 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시절의 위용에야 한참 미치지 못하겠으나 아직도 중요하고 거창한 지위를 점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여왕은 1952년 즉위해 60년이 넘는 재위 기간 중 현대 세계의 형성을 목도했다.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지금이 대체 어느 시절인데 그것도 명색이 민주국가에 왕이 존재한단 말이냐는 의문이 생기기는 한다. 아무리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The King reigns but does not govern)’지만 말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왕실은 국민 통합의 도구로 꽤나 유용하다 할 수 있는데, 사회구조와 사고방식이 급변해 온 와중에도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상당 부분 이 엄격하고도 노회한 여왕의 역량 덕분이라고 하겠다.

여왕은 본인의 역할을 전통의 수호자이며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국민을 보호하는 자로 설정하고 그와 같은 이미지를 주의 깊게 생산해 왔다.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는 않지만 적정한 가이드라인을 주는 믿을 만한 존재인 것이다. 늘 면면이 바뀌고 사적 욕망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주기 마련인 선출직 정치인들과 대조적인 안정감을 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왕실 가족이 피란하지 않고 영국에 남아 있었다거나 갓 스무 살의 공주이던 여왕이 육군보충대에 지원해 일개 훈련병으로서 훈련을 받았다는 일화의 반복적 재생은 어려울 때 국민이 의지할 수 있는 구심점 및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상징으로서 여왕에게 강력한 도덕적·정치적 정당성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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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것은 여왕이 여론에 반응하고 소통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것이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 당시 생방송 연설이다. 왕실 가족의 사치나 스캔들이 주로 문제인 반면 여왕 본인에 대한 지지도는 늘 높다고 할 수 있는데, 다이애나의 사고사 당시 비난은 여왕 본인에게 향한 것이었다. 당시 여왕은 신속히 런던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버킹엄 궁은 조기를 게양하지 않았으며, 비극이 전해진 당일 평시와 같이 다이애나의 아들인 두 왕자를 교회에 보냄으로써 전 며느리의 죽음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국민의 대대적인 충격과 추모 분위기에 동참하지 않는 듯한 냉담한 태도는 대중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와 괴리된 것이라 하여 맹렬한 국민적 분노를 샀다. 여왕은 이와 같은 반응을 접하자 다이애나의 장례식 전날 생방송을 통해 이례적으로 감정적인 추모의 메시지를 발표했는데 이런 인간적 제스처로 인해 국민의 분노 역시 누그러질 수 있었다.

영국인의 군주제에 대한 찬성도가 약 80%에 달한다지만 여왕 사후에도 이와 같은 여론이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부인인 커밀라와의 스캔들로 인해 찰스 황태자가 워낙 인기가 없는 데다 살기도 어려운데 국민 세금으로 돈 많은 왕실을 보조한다는 불만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세습군주제가 지닌 불평등 및 민주주의와의 불일치 등 본질적 문제들을 지적하며 이를 폐지하자는 의견 역시 지속적으로 나온다. 강경한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잉글랜드의 군주를 자기네 군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여론이 새로운 왕과 왕실의 행실에 따라 군주제 철폐 쪽으로 급변침할 수 있으니 여왕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게 생겼다. 이제 영국에서 군주란 국민이 애정을 보내는 대상인 것이지 통치를 당하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왕실은 외부로 보여지는 모습에 늘 신경 쓸 뿐 아니라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고 그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정권은 국민과 불통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애도의 물결에도 사뭇 격리된 듯했다. 선거 걱정 따위 없이 태어나 보니 공주라 종신토록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영국의 세습 군주가 국민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지지를 구하려 애쓰는데, 오히려 국민의 의견과 신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만 같은 한국의 선출직 정치인들이 삼가지 아니하고 선거철이 아니면 국민을 도외시하는 건 매우 놀랍고도 의아한 지점이다. 정해진 임기가 있어 시간만 보내면 끝이라 그러는지, 법정 선거운동 기간이 정해져 있어 그동안만 애쓰면 되기 때문에 이러는 것인지, 국민의 기억력이 참으로 나빠 그게 믿는 구석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최근 총선이 있었으니 그 결과에 따라 곧 새로운 국회가 구성될 것이다. 이번에는 제발 국민에게 반응하고 진심으로 소통하기를 바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을 새삼 바라고 있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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