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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 권력자들이 사랑한 건축계 여제, 자하 하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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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4-11 15:55 조회2,7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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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형 기둥 등 극단적 형태 도전
여성으로 프리츠커상 첫 수상
카타르 축구장 인권문제 논란에
베이징 쇼핑몰 “전통 무시” 비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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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현지시각) 세계 언론들은 이라크 출신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사진)의 갑작스런 타계를 일제히 비중있게 다뤘다.

 

국내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설계로 유명한 이다. 그는 논란과 유명세, 부와 성공을 동시에 누린 스타였다. 뉴욕타임스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 건축가(Groundbreaking Architect)’의 죽음이라고 보도했다.

 

바닥·벽·지붕의 경계가 모호한 DDP에서 볼 수 있듯이, 하디드는 건축의 고정적인 기하학을 깼다. 주변 환경을 무시했다거나 역사성, 지역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애초 하디드에게 성립되지 않는 문제였다.

“하디드는 그의 작품집 첫머리에서 말합니다. ‘중력의 영향으로 기둥이 직각으로 서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선형의 기둥은 왜 안 되냐’고요.’ 그는 건축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극단적인 형태에 도전했습니다.”

2007~2008년 하디드의 영국 사무실에서 일한 이정훈 소장(조호 건축)의 말이다. 하디드는 입방체 형태의 건축의 시대를 넘어 비정형 건축의 시대를 열려고 했다. 이를 21세기 건축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왜 이런 형태의 건물을 짓느냐’는 질문이 통하지 않는, ‘확신범’이었던 셈이다.

이런 하디드의 건축 철학을 유독 권력자들이 좋아했다.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 중국 정부,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등이 그의 건축주였다. DDP도 서울시의 프로젝트였다. 이들은 새로운 건물로 새 질서를 만들고자 했다.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필요한 아이콘으로 하디드의 건축물을 택했다. 하디드는 파격에 도전했고, 권력자들은 ‘트로피 건축물’을 얻었다.  
 

자하 하디드는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건축의 한계에 도전했다. 판을 깨는 그의 건축 어휘를 권력자들은 좋아했다. 비싼 건축 비용은 문제되지 않았다. 중국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 [사진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


하디드의 프로젝트에는 후일담도 많다.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2010년), 베이징의 갤럭시 소호 쇼핑몰(2012년) 등 중국 내 그의 건축물이 지어진 후 중국 정부는 곡선 금지령을 암암리에 내리기도 했다. 하디드의 건축물을 베낀 비정형 곡선 형태의 건물이 지역에서 계속 지어지자, 국제 설계 공모때 박스 형태의 건물만 지으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건축가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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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디자인상 최고상을 받은 아제르바이잔 하이데르 알리예프 컬처센터. [사진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


베이징의 갤럭시 소호 쇼핑몰의 경우 서구에서는 “사회주의 국가가 서구의 상업화를 받아들인 드문 건축물”이라고 호평받았지만, 중국 내에서는 “베이징만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모두 무시했다”는 비난 여론이 일어났다. 아제르바이잔의 ‘하이데르 알리예프 컬처센터(2014년 완공)’, ‘카타르 월드컵 알 와크라 경기장(2022년 완공 예정)’을 짓는 과정에서 인권 문제 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디드는 건축계의 ‘트러블메이커’이자 건축계의 선구자였다. 그는 자신의 건축 철학을 실현시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았다. 80년 영국 런던에 자하 하디드 사무실을 오픈했지만, 10년 넘게 건축물을 짓지 못했다. 처음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도 88년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열린 ‘해체주의 건축(Deconstructivism in Architecture)’ 전시회에서 선보인 드로잉을 통해서다. 이처럼 그리기만 할 뿐 짓지 못한다 해서 한동안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종이 건축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2000년대 들어서 하디드의 건축은 만개했다. 프리츠커상(2004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상 수상(2015년) 등 여성 최초로 수많은 상도 받았다. 하디드는 “타협이 싫고, 타협이란 프로젝트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늘 말했다. 건축의 한계에 도전했던 그의 ‘끝없는 전투’는 예견치 못하게, 너무 빨리 끝났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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