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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 이혼후 화가변신 이혜영 '세상과 담쌓고 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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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2-13 12:03 조회3,0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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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람, 이혜영

그녀의 그림들은 일기와도 같다. 그림을 보면 그즈음 마음의 온도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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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와의 만남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는 어려서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었고, 10대 시절 또다시 교통사고로 척추와 자궁을 다쳐 평생 신체적 고통을 안고 살았다. 연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와 스물한 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했지만 여성 편력이 심했던 리베라는 그녀의 여동생과 바람을 피우고 만다.

거듭되는 신체적 고통과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겪어야 했던 사랑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그림을 그렸다. 주로 자신의 내면을 관찰해 그림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 중에는 특히 자화상이 많다.

자신의 행복과 불행, 고통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혜영은 프리다 칼로와 많이 닮아 있다. 그림으로써 치유에 도달하는 것 또한 그렇다. 그녀의 작품 가운데에는 ‘Haeyoung Lee with Frida kahlo’s Eyebrows’라는 그림도 있는데, 이는 프리다 칼로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녀는 프리다 칼로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프리다 칼로는 독일어로 ‘평화’를 의미한다. 프리다 칼로를 만나 이혜영이라는 한 여자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니, 프리다 칼로는 시공을 초월해 자신의 이름값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연히 프리다 칼로에 대해 알고 난 후 한동안 그녀에게 빠져 살았어요. 그녀에 대한 책도 읽고, 그림책도 많이 구입했어요. 그녀의 인생 스토리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제 마음을 끌었죠. 그녀는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슬픔, 미움, 아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전부 그림으로 옮긴 게 그녀를 화가 프리다 칼로로 만들어준 거예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저 역시 그림을 배운적은 없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꼭 그림을 배우지 않아도, 애써 아름답게 꾸미지 않아도, 구도가 정확하지 않아도 그저 마음을 실어서 그리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죠.”

가수, 배우, 사업가, 디자이너… 다채로운 타이틀과 이력을 지닌 그녀가 화가가 되어 돌아왔다. 몇 년 전부터 그리기 시작해 지금껏 완성한 작품이 모두 90여 점. 그중 20점을 추려 최근 서울 평창동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전시회의 제목은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이 나에게 준 선물’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각각의 그림들은 그녀의 지나간 아픔과 그 아픔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2012년에 그린 ‘아버지’라는 그림이 제 첫 작품이에요.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위 절제 수술을 이겨내고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을 당시 아버지를 위해 그린 그림이죠. 젊은 시절 멋쟁이로 소문났던 분이어서 중절모와 보타이를 한 신사로 그려봤고, 옆에 앉아 있는 도로시는 저예요.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요’라고 말하고 있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은 그녀에게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아버지가 위암 투병 중이었고, 사랑하는 반려견 도로시도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지켜보는 것도 곤욕이었다. 여러 가지 슬픔이 몰려왔을 때 그것을 견디기 위해 그녀는 그림을 선택했다. 그림에는 그녀의 삶 전부가 드러나는데 그중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는 부모님과 반려동물들 그리고 자기 자신이다. 특히 초창기 작품에는 부모님이 자주 출연한다. 당시 마음속의 가장 큰 주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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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혜영은 전시회를 열어 자신의 삶을 주제로 가족, 반려견, 자신을 형상화한 작품 20점을 선보였다.


“언니, 오빠와 나이 터울이 열 살이나 돼요. 늦둥이죠. 그럼에도 부모님과의 애착 관계는 삼남매 중에 가장 덜했어요. 집에서 일찍 독립했고, 일을 하고부터는 경제적인 문제도 스스로 해결했기 때문에 부모님께 의지할 일이 적었죠. 그렇게 관계 맺을 일이 별로 없이 살다가 제가 부모님 마음을 크게 아프게 한 적이 있어요.

요즘에는 연예인들이 이혼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방송을 지속하지만 그때는 못 그랬거든요. 세상이 떠들썩하게 시끄러웠고, 저는 죄인 취급을 받았어요. ‘내가 힘들어서 이혼을 선택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왜 나를 욕하고 돌팔매질하지?’ 싶었지만 그마저도 얘기할 수 없었죠.

그렇게 저는 세상과 담을 쌓았고, 그걸 지켜보는 부모님은 굉장히 고통스러워하셨어요. 그 죄송함 이 줄곧 있었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편찮으시다고 하니 더욱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컸고 세상이 원망스러웠죠. 하지만 이미 옛날에 아픈 마음도 내려놓고, 세상도 용서했어요. 제 생각과 상관없이 지난 일이 주홍 글씨처럼 따라다닌다고 해도 괜찮아요. 저는 꽤 치유가 됐고, 저의 지난 시간마저 사랑 해주는 남편이 생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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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이 나에게 준 선물, 2015


고통의 시간들이 준 선물

그녀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빚과 그로 인한 상처를 추억으로 승화시키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지금의 남편이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Bu’라는이름으로 등장한다. ‘Bu’는 남편의 성씨다.

“그나마 아버지에게 남편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고맙게도 남편이 아버지에게 굉장히 잘했어요. 온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도록 하와이 결혼식을 준비하고,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것도 전부 남편이 챙겼어요. 비용도 전부 남편이 부담했고요. 저는 옆에서 가만히 있었어요.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는 얘기를 그렇게 대신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가장 많이 속 썩인 막내딸이지만 마지막에나마 좋은 기억을 만들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그 시간이 너무 짧았지만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저희 부부와 함께하셨는데, 짧아서 더욱 애틋한 시간이었고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아쉬움과 슬픔이 더 컸죠.”

그녀가 가장 많은 양의 그림을 그린 시기가 바로 그즈음이다. 슬픔의 크기와 작업량이 비례했는데, 정신없이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슬픔이 점점 옅어진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던 때가 있었어요. 몰입을 하다 보면 스케치에 집중하게 되고 다음에는 색감에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는 사이 슬픔이 무뎌져요. 그리려고 했던 이야기는 여전히 슬픈데, 이렇게 그리는 게 좋을까, 이 색을 쓰면 어울릴까 고민하는 사이에 조금씩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게 되어가죠. 그렇게 아팠던 기억은 추억이 되고 어느 순간 마음에 안정이 찾아와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불안하고 슬플 때 다른 짓을 하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외면하고 피하려 했죠. 운동을 하든지 친구랑 술을 마신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저와 12년째 같이 지내면서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이모가 계신데, 그분이 얼마 전에 말씀하시더라고요. ‘이혼하고 힘들었을 때 미친 듯이 책을 읽던 것 기억나느냐’고요.

침실에 한 권, 응접실에 한 권, 서재에 한 권, 화장실에 한 권… 사방에 책을 놓고 여기 앉으면 이걸 읽고 저기 앉으면 저걸 읽으면서 잠시도 다른 생각을 못하게 그러고 돌아다녔대요. 당시에는 기자들 때문에 집 밖을 못 나가니까 그렇게라도 집 안에서 다른 짓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그림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슬픔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마침내 그 과정에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은 거예요.”

그녀 스스로 치유되었음을 깨닫고 그린 그림이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이 작품의 이름은 최근 열린 전시회의 제목으로도 쓰였다. 그림 속 여자는 가시덤불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으면서도 얼굴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다.

“제 자화상이기도 한데요. ‘그래, 혜영아. 네가 겪은 상처와 고통들이 너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었잖니.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열정을 뿜어내게 해주고 날갯짓을 할 수 있게 해주었잖아. 그러니 그 상처와 고통들은 너에게 선물이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다가 그림으로 한 번 더 다짐을 한 거예요. ‘너는 이제 치유가 되었어. 그러니 더이상 슬픔, 고통, 괴로움을 그릴 필요가 없어’라고 제 자신에게 말하는 그림이죠.”

그렇게 그녀는 프리다 칼로와도 작별을 했다. 사실 프리다 칼로의 오마주인 ‘Haeyoung Lee with Frida kahlo’s Eyebrows’는 이혜영으로 하여금 삶의 영감을 얻게 해준 한 여류 화가에 대한 경외의 표현인 동시에 마침내 그녀와의 평행 이론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극복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 작품은 이런 말을 하고 있어요. ‘프리다 칼로님,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화풍을 따라 그릴 필요도 없고 따라 하지도 않을 거예요. 나에게 그런 용기를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그녀에게 헌정하는 저의 마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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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이혜영은 요즘 추상화에 꽂혀 있다. 떠오르는 순간의 이미지를 구체적이지않은 형태로 구현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 평소 상상력이 풍부한 그녀라 무척 신이 나 있다. 골프장에서 만난 딱따구리 소리에 멍해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뭐… 하고 있었더라?’라는 제목의 그림도 그렸다. 나무를 쪼던 딱따구리도 어쩌면 제 소리에 멍해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순간 ‘뭐… 하고 있었더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부터 완성된 작품이다.

“새벽에 눈을 뜨면 그림 그릴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나요. 세수도 안 하고 바로 화실로 달려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죠. 오전 8시쯤 출근하는 남편에게 건강 주스를 챙겨주고 다시 들어가서 그림을 그려요. 점심을 챙겨 먹고, 특별히 나갈 일이 없는 한 계속 그림을 그리죠. 남편이 일찍 퇴근한다고 연락해 오면 어떨 땐 약간 짜증이 나기도 해요. 그런 날에는 오후 6~7시까지밖에는 그림을 못 그리니까요. 대신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밤 12시까지도 그릴 수 있고요.”

그녀는 서재로 사용하던 공간을 화실로 꾸며 자기만의 방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누구의 방해도 받을 일이 없다.

“기껏 방을 만들어놓고 안 들어가면 아무 소용없는데 저는 하루에 10시간씩도 들어가 있어요. 거기서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요. 제 방이니까요. 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죠. 하지만 남편이나 딸이 집에 오면 절대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그때부터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죠. 그래 봐야 하루 중 얼마 안 되거든요. 그 나머지 시간에 얼마든지 제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다른 일을 하지 않아요.”

그녀의 가족은 지금 ‘부부리’라는 개와 함께 살고 있다. 자신과 남편, 딸의 성을 이어 붙여 직접 지은 이름이다. 이렇게나 사이좋게 사는 세 식구의 일상은 SNS를 통해서도 종종 공개하고 있다. 고등학생인 딸은 그녀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밝고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엄마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최근에는 그녀의 그림 그리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지 미술 공부를 하고 싶다는 얘기도 하곤 한단다.

그녀의 최근 작품들을 보면 남편과 딸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또 불러내셨군’ 같은 작품에서는 남편인 듯 보이는 남자가 들고 있는 램프에서 요정이 나타난다. 여기서 램프의 요정은 아마도 그녀 자신을 그린 것이지 싶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완성했던 작품인 ‘아버지’와 최근의 결혼 생활을 담아 그린 ‘또 불러내셨군’을 비교해보면 지난 몇 년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녀의 마음 상태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아버지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슬픔, 사랑하는 반려견을 잃은 아픔, 또 새로운 사랑과 결혼…. 이 모든 것을 그녀는 그림으로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그림은 일기장과도 같다.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도 이 기록의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 누가 ‘대장금’ 같은 드라마의 주인공을 시켜준다고 해도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으면 저는 당연히 그림을 선택할 거예요.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스타가 되는 것보다 그림이 주는 희열이 몇만 배 크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 이에요.”

그렇게 화가가 된 이혜영은 말한다. “나에게 그림은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이 내게 준 선물이었고, 기쁜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기획_조영재 | 사진_이진수(thierry film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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