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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 제갈량을 여자로 바꿨더니 세상이 달리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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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1-22 11:02 조회3,9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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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M|웹툰 '여자 제갈량' 김달 작가] 제갈량을 여자로 바꿨더니 세상이 달리 보이네요


“가장 현대적이고 불온한 삼국지.”(홍석재 감독) 현재 레진 코믹스에서 연재 중인 웹툰 ‘여자 제갈량’을 향한 평가는 대체로 만화의 도발적 접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자 제갈량’은 맹랑하게도 고전 『삼국지연의』의 제갈량·곽가·순욱 등 날고 기던 책사를 여성으로 바꿔놨기 때문이다. 만화를 읽으면 남성 독자의 전유물인 ‘삼국지’를 새롭게 읽겠다는 의도는 표면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삼국지’를 오타쿠 문화인 ‘모에(萌え·일본어로 본래 ‘싹트다’라는 뜻이지만, 만화·애니메이션·게임 캐릭터에 대한 사랑이나 호감을 일컬음)’ 코드에 버무려낸 패러디에 웃다 보면 어느덧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차별에 관한 뼈아픈 질문을 받는다. 만화가 김달이 보여준 방대한 지식과 성차(性差)에 관한 통찰이 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얼굴과 나이 등을 기사에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응했다. 대신 직접 그림을 그려 보냈다. 수줍은 말투로 세상을 향한 날선 페미니스트의 시선을 풀어 놓은 그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지난 6월 레진 코믹스는 ‘여자 제갈량’의 종이책 출판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으로 사전 주문을 받았다. 목표 금액은 300만원.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열 배 이상 넘긴 3400만원이 모아졌다. 그만큼 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김달은 “이렇게 관심을 가져줄 줄 몰랐다. 기쁘지만 나중에 거품이 꺼지면 어쩌지 하는 부담감도 크다”며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마음껏 펼치면서도 어떻게 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제를 담고 재미있게 전할까, 그 균형을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책 날개에 쓴 자기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저도 ‘삼국지’로 첫 장편 데뷔를 할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삼국지’는 경력 많은 작가가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긴 연재 분량 때문에 신인 작가가 쉽게 엄두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남성 어른들만 ‘삼국지’를 잘 알고 좋아한다는 통념이 생긴 것 같다. 전략과 전술, 인간관계의 총체적 면모가 응축된 ‘삼국지’는 젊은 세대도 재밌게 즐길 텍스트다. 또 유명한 고전이라 주목도가 높고, 자유롭게 패러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왜 군주가 아닌 책사만 여자 캐릭터로 바꿨나.

“처음 아마추어 작가로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에서 연재를 시작할 때 컨셉트는 ‘남자들만 있는 직장에 입사한 신입 여사원 제갈량 이야기’였다. 남자 부장과 여사원의 관계를 조조와 그의 책사 곽가에 웃기게 녹인 식이었다. 어린 시절 ‘삼국지’를 보며 책사는 ‘머리를 쓰는 직책인데 여자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늘 했고. 이후 레진 코믹스로부터 연재 제의를 받았다. 정비석 작가가 쓴 『삼국지』(1996, 고려원)를 다시 읽고 페미니즘을 연구하며 연재를 시작했다.”

-극 중 여성 책사들은 지위가 높은데도 여성이어서 사사건건 미묘한 차별을 경험한다.

“여성이 차별당하는 내용을 담고 싶다면 레즈비언 여성이 남성에게 성폭행당하고 돈이 없어 몸을 파는 얘기를 할 수도 있다. ‘여성은 피해자’라는 공식을 만들어 놓는 식이다. 그럼 피해자가 아닌 여성은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인가? 극 중 곽가는 소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출세했지만 여성으로서 억압을 느끼며 남성주의 사회가 다 망해버리길 바란다. 계급·지위·성별에 따라 각기 다른 차별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 복잡한 결을 포착하고 싶었다.”

-왜 약자의 삶에 관심을 쏟나.

“내가 육체적으로 약한 존재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누가 누구를 억압하고 때리는 폭력이 싫다. 소설·만화를 읽을 때도 살아남기 위해 자존심과 긍지를 버리고 도망가는 비굴한 인물에 이입했다. 소설가 얀 마텔이 『파이 이야기』(2004, 작가정신)와 『셀프』(2006, 작가정신)에서 그린 주인공이 나약함을 깨닫는 순간에 깊게 공감했다.”

 

사소한 정보를 이야기하자면 그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늘 만화를 그렸지만 스스로 “딱히 그림으로 먹고살 만한 재능은 없어 보여” 예술과는 상관없이 취직 잘 되는 과에 진학했고, 좋은 직장에 다녔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1년 만에 나왔고, 백수 시절 취미로 만화를 그리며 곧 재취업을 하려던 게 여기까지 왔다. 올해 그는 『여자 제갈량』 외에 두 권의 단편 모음집 『달이 속삭이는 이야기』(애니북스)를 펴냈다.

 

-두 만화 모두 세상을 향한 체념의 정서가 깔려 있다.

“본래 내가 우울하고 감상적이다(웃음).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완벽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환상을 경계하는 편이다. 특정한 이상을 목표로 두면 어느 순간 소수의 희생이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생학은 20세기 초 독일뿐 아니라 마리 스토프스 등 미국 여성 지성인까지 매혹한 학문이었다. 인류를 개량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하지 않았나.”

-‘여자 제갈량’은 순욱이 열세 살 소녀를 나이 든 장비에게 시집보내려 하는 일화 등을 통해 타인의 희생을 묵인하는 태도를 꼬집는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인간이 함께 살려면 각자 희생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여기에 성차가 개입하면 비교적 약자인 여성이 희생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가 서 있는 운동장 자체가 기울여져 있으니 드라마에서 사랑을 담보로 한 희생, 특히 지고지순한 여성의 희생을 미담으로 삼을 때가 많다. 이런 이야기는 결국 차별 의식을 재생산한다. 만화를 그리며 이러한 윤리적 문제를 고민한다. 폭력을 묘사할 땐 피해당한 적 있는 이들이 불쾌하진 않을까 신경 쓴다.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겠다고 잔혹하게 구타당한 피해자가 복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은 지양한다.”

-『달이 속삭이는 이야기』는 인간의 고독과 두려움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은 채 그렸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주제를 반복적으로 그린 이유라면.

“픽션은 일상에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담아야 한다고 본다. 매일 함께 밥 먹는 친구한테 ‘난 어제도 오늘도 외로워’라고 잘 말하지 않으니까. 내밀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만화로 표현해 여러 사람과 교감하고 싶었다. 자기 연민이 덜 드러나는 건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힘들다는 듯 말하는 여러 기성 작가를 좋아하지 않아서다. 사실 난 비판 받을까 지나치게 자기 검열을 한다. 소심함의 절정이지(웃음).”

-『달이 속삭이는 이야기』에서는 바벨탑을 색칠하는 두 악마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등 신화와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는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어서 그런 듯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놓고 할 자신이 없으니 여러 모티브와 비유를 끌어와 스토리를 만든다. 말하자면 ‘AT필드(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서 주인공을 보호하는 결계)’를 치는 거다. 수줍음이 작업의 원동력이다(웃음). 어린 시절부터 온갖 만화와 소설을 탐독한 경험도 한몫했고.”

-‘덕력’이 충만해 보인다. 어떤 작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

“오타쿠 맞다(웃음). 어릴 땐 공부하기 싫어 현실 도피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칠레 여성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 『영혼의 집』(2003, 민음사) 등을 아주 좋아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일컫는 그의 신비롭고 기묘한 작풍, 또 이런 삶은 잘못됐다고 재단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가 마음을 울렸다. 요즘은 판타지 소설의 대가 어슐러 K 르 귄의 책을 읽는다. 『어둠의 왼손』(2002, 시공사)은 우리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남녀가 평등한 세계를 훌륭하게 상상해 낸 작품이다.”

-영화는 어떤가.

“주성치 감독 영화도 좋아하고, ‘더 딥 블루씨’(2012,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처럼 영상 소설 같은 영화도 좋아한다.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2011, 뿔)를 좋아해 동명 영화도 챙겨 봤는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은 별로더라. 영상미와 흡인력은 뛰어나지만, 주인공 리스베트(루니 마라)가 성폭행당하는 장면과 복수하는 장면을 마치 공연처럼 연출했다. 남성 관객이 불편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원작이 의도한 건 그게 아닌데.”

-꼭 그리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면.

“생각해 둔 아이템은 많지만 하나를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여자 제갈량’을 10년 동안 연재하겠다고 레진 코믹스에 호언장담을 해 놨다. 적어도 5년간은 여기에 매진하고 싶다. 이후 페미니스트로서 내 정치적 의견을 담은 만화를 단편으로 그리고 싶다.”
 


beyond M. magazine M의 문화 가로지르기 프로젝트. 웹툰·TV·문학·음악·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핫한 인물을 만나고 새 흐름을 탐구합니다. 문화로 통하고 연결되고 풍성해지는 M 너머의 이야기.


글=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그림= 레진코믹스, 김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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