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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 내 피 바쳐 만든 진단키트…미국·캐나다서 먼저 알아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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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9-13 09:28 조회1,5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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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기업 에이티젠의 박상우(45) 대표는 “미쳤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1996년 입사한 삼성증권을 5년만에 그만둘 때 그랬다. 애널리스트ㆍ주식운용 등 증권회사의 꽃이라 불리는 업무를 했고, 업계 최상위 수준의 연봉을 받았지만 “내가 할 일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미련없이 그만뒀다.

박 대표는 “대학 때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주식 관련 책을 모두 읽었을 정도로 주식에 관심이 많아 증권회사에 들어갔는데 책을 보며 꿈꿔왔던 증권회사 생활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고 말했다. 

2002년 에이티젠을 창업한 직후에도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공동창업을 권유한 신약 개발 권위자의 이론과 사업모델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회사를 차리고 보니 이론은 이론일 뿐, 돈을 버는 건 별개였다. 박 대표는 “전문가와 곧 바로 결별하고 후배와 둘이서 의과대학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사업 아이템을 모색하고 기술을 배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연구용 시약을 만들어 팔았다. 미국과 유럽에도 수출했는데 어떻게 외국에 보내는지 몰라 아이스박스에 넣어 부칠 정도로 미숙했다.
2009년 박 대표가‘진단 키트’를 만들겠다고 했을 땐 믿었던 직원 두 명이 “말도 안 되는 걸 개발하려 한다. 사장이 미쳤다”며 회사를 나갔다. 박 대표가 개발하려고 했던 진단 키트는 NK(Natural Killer) 세포의 활성도를 통해 인체의 면역력을 측정하는 장비였다. 

NK세포는 우리 몸 속의 면역세포 중 유일하게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구별해 내 암세포만을 없애는 세포인데, 활성도가 낮을 경우 면역력이 떨어져 암 등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커진다. 따라서 활성도를 측정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해 면역력을 수치로 나타내면 다양한 암의 발병 유무 및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암이 측정자와 얼마나 가까운 지 간단한 채혈만으로 알 수 있는 키트다. 

세상에 없는 제품을 새로 만드는 데는 저항이 컸다. 과연 개발에 성공할 수 있는지, 성공한들 그 제품을 누가 쓰겠느냐는 등 주변엔 냉소만 가득했다.

실제 개발 과정도 어려웠다. 실험을 위해 한 사람의 피를 장기적으로 뽑아야 했다. 박 대표가 기꺼이 임상 대상이 됐다. 3년동안 많게는 한 달에 다섯번까지 피를 뽑았다. 주사 바늘 딱지가 있는 자리에 또 주사 바늘을 찌를 정도로 수시로 뽑았다. 그는 “결과에 대한 확신도 없고 너무 힘들어서 1년이 지났을 때 포기하려고 했다가 1년만 더 하자고 마음먹고 다시 했다”며 “의사로부터 더 이상 피를 뽑으면 위험하다고 얘기를 들은 다음에야 잠시 중단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어렵게 개발한 진단 키트 NK 뷰키트(NK Vue Kit)에 대해 에이티젠은 국내 임상실험도 마쳤다. 하지만 A대학의 임상 결과를 B대학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등 국내 시장에서 신뢰를 얻기 어려웠다. 

2013년 박 대표는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글로벌 임상 결과를 통해 역으로 국내 시장에서 신뢰를 얻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이 때 업계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또 들었다. 국내 시장에서 인정 받고 성공을 한 후 해외로 가는 게 순서라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소신대로 글로벌 임상을 강행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똑같은 아이템이었지만 해외에선 “이런 기술을 왜 안 쓰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에선 식약처 허가를 대신할 수 있는 검사실자체개발검사(LDT)를 통과했고 캐나다에선 식약처(Health Canada) 승인을 받았다. 이달에는 미국 UCLA 의대에서 무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고, 덴마크에서는 덴마크 정부가 나서서 정부 예산으로 올해안에 임상실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박 대표는 “정부관료이기도 한 덴마크 최대 암센터의 의사 7명이 NK 뷰키트를 놓고 3시간 동안 회의를 한 후 그 자리에서 정부 주도 임상을 결정했다”며 고 말했다. 

이렇게 “미쳤다”는 주위의 비아냥보다 훨씬 더 박 대표를 괴롭힌 건 자금난이었다. 벤처캐피탈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은 건 기술 개발이 어느정도 마무리된 2012년부터다. 그 전까지는 박 사장이 주변 지인 돈을 끌어들여 기술 개발비와 회사 운영비를 댔다. 남에게 돈을 빌리는 게 말이 쉽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는 게 박 대표의 얘기다. 

그는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잠이 드는 게 일상일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온갖 권유가 쏟아졌다. 의료기기나 진단시약을 수입해 팔면 직원 인건비는 나오지 않겠느냐는 조언이 많았다. 연구 개발은 회사 자금 사정이 안정되면 그 때 다시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박 대표가 너무 자기 고집만 부리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쏟아졌다. 하지만 박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다른 방법으로 수익을 내는 데 익숙해지면 힘든 독자 기술 개발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것 같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말했다. 

극심한 자금난을 겪으면서도 박 대표는 단 한 번도 직원들의 월급을 늦게 준 적이 없다. 박 대표는 “진짜 벼랑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산업은행으로부터 벤처 지원자금을 받는 등 신기하게도 돈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독자 기술을 개발하다 보니 아직까지 에이티젠의 재무제표상 실적은 좋지 않다. 지난해까지 NK 뷰키트를 사용하는 국내 병원은 10여 곳에 불과했고 에이티젠의 지난해 매출액도 17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올해는 국내 취급 병원 및 검진기관이 이미 100여 곳으로 늘었고, 내년부터는 해외 매출도 본격적으로 일어날 전망이다. 매출액이 적지만 기술성과 시장성을 인정받아 올 8월 한국거래소로부터 '기술상장특례'로 코스닥 예비상장승인도 받았다. 코스닥시장에는 연내에 상장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신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는 한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 세계 일류 기업이 나오기 힘들다”며 “앞으로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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