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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약자 보호가 이 시대의 정의' 표창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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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9-02 10:44 조회1,2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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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폭탄을 만들어 손을 날려먹을 뻔했던 지독한 개구쟁이는 『셜록 홈스』를 만나고 변했다. 정의로운 탐정이 되고 싶었던 소년은 어른들에 대한 반항심에 공부를 했고, 결국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 경찰이 됐다. 그러나 여러 미해결 사건들을 겪으며 경찰로서 열패감을 느낀 그는 영국에 범죄심리학을 공부하러 떠난다. 5년 후 그는 경찰대 교수로 활동하며 한국 최초 프로파일러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이름은 바로 ‘표창원’. 여기서 끝이 아니다. 표 박사는 경찰대 교수라는 성공가도의 컨베이어벨트에서 뛰어 내리고 만다.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를 차려 민간 프로파일러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 중인 표 박사를 TONG기자단이 만났다. 

기: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무엇보다도 경찰직을 그만두고, 유학을 떠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당시는 프로파일링이나 범죄심리학이라는 용어도 정립되지 않던 때인데, 어떻게 이런 과감한 결정을 하게 됐나요? 

“그냥 가고 싶었어요. 배우고 싶었고, 알고 싶었고. 그게 다예요.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나 시험지 도난사건 등을 겪으면서, 이런 비슷한 사건 또는 다음에 일어날 더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해결하고 싶었어요. 특히 어린 시절부터 저는 셜록 홈스에 빠져있어서 꼭 영국에 가보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말렸지만, 내 안에서 나오는 열정이나 열망이 더 강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사실 모든 순간이 힘들었죠. 영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를 사용하며 생활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두 나라의 여건이 달랐기 때문에 다시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죠. 제가 주로 맡았던 연쇄살인 분야 같은 경우,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에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어요. 또 한국 학계에서는 고아와 다름없이 아무 인맥도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프로파일링이라는 시스템을 소개하고 구축하는 것, 그리고 영국의 제도와 경찰의 관행 등을 소개하는 것들이 힘들었죠.” 

-프로파일러의 길을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으신가요. 

“전혀 없습니다(웃음). 후회한다는 감정을 느껴볼 여유도 없었고, 굳이 돌아봐도 후회는 전혀 없어요.” 

-영국에서 5년간 유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보면 ‘알을 깨는 고통’이라는 말이 나와요. 영국에서 유학하며 바로 그 ‘알을 깨는 고통’을 느꼈어요. 제가 상당히 딱딱하고 작은 알 속에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죠. 우리 사회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폐쇄적인 사고방식들이죠. 물론 영국과 우리 사회를 비교하면 개인의 능력과 학력, 지적 수준은 우리가 훨씬 낫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국가 전체를 보면 영국이 훨씬 체계적이고 질서가 잡혀 있죠. 특히 영국은 10년마다 법적, 정책적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평가하는 작업을 해요. 10년 전 제기된 문제를 기억하고 하나하나 극복하고 교정하죠. 경찰도 똑같아요. 대한민국 경찰관의 학력수준은 영국보다 훨씬 높아요. 그런데 국민으로부터 받는 신뢰는 물론이고 경찰 제도와 관행,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는 운영 과정 등을 보면 영국이 훨씬 체계적이에요.” 

승: 새로운 꿈을 찾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국의 선진화된 제도를 국내에도 알리고 싶어서예요.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그는 미국에서, 저는 영국에서 유학을 했죠. 한국 내 남녀차별 등의 문제로 고민하던 그 친구는 저더러 “귀국하지 말고 외국에서 살자”고 권했어요. 제 답은 “미안하다”였죠. 이유는 제가 영국에 공부하러 간 이유와 같아요. 범죄사회를 해결함에 있어 경찰로서 역량이 부족하다 느꼈고 유학을 갔죠. 저는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하러 한국에 돌아가야만 했어요.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요. 내가 배운 것을 우리 풍토에 맞게 적용해보고 싶었어요. 편하고 살기 좋다는 이유만으로 영국에 남겠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오고 1999~2012년까지 경찰대 교수로 일하시다가 2014년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를 만든 계기 있나요. 

“사실 오랜 꿈이었어요. 영국유학을 하면서 배운 것들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내 이름으로 된 연구소를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혼자만의 꿈이었죠. 개인적으로는,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진지한 열망을 꿈꾸면 언젠가는 기회로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꼭 똑같은 모습은 아니더라도 말이죠. 연구소는 제겐 오래 간직한 꿈이었는데 마침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죠.” 

-연구소에서 ‘CSI/프로파일링 체험전’을 벌써 2회 째 개최했습니다. 

“경찰대 교수 시절에 범죄수사 전문 교육과정에 적용시킬 생각으로 개발했던 것이에요. 예전에 과학수사를 공부하러 3주간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법과학자 ‘헨리 리’에게 특별 과학수사 연수를 받았죠. 모의현장을 만들어 현장수사 과정을 연습하는 교육방식이 있더군요. 조금 더 재밌게 극적으로 배치하면 학생들이 모의현장을 통해 체험식 범죄수사교육을 받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걸 일반인 대상 체험전으로 바꿨어요. 많은 분들이 체험전을 통해 ‘범죄수사에 이렇게 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있구나’라고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ㅈ죠. 또 프로파일러, 범죄수사관을 꿈꾸는 어린 친구들에게도 어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알릴 수 있고요.” 

-연구소를 운영하며 보람을 느낀 일이 있나요. 

“연구소는 이제 1년째라 대단히 큰일은 없었어요. 다만 ‘CSI/프로파일링 체험전’을 할 때 젊고 어린 친구들, 초등학생부터 심지어 직장인까지 제게 고맙단 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런 기회가 없었다’거나 ‘기회를 마련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들이었어요. 뿌듯하고 보람 있죠.” 

전: 표창원이 생각하는 정의 

-프로파일링이나 범죄심리학이 국내에 자리 잡기위해 어떤 점이 더 필요할까요. 

“공공과 민간의 발달로 나눌 수 있어요. 공공 분야는 검?경찰 분야에서 범죄심리학을 다루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고 대우도 좋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대단히 심각한, 분석이 필요한 사건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죠. 민간 영역은 조금 다릅니다. 사건 해결이라 하면 보통 변호사를 많이 떠올리는데, 변호사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범위는 법률적인 부분으로 제한돼 있어요. 민간 분야의 범죄심리학 전문가가 있어서 피의자를 도와주거나 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분야가 어느 정도 발전한다면 대학에도 학과가 신설될 것이고 직업과 진로 또한 마련될 것이고요.” 

-일을 할 때가 아닌 평소에도 만나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하나요.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거리의 사람들 속에 의사가 있다고 치죠. 의사라 해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거나 진찰하지는 않아요. 저도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추측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요.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한다면 바람직하진 않겠죠. 피로와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사람의 직업적인 성공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봅니다.” 

-‘표창원’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요. 

“정의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어요. 아동학대를 하는 아버지도 ‘내 아이를 교육시켜야하기 때문에 그랬다, 나는 정의롭다’고 말하죠. 아주 극단적인 예지만,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부자들을 응징했다, 그래서 내가 정의다’라고 주장했고요. 자기 혼자만의 정의와 우리가 이야기하는 보편적인 정의는 차이가 있고, 이걸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중요해요. 그 원칙 중 하나는 ‘시대정신’이에요. 과거에는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고 전쟁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었다면 21세기는 약자에 대한 보호, 우리 환경에 대한 보존과 지속가능성 등이 중요한 시대이죠. 국제적 기준도 중요해요. ‘대한민국은 남성중심사회니까 여성은 남성보다 불이익을 받아도 돼’ 같이 국제적인 보편성이 어긋나는 것을 정의라 말할 순 없죠. 무엇이 진정한 정의이며 그 정의에 부합하는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 앞으로 구축하고 실현해 나가야겠죠.” 

결: 제 2의 표창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롤모델로 꼽곤 하는데요. 

“아무래도 이 분야에서 잘 알려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분야가 연예나 정치처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널리 이름을 알리지는 못하거든요. 또 다른 이유는 추억이나 아쉬움 같아요. 이 길을 가지 선택하지 못한 많은 분들이 가지는 아쉬움과 추억 또는 미련 같은 것들이요. 그런 분들이 꽤 있으시더라고요.” 

-만약 10대로 돌아간다면 꼭 하고 싶은 세 가지는요. 

“별로 아쉬움이 없어요. 놀고 싶은 만큼 놀아봤고 친구들과 우정도 많이 쌓았고요. 공부도 10대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했어요. 그럼에도 꼽으라면, 책을 좀 더 많이 읽고 싶어요. 그 다음으로는 여행을 많이 가고 싶고요. 제가 어릴 땐 시대적인 상황의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이라면 다를 것 같아요. 음악이나 연기 같은 문화 활동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10대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진로든 적성이든 꿈이든, 미래를 설계할 때는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보면 좋겠어요. ‘나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가’부터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 또 ‘무엇을 가장 잘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를 고민하세요.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함을 느끼는 게 중요해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일이 아니거나 하다면 더 더욱요. 영화나 드라마에 보이는 프로파일러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가 아니라, 이 일이 진심으로 좋고 나한테 잘 맞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가난해도, 소위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지 못해도 일을 함에 있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을 때, 그 일을 선택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 목표는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이 기사는 tong청소년기자 권다은(군산여고 3)이 취재하고 중앙일보 이세라 기자가 감수했습니다. tong은 중앙일보가 청소년들이 꿈과 끼를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9월 22일 창간하는 청소년 온라인 매체입니다. 전국 600여 명 청소년기자단이 보고 느낀 세상을 tong에서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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