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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요즘 뭐하세요] 포크가수 남궁옥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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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edbear3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7-06 16:50 조회1,0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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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gif지난 1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남궁옥분은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향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손 글씨를 써 지인들에게 선물한다”며 “내가 가야할 삶이자 목표”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는 가수다. 남궁옥분(57). 시간 참 빠르다. 어느덧 데뷔 30년을 훌쩍 넘긴 주름 가득한 얼굴의 아줌마가 됐으니까. 

가수라는 직업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여고생 시절 친구 손에 이끌려 찾았던 포크음악동아리 ‘참새를 태운 잠수함’의 공연이 그 시작이었다. 공연에 합류하는 행운을 얻었고, 처음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성악가를 꿈꾸다 우연히 참가한 ‘쉘부르 콘테스트’는 기폭제가 됐다. 콘테스트에서의 우승은 ‘이종환 사단’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으로 나를 이끌었고, 불과 1년만인 1979년 첫 앨범 ‘보고픈 내 친구’를 낼 수 있었으니까. 

무명생활은 길지 않았다. 81년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의 성공으로 내 이름은 세상에 알려졌다. 이어 ‘꿈을 먹는 젊은이’,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등 발표하는 노래마다 연이어 히트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방송 출연·광고 섭외가 쏟아졌고 80년대 전성기가 열렸다. 돈과 명예는 자연히 따라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했다. 내 정신이 가고 싶은 곳과 내 몸이 가는 곳은 늘 달랐으니까. 노래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사명감이나 책임감도 점점 사라져갔다. 반짝이 드레스를 입고 등 떠밀려 무대에 설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다.

 일탈이 시작됐다. 무대보다는 볼링장과 윈드서핑장을 찾는 횟수가 늘었다. 바람부는 날이면 강으로 바다로 달려가 서핑을 했고, 머릿속에선 볼링 공 굴러가는 소리가 하루종일 떠나지 않았다. 10대 가수상보다 명랑운동회 으뜸상 트로피가 더 소중했을 정도니까. 
 
00.gif1981년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발표 당시 남궁옥분. 이 노래로 그는 KBS방송가요대상 신인가수상을 수상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중앙포토]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봤을 땐 아무것도 없었다. 출연 섭외는 끊겼고 인기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재회’라는 노래로 잠시 재기에 성공했지만 가수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은 성대결절 진단을 받았다. 

 다시 일어서기는 쉽지 않았다. 최고의 자리에서 인생의 바닥까지는 한순간이더라.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사랑은 떠났고, 사람에 대한 신뢰는 빚보증과 사기로 돌아왔다.

 최악의 시간 나를 다시 잡아준 건 미사리의 카페 ‘쉘부르’였다. 처음엔 돈 때문에 작은 카페에 앉아 노래하는 내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청이 들리더라. ‘여기가 네 자리야.’ 

 쉼없이 노래했다. 그랬더니 그제야 관객들 얼굴이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그늘에 지쳐있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 내 얘기를 들려주며 삶의 지혜를 나눴다. 호흡까지 멈추고 내 노래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스승이었다. 내 인생 두 번째 쉘부르는 노래하는 기쁨을 알게 해줬다.

 그랬더니 미친 듯이 노래가 그리웠다. 그러나 세상은 변해 있었고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3년 전 보컬 트레이너 노영주씨를 찾아갔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어린 학생들 틈에서 노래의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공기 반, 소리 반의 개념도 알게 됐고 조금씩 나만의 색깔을 찾아갔다.

 올해는 가수로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원년이다. 오랜만에 앨범도 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노래 ‘봉선화’다. 그분들을 생각하며 곡을 썼다. 누군가는 그분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참 많이 울었지만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오는 8월 14일엔 작은 콘서트도 준비하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나한테 자랑스러운 삶이 훨씬 더 멋지다는 걸 인제서야 깨달았으니까.

 고백하자면 나는 형편없는 가수였다. 그래도 나는 가수다. 내 목적지는 가수를 넘어 뮤지션으로, 그리고 아티스트까지 가보는 것이다. 인생이든 예술이든 완성은 없겠지. 그래도 누군가에게 향기를 남기는 그런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

글=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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