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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한나의 우아한 비행] 가정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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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1-25 10:15 조회1,3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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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열 살 때 집안 형편이 어땠어요?"  수업 후  ‘굿바이’ 인사 대신, 열살 하은이의 질문에 나는 웃음이 빵 터졌다. 지금의 내 형편이 아닌 열 살 때를 물어본다. 작은 사람들이 질문하면 되묻게 된다, 질문의 다른 뜻이 있을 것만 같아서. “형편이 좋다는 거 몰라요?”  “선생님은 형편이 좋은 줄 알고 살았어. 하은이는 형편이 어때?” “좋아요, 고기를 자주 먹어요”

 

열 살 때 우리 집 형편이 어땠을까. 지나온 후에 분명 어려웠던 시절도 있다 했는데 지금 열살 하은이처럼 우리 집 형편이 좋은 줄 알고 살았다.

 

열 살 되던 1988년, 나는 ‘국민학교’ 3학년, 쟈니는 1학년이었다. 경기도 시골에 세 동짜리 3층으로 된 빌라, 나동 101호에 살았다. 아빠는 그 지역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한지 일년쯤 되었다.

 

자주 만나 놀던 고모네 가족은 그 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때 엄마와 아빠는 지금의 내 나이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그 시절은 엄마에게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엄마가 가장 행복했던 내 열 살 무렵이 배경인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그 때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 드라마는 혼자 보면 안될 것 같고 그때를 함께 한 ‘우리’가 봐야 할 것 같아 주말저녁 동생 집에 둘러앉아 치킨고기를 나눠먹으며 함께 보았다. 티비가 있는 쟈니집에 가는 게 주말 스케줄이 되어버렸다. 

 

객지생활을 하던 엄마와 아빠에게 고향에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이웃집에 맡겨졌다. 가동 103호 윤구네에 가서 아침밥도 얻어먹고, 아줌마는 도시락도 싸주셨다.

 

저녁에는 엄마의 고향 후배이자 내 친구 주연이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밥을 해주고 가셨다. 쟈니랑 저녁을 먹고 엄마아빠가 빨리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잠이 들었다. 그때엔 온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키웠다. 정들었던 이웃, 불렀던 노래, 하나하나 늘려가던 살림살이, 젊었던 엄마아빠, 숨바꼭질 하던 앞마당, 드라마 속 장면이 우리의 기억 속에도 나란히 떠올랐다. ‘함께 한 경험의 공유가 추억이 되고 그 시간이 의미를 가지면서’, 쟈니도 나도 다시 ‘국민학생’ 시절로 되돌아갔다.

 

엄마에게 그 시절이 왜 가장 행복했냐고 물으니 시장에 물건 사러 가기만 해도 공부 잘하고 침착한 내 칭찬에 살 맛 났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그때 엄마가 행복했던 건,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잘 살 거라는 희망, 나아질 거라는 희망, 자라날 우리에 대한 희망. 그 희망으로 우리는 행복했다. 그래서 지난 시간은 ‘좋았던 옛 시절’로 추억되나 보다. 

 

언제나 그렇듯 뉴스에서는 침체된 경기와 흔들리는 가족 공동체, 소통이 단절된 세대를 지적하는 차가운 소식뿐이다. 

 

이 현실을 도피하러 ‘좋았던 옛 시절’을 추억하고픈 건지 한국은 드라마 ‘응팔’로 떠들썩하다. 우리는 그때 시대의 상황, 나라의 사정, 개인의 형편이 아스라히 떠올랐을 것이다. 지금 사는 모습은 무언가 세련되고 편해졌는데, 그 만큼 잃어가는 것에 대한 쓸쓸함과 더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토로하면서.

 

그래서 그런가 고기 자주 먹는 하은이네 ‘좋은 가정형편’이 반가웠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지금을 ‘좋았던 옛 시절’로 기억 할 것 이다.

 

지금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가정 형편’의 기억을 주고자 나아질 삶의 희망을 꼭 붙들고 살아간다, 결국 우리들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서야 우리 부모들이 두 어깨로 버텼던 무거운 고단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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