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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한나의 우아한 비행] 같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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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4-04 12:34 조회1,6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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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에 왔어요?” 종종 받는 질문이다. 한국을 ‘헬 조선’이라고 표현하는 지독한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살기 만만치 않은 곳이기에 이 질문은 더는 서운하지 않다.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하고 살고 싶어서요.”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갔던 중학교 2학년 첫날, 시골학교 교복을 그대로 입고 있던 나는 교문 안으로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학교 앞까지 데려다 준 아빠는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나를 한동안 달래야 했다. 발이 떼지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눈을 질끈 감고 아이들이 다 들어간 교문에 들어섰다. 나만 다른 게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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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다른 얼굴, 다른 액센트, 다른 고향을 갖고 사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소수를 존중하는 캐나다의 사회문화와 교육은 아름다웠다.

 

다른 빛깔의 조각과 무늬인 나는 틀린 것이 아니니 나를 들어내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라 가르쳤고, 소수를 존중했다. 다만 항상 달랐던 내 모습이 외로웠을 뿐이다.

 

온 마을에 우리 가족만 동양인이었던 때, 누가 찾아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우리를 향한 낯선 시선이 차가웠다. 백인 직원들을 고용하며 일할 때 뒤에서 수군거림이 속상했다.

 

몇 번 도둑이 들었을 때 혹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와서 공격대상이 된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숨길 수 없는 액센트는 나의 다름을 더 두드러지게 하는 듯해 서러웠다.

 

이십 년 가까이 살아도 “어디서 왔냐”는 질문은 얼만큼을 살아야 이곳에 속한 것일까 궁금했다.

 

캐나다의 ‘다른 얼굴’들은 친구가 되려 해도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 어떤 벽이 있었다. 꼭 마음을 허공에 대고 던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로 그 얼굴들이 더 이상 낯설진 않지만, 나와 ‘같은 얼굴’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한국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얼굴들과 어울려 살아보고 싶다는 갈망, 그것은 나와 다름을 거부한다거나 획일성을 추구한다는 것과 다른 마음일 것이다. 그저 ‘같은 얼굴’이고 싶었을 뿐이다.

 

한국에 온 지 만 2년, 이곳에서 일어난 무수한 만남을 생각했다. ‘같은 얼굴’과 사귐에는 편안함이 있다. 허공에다 마음을 던지는 것 같은 허무한 마음 대신, 진심을 보이는 만큼 알아주었다.

 

나는 자세히 오래 보아야 다르다는 걸 들키니까. 여전히 우리 안에 다름은 존재하지만, 뿌리가 같다는 동질감은 안정감을 주었다. 무엇보다 나는 더 이상 ‘다른 얼굴’이 아니다.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도, 선술집에서 들려오는 와글와글한 소음도,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의 행복한 걸음걸이도’ 같은 얼굴일 때 친근한 풍경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벗들과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자리였다. 우리의 화두는 한국의 하 수상한 세월이다. 식당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며 한 소리씩 해가며 나라 걱정을 했다.

 

잘은 모르지만 나도 한 소리 거들다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하는 벗들과 퇴근 후 우르르 몰려가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함께 우리나라 걱정도 하는 내 나라가 주는 소속감이 좋았다. ‘같은 얼굴’을 하고 내 나라 걱정도 하는 것, 내게는 우리나라에 살아서 가능하다.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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