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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한나의 우아한 비행] 겨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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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1-11 10:10 조회1,4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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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정월 초하루는 너그럽게 눈 쌓인 덕유산을 오르려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다.

 

눈꽃 핀 산에서 새해 첫날을 걸으며 다짐하고 싶은 한 해였다, 하지만 전날 밤부터 찾아온 복통으로 인해 아쉽지만 산행을 포기했다.

 

2016년 새해가 되면 겨울 산에 함께 가자는 글벗의 권유로 기억이 되살아났다. 덕유산을 오르려 했던 계획이 무산된 첫날의 2015년부터 그 일년의 시간 전부가. 누구에게도 깊이 나눌 순 없었지만 2015년은 녹록하지 않았다.

 

과거의 희미해진 아팠던 날은 현재의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찾아와 선명해졌다. 아픈 슬픔이 또다시 복습되었다. 그때처럼 “왜”라고 물었다. 여전히 답은 없었다. 다만 겪은 고통을 다시 마주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어리석음을 깨달은 것이 가장 큰 배움이었다.

 

변화무쌍한 기상변화 탓에 겨울이면 정상 고사목에 피어나는 눈꽃과 상고대가 특히 아름답다는 덕유산이었지만 글벗들과 올랐을 때 덕유산은 초라했다.

 

눈이 오지 않더라도 때묻지 않은 순백의 미를 겨울내 감상할 수 있다는 상고대도 이상 기온으로 볼수 없었다. 기대했던 눈꽃 핀 산나무 대신 ‘꽃과 잎을 전념으로 쏟아내버린 겨울나무는 제 굵기와 굴곡의 벌거벗은 실루엣’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 추운 날 내렸을, 채 녹지 않은 눈만이 드문드문 쌓여있었다.

 

내 실망감을 알아차린 듯 겨울 산은 기대치 않은 특별한 풍경을 대신 내보였다. 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첩첩산이 바다가 되어 물결무늬를 띄었다.

 

마른나무 가지가 바람에 부딪혀 파도소리를 내었다. 산봉우리에 오른 건지 바닷가에 온 건지 착각 되어 내 귀를 의심했다. 뛰어내리면 금방 바다를 만날 것 같았다.

 

곤돌라를 타고 1600m 이상되는 정상에 쉽게 올라갈수 있기에 새해 둘째 날 덕유산 봉우리 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덕유산은 주봉우리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대봉, 중봉, 삿갓봉 등 해발고도 1300m 안팎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아 있어 장관을 이룬다.

 

가족들과 연인, 친구들과 함께 온 사람들이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건넌다. 숨은 차지만 얼굴엔 미소들을 머금고 있다.

 

작은 아이들도 부모 손을 잡고서 끙끙대며 오르거나 눈길에 미끄럼틀 타듯 개구지게 내려오기도 한다. 이들도 다짐하고픈 새해가 있을 것이다.

 

그 결심을 이곳에서 시작하며 기대에 찼을 것이다. 새해 새 마음에 동참하고 싶은데 나는 어떤 결심도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2015년의 어질러진 다짐들만이 마음을 찌를 뿐이다.

 

겨울 산과 같은 황량한 2015년의 사건을 생각하다 ‘빛나는 내면은 오히려 삭막한 풍경 속에서 진가를 드러내는 법이다’ 라는 인생의 깨달음을 되새겼다.

 

난관을 헤쳐 나갈 때 내면은 더욱 성장한다. 깊어진 내면은 그래도 사랑하는 일만큼은 포기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있다. 생각해 보면 2015년을 버틸 수 있었던 빛나는 사랑의 시간들이 있었다.

 

작은 사람들과 하는 학교 놀이도, 저녁의 삶을 마음껏 누리는 서울살이도, 무수한 만남 속에 생긴 무늬와 빛깔도 ‘우아한 비행’이라는 기록으로 남았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모산이라 덕유산이라 불린다는 이곳에서 또 한번 평범할 다짐을 한다. 새해에도 내게 주어진 것들을 성실히 사랑할 수 있기를, 그 사랑을 정직하게 기록할 수 있기를, 이 산하 (山河) 의 풍경 속에 그 소망을 남긴다. /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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