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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한나의 우아한 비행] 그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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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2-14 11:52 조회1,2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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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된다는 것, 냉정한 관찰보다는 함께 하는 감성이 필요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유언대로 1954년 예수를 믿고 고아원을 설립하셨다. 아빠가 네 살 되던 해였다. 아빠는 어린 시절부터 고아원에서 고아처럼 살았다. 마음이 제일 착했던 셋째 아들 아빠에게 할아버지가 고아원을 맡기고 싶어 했을때, 아빠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결혼도 하기 전이었던 아빠는 미래의 당신 아이들을 고아들과 같이 키울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삶이 어떤 모양인지 아는데 그것을 고스란히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는 아빠의 마음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고아들과 자라면서 제 아버지의 존재를 온전히 다 누리지 못한 아빠에게 결핍도 있었겠지만, 고아들 사이에서 제 아이들이 어쩔수 없이 더 반짝거렸을때 할아버지의 갈등은 어떤 것이였을까. 모든 아이들의 입에 똑같은 밥을 넣어야 했을텐데... 나는 고아들과 아버지를 공유하며 살았을 내 아빠와 친 아이들을 고아들과 함께 키워야 했던 내 조부의 마음을 그려본다.

 

두 마음을 헤아리다 나는 성자 예수가 이땅에서 고아가 되는 것에 대한 묵상을 하곤 한다. 그것은 성부와 성자만이 완벽히 가능한 일이지 우리 인간에게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고아같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희생시킨 아버지 하나님, 그 소명을 순종해 이 땅에 오신 아들 예수. 하나님이 그의 아들보다 우리를 더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신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나는 우리가 신처럼 ‘그런 사랑’은 할 수 없는 존재란 상념에 내내 휩싸여 있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사랑’은 풀리지 않아 미뤄논 숙제처럼 마음가운데 묵직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분이 새터교회 안 목사님이었다. 새터교회는 1987년 봄, 구로공단 지역에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탁아방이 생기며 시작된 교회이다. 이 땅의 소외 계층인 여성 노동자들과 그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소개 받아 방문했다. 깔끔하게 꾸민 안 목사님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나를 맞아 주셨다. 나는 물어보고 싶은게 딱 하나 있었다. ‘그들의 어려움과 동일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예상치 않게 안 목사님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본인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은 욕구도 감추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과 똑같지 않은데 똑같은 체 할 필요가 없었고, 사랑하는 마음은 있으되 본인 그대로였음을 고백했다. 자연스러움에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십 여년을 한자리에 있을 수 있었나 보다. 문득, 다름으로 구분 짓지 않고 쉬이 떠나지 않고 함께 한다는 것이 우리가 예수의 ‘그런 사랑’을 이뤄가는 방법이 아닐까

 

성경에서 예수의 “삶의 자리 (Sitz Im Leben)”는 특별하다. 아예 가난하고 사회에서 지탄받는 사람들과 함께 정하였다. 독일의 신학자 헤르만 궁켈은 사람이 어떤 삶의 자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학이 정해진다는 것으로 “삶의 자리”를 주장했다. 고급 세단을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에게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은 그저 하나의 풍경이다. 월세 걱정하는 사람은 구질구질한 인생 일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대화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소외된 자의 고통, 제도의 폭압성, 사회의 삭막함을 이해하게 된다. 그 자리는 곧 연대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인간적인 마음에 나는 아빠처럼 고아들과 함께 크지 않은 것을 감사했다. 덕분에 부모의 충분한 사랑과 따뜻한 관심을 남부럽지 않게 받아 타인에 대한 예의와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예수 믿는다는 첫 증거로 한국의 가난한 시절 고아들에게 아버지가 되어준 그 헌신을 더 감사하고 존경한다. 내게는 ‘고아’란 단어를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가족력’이 생겼다. '예수 믿는다'는 것의 증거는 '삶의 자리에서 어려운 자의 아늑한 품이 되어 준다'는 것이란 것을 할아버지의 삶을 통해 유산으로 받은 것이다. 때론 당신의 아이들이 더 반짝여 보였을지라도 헌신의 자리를 지킨 할아버지의 일생, 누군가의 궁핍을 해결해준 새터교회의 몸짓, 서로가 한 덩어리로 연결되어 있는것, 이것이 우리가 할수 있는 예수닮은 ‘그런 사랑’ 아니겠는가. 우리가 따라 할수 있는 예수 사랑의 ‘육화’ 아니겠는가.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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