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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한나의 우아한 비행] 섬진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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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5-16 11:54 조회9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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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힘껏 내밀어 선을 긋는다. 너무 가까운 ‘거리’안으로 다가오는 것은 막아야 하니까. 나는 누구에게나 조금 떨어진 ‘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일까? 호기심 많고 표현이 직설적인 처음의 내 모습과 다른 그 ‘거리’로 인해 지금껏 쉽게 누군가를 떠나 보내기도, 누군가를 떠나기도 했다. 사실 종종 외로웠다. 하지만 이 '거리'가 있어야 안정감을 느꼈다. 차라리 외로움이 좋았다.

수년을 알고 지낸 사이로 ‘거리’를 인정해 주지만 서운해 하는 그녀를 만나면 이 ‘거리’에 대해 고민한다. 그동안 잃었던 수많은 관계들도 떠오른다. 결국 끊임없이 사랑하고 싶지 않은 이기심 때문이니까. 그래서 그녀가 여행을 제안했을 때 나에게 필요한 시간인 듯 했다. 함께 가까이 걸으며 ‘나’로 가득 차 있는 자아를 비워내고 싶었다.

 

나보다 한 달 늦게 한국에 온 그녀는 한국살이의 외로움과 답답함을 이따금 호소했다. 관계로 인한 경직된 마음과 탁한 공기, 높은 빌딩 사이에서 느끼는 숨막힘이 어떤 것인지 아니까, 고요한 곳에서 초록 영롱한 자연이나 하늘 닮은 바다를 보러 가자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전주에 도착 후 남도로 내려가기 위해 차를 빌렸다. 꼼꼼히 여행 계획을 짜온 그녀는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가 배경이 되었던 ‘최참판댁’을 데려다 주었다. 섬진강을 따라가다 오른 전통 한옥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굴곡진 강줄기와 한가로운 강변의 모래밭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이 세상을 실어 오고 실어 가는 저무는 강물을, 팍팍한 마음 한끝을, 저무는 강물에 적셔 풀어 보’내고 싶었다. ‘버릴 것 다 버리고 버릴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눈빛 하나로 어둑거리는 강물에 가물가물 살아나’ 강 따라 우리도 흐르고 싶었다. (섬진강, 김용택)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말로 하는 표현에 서툴러서 일 것이다. 내 감탄사를 기다리는 그녀를 위해 이 풍경을 글로 기억하고 싶었는데, 박경리 선생의 문학관을 보물처럼 찾았다. 마치 우리가 오는걸 알았다는 듯 문학관은 이틀 전에 개관했다. 문학에 한 평생을 쏟은 선생이 섬진강과 나란히 공존했다. 삶이 문학보다 먼저라는 선생은, 좋은 작가가 되는 것보다 좋은 인생을 살기를 원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선생의 한 문장을 빌리고 싶었다. 수많은 작품과 이십 오년간 삼만 천 이백장의 원고지에 ‘토지’를 쓴 선생은 유고시집에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고 노래했다. 나는 욕심이 많아 '채움에 집중된 삶'을 살았고, 그 채움으로 결국 내 자아는 거대해졌기에 선생의 마지막 가르침은 내 마음을 울렸다.

 

줄곧 여행은 혼자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왜 그곳에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자아와 만나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자아를 끊이없이 타인과 대면시키는 시간이었다. 안정적 ‘거리’밖에 주저하는 내 자신을 데려와 마주하게 하는 치열한 해방의 시간이었다. 우린 다시 섬진강변으로 내려왔다. 강바람을 맞으며 서로의 비밀스런 슬픔을 나누었다. 우리가 된다는 것은 나와 너의 슬픔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 슬픔이야말로 오래도록 기억될 기쁨이 될 것이다. 섬진강가에서 우리는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 아래는 실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토지,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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