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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한나의 우아한 비행] 이화여대 뒷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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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2-22 11:56 조회1,6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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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를 따라 ‘머리 하러’ 다녔던 향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몇 년 만에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이화여대역은 빼놓지 않고 찾았다.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지 못한 나에게 이화여대 주변은 신세계였다. 트레이닝 복을 입고 커다란 배낭에 책을 잔뜩 넣고 다니는 화장기 없는 캐나다 여대생들과는 다르게 화려한 옷차림을 한 한국의 여대생들을 보고 있자면 여긴 분명 다른 세상이었다. 멋스러운 디자인을 뽐내는 옷과 신발의 자태에 여자들은 현혹되었고, 자신에게 꼭 맞는 가장 아름다울 것을 찾기 위한 그녀들의 눈빛은 뜨거웠다. 밴쿠버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디자인의 액세서리와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들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으로 바쁜 한국 일정에서도 몇 번씩 오곤 했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현대식의 건축물이 어울린 이화여대 캠퍼스를 거니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다시 찾은 이대역은 요우커(遊客: 중국인 관광객) 로 가득 찼다. 2호선 전철역에서 나와 이화여대 정문을 거쳐 신촌 기차역까지 이르는 700m 정도 길이의 ㄱ자형 도로에는 저렴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패션 양말, 옷, 액세서리, 신발, 각종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의 다채로운 매장이 있다. 요우커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경쟁으로, 여기저기 마이크에서 중국말이 흩어져 나온다. 价格(최저가)’ ‘免税(면세)’ ‘最受欢迎(인기상품)’ 등 광고 문구가 주 고객은 중국인임을 말해준다. 수년 만에 오긴 했어도 낯선 풍경이었다.

 

독특한 디자인과 질 좋은 물건들로 한때 멋 좀 낸다는 사람들은 꼭 왔다는 ‘이대거리’. 이화여대 정문에서 신촌동 주민센터로 향하는 200m 길이의 골목길은 개성 넘치는 보세 옷과 유행을 선도하는 디자이너 샵들로 특별했었다. 하지만 북적거린 ㄱ 자 거리와는 다르게 뒷골목은 썰렁했다. 요우커의 발걸음도 없고, 물론 그들의 취향도 아니었다. 드문드문 문을 연 몇 개의 매장들만이 보일 뿐이다. 좌표는 예전과 같은데 이제는 다른 이름들뿐이다.

 

문득 이대 뒷골목 그 액세서리 샵이 떠올랐다. 조금이라도 더 슬림해 보이기 위해 검정색을 즐겨 입는 내게 반짝거리는 액세서리는 필수 아이템이다. 옷차림에 포인트를 주고 싶을 때, 과하게는 아니어도 ‘꾸몄다’ 표현을 하고 싶을 때, 어울리는 액세서리 하나면 결점들이 보완되곤 한다.

 

인상 좋은 젊은 여자 사장님은 내게 잘 어울릴만한 아이템을 추천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교포 여자 사람’의 취향을 잘 이해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종종 수리가 필요한 예민한 액세서리에도 A/S 가 훌륭하다.

 

사장님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뒷골목에 있던 매장들이 다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자, 그녀는 하나 둘 빠져 나가는 빈 매장들 사이에서 홀로 외로웠다고 했다. 하지만 잊지 않고 찾는 단골 손님으로 인해 버틸 수 있었던 십 년이었단다. 요즘 이대 뒷골목은 정책적인 지원으로 빈 매장들이 채워지는 데다가 유명한 세프들이 개업한 효과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녀는 큰 기대가 없어 보였다.  

한국은 1년에 80만 명의 자영업자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단골이었던 추억의 장소들이 다 사라져 아쉽다는 친구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몇 년이 지나도 별로 변한 게 없는 밴쿠버 우리 동네와는 사뭇 다르다. 변화무쌍한 한국 사회는 버티는게 처절하다.  ‘연속성의 단절이 주는 당혹과 혼란에 익숙해 질만도 하지만’ 재현할 곳을 잃은 경험과 기억은 씁쓸하다. 봄이 오면 이곳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더 찾아 나서야겠다. /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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