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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한나의 우아한 비행] 크리스마스, 아름다운 빛깔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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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2-30 15:28 조회1,4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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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는 영어를 못하는 아이였다. 영어에 자신감도, 관심도 없어 보인다. 동료교사 제프는 그 반에서 승화를 제일 부족한 학생으로 이야기한다. 승화는 엄마와 함께 살지 않는 것 같았다. 전화를 하면 아버지가 투박하게 받으시는 것, 가끔을 꼬질꼬질하게 오는 것, 무엇보다도 엄마 이야기를 한번도 하지 않는 것, 그렇게 마음 쓰이는 3학년 아가씨다.

 

“선생님, 저 망했어요!” 며칠전 숙제 검사를 하는데 승화가 이야기한다. '왜 그러냐' 물으니,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는데 율동에서도 주인공, 연극에서도 주인공이란다. 문득 승화를 교실 밖에서 만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승화는 이 공연을 기대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7시, 학교근처 동네 교회. 나는 승화가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선생님 승화보러 가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오는지 계속 확인하는 걸 보니 승화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가 그래도 꽤 클 줄 알았다. 아주 작은 이 교회는 지역 아동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고 상가건물 3층에 자리 잡았다. 관악구 봉천동 학교 주변은 서울 같지 않은 분위기의 동네임을 실감한다. 공부방에 간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곳이 승화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공연이 시작되기전 사회자가 관객 한명 한명을 환영하는데, 나까지 왔다. “누구세요?” 그러고 보니 서로들 아는데 나만 뉴페이스 였던 것이다. 와줘서 고맙다며 사회자가 악수까지 청했다.

 

공연 전 우수학생을 선정해서 상을 주는데, 세상에 승화가 받는 것이 아닌가. 우리 교실에서는 ‘좀 부족한’ 승화가 우수학생이라는 사실이 나는 매우 의외였다. 하지만 공연에서 보여주는 승화의 모습에 감동 깊은 놀람이 있었다. 야무지게 율동을 하는 모습하며, 그 긴 연극 대사를 무리없이 연기하는 것을 보며, 내가 이 아이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던가 싶었다. 교실에서 보여주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나는 아이들을 평가하는데, 교실 밖에서 그 이상의 아름다운 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우리 교실에서 눈에 띄지 않던 승화가 이곳에서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작고 건강한 공동체가 승화에게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라며, 작은 선물을 건네고 '너무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환하게 웃는 이 아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너의 이야기를 보게 해줘서 고마워’. 승화의 공연은 앞으로도 보고 들어야 할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을 일러주었다.

 

벌써 일년 전 일이 되었다. 작년 이 시간 이후 나는 승화와 사계절을 함께 했다. 그동안 승화는 몸도 마음도 많이 자랐다. 승화는 진정 여자가 되었다. 눈이 나빠져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쓰기 시작했고, 공부방에서 만난 오빠가 첫 남자 친구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영어 실력이 쑥쑥 자랐다. 영어 문장을 읽고 발표하는 일에 자신감도, 영어 공부에 관심도 커졌다. 제프도 승화 성장에 감탄을 했을 정도이다.

 

내 두번째 겨울, 올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나는 승화의 공연을 보러 갔다. 어떤 약속보다도 승화의 공연 자리에 함께 하는 일은 의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작년처럼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주는 멋진 조연이었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나 한시절 나는 이 아이의 성장기 증인으로 있을 것이다. 승화는 ‘우리가 보는 물체의 빛깔은 그 물체가 반사하는 색깔일 뿐, 그 안에는 무수한 빛깔들이 품어져 있다’는 것을 직접 가르쳐준 내 선생이기도 하다. 올해도 또다른 아름다운 빛깔을 만났다. /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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