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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한나의 우아한 비행] 하늘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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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3-07 12:02 조회1,4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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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독거노인들만이 성도인 용인 산골 교회 행사에 방문했다. 거꾸로 순서지를 들고 있는 주름진 손이 보인다. 글조차 배울 기회도 없었을, 그래서 오랜 세월 고된 노동으로 거칠어졌을 손, 살이 없이 검은 가죽만 남은 쭈글쭈글한 손에 내 시선이 멈칫한다.

 

그 손으로 없는 살림에 억척스레 길러 냈을 자식들로부터도 버려져 산골 독거 노인이 되어야 했던 그 삶이 처량하다. '인생의 끝', 죽어라 일해도 거둔 것이 없어 마음도 몸도 가난한 삶. 나는 그 삶을 연민하며 눈물짓는 후원자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우리의 인생은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가수 신해철 사인은 복막염과 심낭염으로 인한 패혈증이었다. 비슷한 시기, 응급실에 실려가 중환자실까지 갔던 아빠도 조직검사 후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이었다. 예순이 넘은 아빠는 2주 만에 완전히 회복되었다. 깊은 안도와 의문이 들었다. 하늘은 아빠 인생에 세 번이나 죽을 고비마다 살려주었다. 나에게 이 땅에서 다시 한 번 아빠를 허락했다. 나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빼앗긴 아빠라는 존재를 내게는 왜 더 오래 허락했을까.

 

“한나 자매는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야 해. 한국에 있으면 우울증에 걸릴지도 몰라.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한나 자매에게 비수를 꽃게 될 거야.” 깊은 영성으로 신뢰받는 그는 나를 보자마자 캐나다로 돌아가라며 예상치도 못한 말을 쏟아 놓았다. '어느 인생이 그렇지 않겠냐' 마는 서른일곱 유독 이렇게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자리를 잡으면 떠나야 했고, 하고 싶으면 길이 막히고, 사랑하면 비수가 꽂히는 이 삶. 그의 말처럼 내 선택은 왜 잘못되어 있는 걸까.  

 

구약의 아론은 숫염소 두 마리를 제비 뽑아, 하나는 주에게 바칠 염소로 또 하나는 광야에 보내질 염소로 결정했다. 주의 몫으로 뽑힌 숫염소는 향기로운 속죄 제물로, 백성의 죄를 전가 한 숫염소는 광야에 버려졌다. 둘 다 의미 있는 속죄 제물이니 마냥 어떤 모습이라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 인생 모두 하늘의 주권 아래 있다지만, 누구는 옛 시대, 누구는 현시대, 누구는 평탄한 삶, 누구는 고단한 삶, 누구는 주께 바칠 염소, 누구는 광야에 버려질 염소, 각기 다른 삶을 하늘은 어떻게 결정했을까. 나는 이것이 늘 궁금했다. 불공평하고 책임을 미루는 제비뽑기는 하늘에 적용될 수 없다고 항의해본다. 여전히 답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하늘은 내가 원하는 딱 떨어지는 답 대신에“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했다. 그러곤 인생마다 창조주인 그가 담고 싶은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늙고 서글픈 검은 거친 손을 가진 할미에게도, 짧고 소신 있는 인생을 살다 간 한 가수에게도, 죽을 때마다 살려줘야만 했던 내 육신의 아비에게도, 삶이 불확실해 죽을 것 같다고 생떼 쓰는 나에게도 하늘이 담고 싶은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삶의 길에 갈 바를 알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불안정하다 못해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래도 당신이 쥐여준 인생이기에, 당신이 귀하다고 말하는 생명이기에, 한평생 불온전해도 당신의 의도를 발견해야 하지 않겠냐는 내가 여기 있다. /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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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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