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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나를 표현하는 나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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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9-20 09:09 조회1,6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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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단지 성대의 울림에 의한 음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건강 상태나 감정, 의견이나 주장 등을 그대로 드러내는 내면의 표현 그 자체이기도 하다.
 
노래가 끝나고 인사를 건네는 마리아 칼라스


목소리가 주는 힘

“할로~!” 독일인 연출가에게 일상적인 인사를 건넸다. 어쩐 일인지 그는 활짝 웃는 답례 대신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헤이, 우성! 넌 왜 항상 같은 목소리, 같은 톤으로 인사를 하지?” 친절하지만 매우 단호한 어조로 말을 한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할로’가 있다고. 늘 신비스런 동양의 예의를 갖춰줘서 고마워. 하지만 그것보단 난 네가 오늘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는지, 혹시 실연의 아픔에 밤새 술이라도 마셨는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그런 것들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필자는 늘 목소리 덕을 보며 산다. 첫 만남에선 “목소리가 참 좋으시군요. 중저음의 음성이 참 듣기 좋아요”라는 칭찬이 항상 따라온다. “반갑습니다”라는 한마디에 실린 필자의 바리톤 음성은 어색함을 금세 자연스러운 칭찬과 대화로 바꾸어놓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굵고 낮은 목소리는 건강하고 힘세 보이는지 불필요한 시시비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기도 한다. 한번은 관상을 볼 줄 안다는 개량 한복 차림의 택시 기사가 “불여음상이라고 들어봤수? 자고로 관상보다 목소리가 더 중요한 겁니다. 오늘 귀한 목소리 들었으니 택시비는 공짭니다” 하며 한사코 요금을 마다한 황송한 경험도 있다. 

내 목소리의 이런 장점은 독일에서도 그럭저럭 유용하게 작용했던 터라 꽤 가깝다고 여겼던 노연출가의 우정 어린, 그러나 꾸중 섞인 항의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내 목소리 톤이 이상하다고?’

유학 초기의 필자는 미숙한 독일어 탓에 알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세히 말할 수 없었다. 내 뜻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데 따른 폐해는 실로 컸다. 상대에 대한 호감이나 호의를 적절히 표현하지 못해 (아마도 부끄러움 때문에) 본의 아니게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기도 했고, 불만이나 설득을 적절한 어조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이나 미숙함은 퉁명스런 일본 야쿠자 스타일의 말투로 돌변하여 짜증스럽고 교양 없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차츰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의 독일어 실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말하는 데 있어 이런 콤플렉스는 필자의 목소리 어딘가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독일인 연출가에게 전혀 악의 없이, 무심코 내던진 영혼 없는 인사말 한마디가 그에겐 불쾌하게, 좋게 말해봐야 이해할 수 없는 불친절함으로 전달된 것이다. 단 한마디의 목소리가 나의 감정을 왜곡시킬 수도, 상대에게 접근 불가한 울타리를 칠 수도, 강력한 비호감의 목소리로도 쉽사리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양인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다양한 표정과 뉘앙스로 그들의 마음을 목소리에 담아 전달한다. 이러한 그들은 자기의 생각을 적절히 말하지 않거나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숨기려 드는 사람을 지적이지 못하다거나 대인 관계에 폐쇄적이며 심지어는 심각한 성격 장애자처럼 여기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표현에 서툴다. 표현하지 않는 ‘점잖음’을 강요받는 사회적인 분위기 탓이기도 하다. 남자라면 더욱 자기표현에 인색해 차라리 만날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톤의 인사말만 건네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보통이다. 긍정의 표현에는 더욱 인색해 상대방에 대한 반가움이나 기쁨은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고 알려주지 않는다.

필자 역시 좋은 성대의 음질을 갖고서도 정작 친절함과 반가움을 전달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인색했다. 이유 없이 위엄 있는 척하거나 점잖은 목소리로 인사말을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나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상대방에게 드러낸다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이 노연출가의 충고가 아니었다면 평생 생각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목소리가 별로인데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나요?” 음치도 연습하면 노래를 잘할 수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궁무진하게 좋아질 수 있다. 우선 항상 가슴을 활짝 편 당당하고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편안한 호흡을 도와 깊고 탄탄한 목소리를 만든다. 또한 입을 크게 벌리고 혀와 입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또렷한 발음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 생기 있는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해야 한다. 표정이 감정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간단해 보이지만 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필자가 20년 가까이 수행하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목소리는 단지 성대의 울림에 의한 음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건강 상태나 감정, 의견이나 주장 등을 그대로 드러내는 내면의 표현 그 자체이기도 하다. 위에 말한 방법에 아름다운 언어를 더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목소리는 생기를 더해갈 것이며 교양의 윤기가 넘쳐흐르게 될 것이다. 목소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천의 목소리 마리아 칼라스(1923~1977)

누가 가장 위대한 성악가인지, 누가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성악가인지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논쟁이 아닌 개인적인 취향에 관해 질문한다면 필자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리스 출신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를 꼽겠다. 

우아한 외모와 기품 있는 카리스마의 그녀는 생전에 이미 ‘라 디비나’(살아 있는 여신)라 불리며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콜로라투라에서 드라마틱까지, 그리고 이를 넘어 메조소프라노 배역까지 모두 섭렵했다. 더욱이 칼라스는 노래를 소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장 넓은 영역에서 맡은 모든 역할을 최고의 배역으로 승화시킨 역사상 최고의 소프라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유명세만큼 많은 안티 팬이 존재하기도 한다. 더러는 지나치게 도도하고 음색이 균질하지 못하며 쇳소리가 섞인 답답한 소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이 칼라스의 위대함에 손상을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저음, 중음, 고음에서 나오는 각기 다른 음색은 매우 오묘한 마성의 매력을 드러낸다. 거기에 우아한 외모와 기품 있는 카리스마가 어우러져 다른 소프라노는 해낼 수 없는 완벽하게 몰입된 캐릭터를 연기해낸다. 이는 아름다운 소프라노 목소리로 노래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천 개의 배역에 천 개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담아낸 위대한 업적이라 하겠다.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Casta diva)

신의 딸임에도 적의 총독인 로마 장군 폴리오네와 사랑에 빠진 노르마는 두 아들을 낳아 몰래 키운다. 그녀의 부족과 로마는 일촉즉발 전쟁 직전의 상황. 노르마는 달의 여신 앞에서 부족의 평화와 사랑하는 이가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간절히 노래한다.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정상에는 ‘노르마’가 있고, ‘노르마’의 아리아 ‘정결한 여신’은 마리아 칼라스로 대변된다. 

작곡가 벨리니가 마리아 칼라스의 탄생을 예견해 작곡했다고 할 만큼 이 곡은 마리아 칼라스를 대표하는 아리아로 남아 있다. 난해한 기교로 인해 작곡 후 100년 넘게 연주되지 않다가 마리아 칼라스의 성공적인 공연 덕에 다시 생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칼라스의 주요 레퍼토리이며 생애에 걸쳐 80회가 넘는 공연을 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마무어의 루치아’ 중
광란의 아리아(Scena dalla pazzia)



집안의 정략결혼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루치아는 결혼식 날 신랑을 칼로 찌르고 실성해버린다. 피투성이가 된 채 감정의 극단을 오가며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는 무대 위의 인물과 관객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여타의 소프라노는 따라올 수 없는 감정 몰입과 메탈릭한 고음, 특히 가성을 쓰지 않고 절규하는 듯 내뿜는 진성의 고음은 실제 상황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성악가 안우성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국립 음대 성악과를 최우수 졸업하고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스터한 뒤 독일 뮌헨 국립 오페라단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했다. 이탈리아 U.Giordano, R.Leoncavalo 국제 콩쿠르, 독일 A.Rothenberger 국제 콩쿠르 본상 및 특별상 수상. 귀국 후 여성중앙 나눔 합창단 ‘오!싱어즈’의 지휘자로 크고 작은 나눔 공연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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