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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북녘 아버지와 손수건 나눠 갖고 … 또 기약 없는 생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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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0-23 05:19 조회1,4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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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이 22일 끝났다. 기약 없는 이별이 아쉬운 남과 북의 가족들이 손을 뻗어 맞잡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누나, 나처럼 해봐” 차창에 손바닥
남녘 아들 은가락지 주며 “꼭 기억”
워싱턴 일대 이산가족만 1500명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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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이정숙씨가 북측 아버지 이흥종씨의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상봉이 마지막이라는 걸 뒤늦게 안 남측의 딸 이정숙(66)씨는 “아버지”를 부르며 오열했다. 정숙씨는 아버지 이흥종(88) 할아버지에게 “아버지, 이렇게 만나는 게 이제 끝이래요”라며 큰절을 올렸다. 이 할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으며 “굳세게 살아야 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딸은 손수건을 한 장씩 나눠 가졌다. 정숙씨는 “이 손수건, 아버지하고 저하고 나눠 갖는 거니깐 간직하세요”라고 했다. 아버지가 탄 버스가 떠나자 정숙씨는 “내가 60이 넘어서 아버지를 처음 불러봤어. 아버지…”라며 무너졌다.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2박3일간의 제20차 이산가족 1차 상봉 행사가 22일 끝났다.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전 9시30분~11시30분, 두 시간의 작별상봉을 끝으로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남측 이산가족들은 먼저 떠나는 북측 이산가족들이 탄 버스 창문에 붙어 “사랑해”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전하며 울었다.

 북측 누나 박용순(82) 할머니와 남측의 동생 박용득(81) 할아버지는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을 마주했다. 버스를 탄 박 할머니에게 동생은 “누나, 나처럼 해봐”라며 손바닥을 펴 창문에 댔다. 박 할머니도 손바닥을 창문에 붙였다. 팔순이 넘은 동생은 “옳지, 옳지”하며 좋아했다. 박용득 할아버지는 “다시 만나는 데 65년이 걸렸는데, 이제는 그렇게 길면 안 돼”라며 누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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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함께 보고 있는 손편지. [사진공동취재단]

 북의 손권근(83) 할아버지는 아들 손종운(67)씨에게 “다시 만나기 위해 내가 오래 살게”라며 작별인사를 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버지나 나나 고생해서 오래 살 것”이라고 답했다.

 최고령자인 남쪽 김남규(96) 할아버지는 여동생 김남동(83)씨의 주머니에 “손주들 주라”며 과자를 한 움큼 챙겨줬다. 김남동 할머니는 오빠의 어깨에 기대 펑펑 울었다. 김남규 할아버지의 딸 경숙(63)씨는 “나중에 고모가 돌아가셔도 서로 찾을 수 있게 아들한테 지난번에 가르쳐 준 우리 주소를 꼭 알려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북측 남철순(82) 할머니는 여동생 남순옥(80) 할머니에게 안겨 통곡했다. 남철순 할머니는 “통일 되면 우리 가족들이 다 같이 큰 집에 모여 살자. 이런 불행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손바닥으로 상봉장 테이블을 수차례 내리쳤다.

 오인세(83) 할아버지와 이순규(85) 할머니 부부도 작별의 정을 나눴다. 북측 아버지를 65년 만에 만난 아들 오장균(65)씨는 아버지의 가슴에 손을 얹고 “여기에 아들 심고, 며느리 심고, 어머니 심고 그렇게 사세요”라고 했다. 오 할아버지는 아내와 아들, 며느리를 양팔에 안고 “이렇게 안는 것이 행복이다. 내 인생에 처음이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는 남편에게 “왜 자꾸 눈물을 흘리느냐”며 “나는 행복합니다. 건강하세요. 행복합니다. 딴 건 없습니다”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꼭 기억하라”며 작별선물로 은가락지를 끼워줬다.

 ◆상봉 후 우울증 겪는 이산가족들도=짧았던 이산가족 상봉이 가족들에겐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한국적십자사는 지난해 3월 19차 이산가족 상봉자 2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당시 83명의 이산가족이 상봉 후 ‘답답하고 허탈하다’고 답했다.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답한 이산가족도 20명이나 됐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이상철 위원장은 “상봉 후 다시 볼 수 없다는 상실감과 북의 가족들을 도울 수 없다는 좌절감에 많은 이산가족이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고 화상 상봉, 서신 교환 등을 통해 안부를 지속적으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이산가족 “우린 언제”=이번 상봉 행사를 지켜본 미주지역 이산가족들은 “우리는 언제 만나나”라며 안타까워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컬럼비아에 거주하는 김주열(80)씨는 “나는 언제쯤 북의 친척을 만날지 모르겠다. 왠지 내겐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지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워싱턴 일대에 거주 중인 이산가족은 1500여 명이다. 하지만 한국 내 고령 이산가족이 우선 선발돼 1985년 이후 워싱턴 일대의 한인이 상봉 명단에 포함된 적은 없었다. 남측 신청자 90명과 동반가족들이 북측 가족 188명을 만나는 2차 상봉 행사는 24~26일 금강산에서 열린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워싱턴 중앙일보 유현지 기자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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