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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어차피 사기친 돈, 총책도 속이자 … ‘통주’와 짜고 빼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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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7-29 08:13 조회2,9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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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국내에 점조직을 두고 활동해 온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중국 총책까지 검거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또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을 수사한 성동서 지능팀, 보이스피싱 조직원 최모씨의 진술 등을 취재해 보이스피싱 범죄를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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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이스피싱 범죄에 빠져드는 통주 (최모씨)

 “너 돈 필요하지? 교도소에서 만난 친구가 ‘요즘 본인 통장으로 돈만 송금받아 인출해 주면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몇백만원씩 수수료를 떼 준다’고 하던데.”

 유흥업소에서 같이 일하는 형이 이렇게 나를 떠보더니 돈벌이를 소개해 줬다. 일은 단순했다. 내 통장에 들어온 돈을 인출해 조직원에게 전달하고 10% 정도 수수료를 챙기면 끝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나 같은 인출책은 ‘통주(통장주인·현금인출책)’라고 불린다. 예전엔 대포통장을 사들여 돈을 인출했다. 요즘은 본인이 아니면 인출이 어렵고 대포통장 값도 비싸져 직접 통장 명의자를 고용한다. 최근엔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고 아르바이트 삼아 통주가 된 사람도 적지 않다.

 어느 날 A조직의 ‘중간책’ 강모(31)씨가 아주 솔깃한 제안을 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500만원을 주겠다는 거였다. 지난 5월 18일, 누군가 보이스피싱에 당해 내 통장에 2400만원을 입금했다. 강씨의 지시로 은행에 가 돈을 찾았다. 여기까진 일반적인 통주가 하는 일과 같았다. 그런데 은행 문을 나서자 경찰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입니다. 누군가 폭행사건 가해자를 봤다며 선생님을 신고했는데요.”

 나는 못 이기는 척 경찰차에 탔다. 경찰서에선 “폭행사건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했다. 경찰관은 “참 희한하네. 신고자는 전화기를 끄고 잠적해 버리고”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강씨가 꾸민 시나리오대로였다. 강씨의 말이 또렷이 떠올랐다. “걱정 마. 보이스피싱 본부가 다 어딨느냐? 중국이야. 빼돌려도 그냥 경찰에 뺏긴 줄 알지, 중국에서 어떻게 알겠느냐. 내가 이 생활 몇 년인데. 어차피 눈먼 돈이야.”

 #2. 속고 속이는 복마전(중간책 강씨)

 몇 년간 보이스피싱 조직 중간책으로 일해 보니 보이스피싱이란 게 그렇다. 결국 돈은 범죄수익이고 총책은 중국에 있다. 돈이 없어져도 신고할 수 없다. 조직에는 경찰에 걸려 돈을 날렸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새로 온 통주 최씨(25)와 일을 꾸미기로 한 거였다. 다른 조직원들이 은행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지만 그들을 속이는 건 어렵지 않다. ‘경찰차’를 보여주면 된다. 

 5월 18일, 최씨가 돈을 찾으러 은행에 들어간 사이 측근을 시켜 “폭행사건 가해자를 발견했다”고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돈을 찾아 나오는 최씨를 임의동행해 데려갔다. 최씨는 당연히 무혐의로 풀려난다. 그 뒤엔 돈을 나누면 끝이다.

 “이거 어쩌죠. 경찰이 냄새를 맡았네요. 아시잖아요. 요즘 돈 찾는 게 쉽지 않아요.”

 A조직에는 이렇게 둘러댔다. 그 뒤 최씨에게 500만원을 떼 주고 1900만원은 빼돌렸다. 누구나 ‘눈먼 돈’을 노린다. 통주도, 운반책도 믿을 수 없다. 지난 3월엔 경남 김해에서 20대 통주 2명이 600만원을 빼돌렸다. 돈이 입금되면 즉시 인출을 정지시키고 체크카드를 만들어 돈을 빼냈다. 지난 5월엔 서울 광진구의 한 호텔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수익금 9억여원을 둘러싸고 조직원들과 환전상 사이에 칼부림이 일어났다. 운반책은 통주를 감시하고, 중간책은 운반책을 감시한다. 또 총책은 중간책을 의심한다. 이곳은 진흙탕이다. 

 #3. 휴가 내고 중국 가 총책 검거 (이동락 경위)

 보이스피싱은 대개 중국에 거점을 두고, 국내에 수많은 점조직을 구성한다. 몇 달간 계좌를 추적하고 밤새 잠복해도 겨우 통주 몇 명을 잡을 뿐이다. 최근엔 수익금을 둘러싼 파생 범죄도 끊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는 것이다. 우리는 총책을 잡아 뿌리를 뽑기로 했다.

 지난 3월 중국에서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정모(35)씨를 검거해 중국 내 콜센터의 위치와 총책의 신상을 파악했다. 중국의 총책들은 매번 꼬리 자르기를 하며 범행을 이어 왔다. 이번엔 제발…. 중국대사관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지만 처음엔 거절당했다. 하지만 계속 문을 두드렸다. 끈질긴 설득 끝에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4월, 직접 중국 칭다오(靑島)로 갔다. 고급 아파트에 위치한 중국 콜센터는 경비가 삼엄했다. 보이스피싱에 이용되는 ‘위성접시’도 줄줄이 달려 있었다. 한 달 뒤, 혹시 눈치를 채고 콜센터를 옮기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휴가를 내고 다시 칭다오에 갔다. 아직 공조 수사에 대한 확답은 없었다.

2주 후 또 휴가를 내고 중국을 방문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이미 ‘한국 경찰이 보이스피싱을 잡으러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쫙 퍼져 있었다. 그렇게 네 번째 방문, 지난달 19일 중국 공안이 마침내 움직였다. 수사 기록을 넘겨받은 공안은 근거지 3곳을 급습해 B 조직 총책 이모(31)씨 등 3명을 체포했고 일당 3명도 연달아 체포했다. 한국 경찰이 중국 보이스피싱 총책을 잡은 건 처음이다.

  윤정민·박병현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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