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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최은희 '늙어봤니, 나는 젊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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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edbear3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7-06 15:23 조회1,4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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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은희 선생을 인터뷰하는 날 아침, 담당 기자인 박정호 에디터와 회사 근처에서 우연히 맞닥뜨렸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수선화를 구하러 다닌다고 했다. 근처 꽃가게를 죄다 다녔는데 수선화가 없다고 푸념했다. 

난데 없이 웬 수선화일까? 
최 선생에게 수선화를 선물하려함은 일겠는데 그 의미는 알지 못했다. 

아침의 조우 덕에 나 또한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고민했다. 마침 그 전날 한 선배로부터 받은 네잎클로버가 떠올랐다. 딱 하루 소장했으니 드려도 괜찮겠다 싶었다. 

인터뷰 장소인 용인 수지의 한 카페로 이동하며 박 에디터에게 네잎클로버를 건넸다. 박 에디터가 준비한 선물과 함께 드리라 했다. 

미리 당도해 기다렸다. 최 선생을 태운 승용차가 도착했다. 
창문을 열고 인사를 나눴는데 내리지를 않는다. 

금방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도와주는 이가 휠체어를 준비했다. 
차에서 내려 휠체어로 옮겨 타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페로 들어서선 다시 의자로 옮겨야 했다. 불편하면 그냥 휠체어에 앉아도 된다고 했다. 
한사코 옮겨야 한다고 했다. 휠체어 탄 모습을 사진으로 찍히기 싫다고 했다. 
다시 의자로 옮기는 일, 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사실 건강이 여의치 않아 인터뷰를 두 번 미룬 터다. 그날도 오전에 투석을 하고 왔노라고 했다. 척추협착증으로 5년 전부터 휠체어 신세에다 1년 전부터 1주에 3회 신장투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박 에디터가 준비한 화분과 네잎클로버를 내어 놓았다. 
“선생님 원래는 수선화를 준비하려 했는데 구하지 못했습니다. 항상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강조하셨는데, 수선화의 꽃말이 자존심이더라구요. 다음엔 꼭 수선화를 준비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수선화를 찾아 헤맨 이유를 알아챘다. 
그리고 구태여 휠체어에 앉지 않고 불편한 의자를 고집한 이유도 그 자존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 듯 했다. 

올해 우리 나이로 구순(九旬), 사실 휠체어가 아니었으면 나이와 건강상태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단정하고 고왔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박 에디터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곱다며 운을 뗐다. 
“어휴! 이제 ‘병신’이 다 됐어요. 눈이 침침해져 식탁 위 반찬도 겹쳐 보일 때가 있어요. 젊어선 몰랐어요. 어머니가 아프다고 하시면 그저 주물러 드리곤 했는데, 이제는 그 고통을 피부로 느껴요. 요즘 젊은이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요. ‘너희는 늙어 봤니, 나는 젊어 봤다’”라고 답하며 활짝 웃었다. 

‘너희는 늙어봤니, 나는 젊어봤다’는 구순 배우의 답에 적잖이 놀랐다. 자존심을 잃지 않은 당당함, 영락 없이 수선화가 그려졌다. 

박 에디터가 평소 배우의 자존심을 강조한 이유를 물었다. 
“그게 없었다면 수많은 시련과 유혹에 버텨낼 수 없었을 겁니다. 이건 ‘잘난 척’하는 우월감이 아니에요.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태도입니다.” 

또렷한 발음으로 덧붙였다. 
“화려하게 살아온 것 같지만 지금까지 변변한 패물 하나 없어요. 촬영장마다 짐을 풀고 다시 싸는 ‘트렁크 인생’이었죠. 신 감독과 함께하면서 개런티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김도향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입니다. 장례식장에 틀어달라고 부탁도 해놓았어요.” 

그러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손가락에 낀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가늘어진 손가락 탓에 헐거워져 실로 칭칭 감았노라고 했다. 묵주 반지였다. 
스스로 바보처럼 살았다는 삶, 그 바보 같은 삶을 지탱해준 게 그 반지요, 자존심이리라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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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들으며 삶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신상옥(1926~2006) 감독과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납북, 신 감독과의 재회, 다시 탈북. 영화보다 더 영화같이 살아온 최 선생은 스스로의 삶을 “한바탕 길고 긴 꿈을 꾼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 중간, 하필이면 최 선생이 앉은 자리로 햇볕이 들어왔다. 더운 날씨에 햇볕이 들어오니 연신 휴지로 땀을 닦아내었다. 간간이 흐트러지는 스카프의 매무새를 고쳐 매었다. 

사진기자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거니와 배우로서의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마무리 사진을 찍으며 화장을 직접 하셨냐고 물어봤다. 

“그래야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속눈썹도 직접 그렸어요”라고 했다. 
신장 투석을 하고 와서, 화장을 하고 단장을 하며 인터뷰 준비를 했을 그 모습이 그려진다.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위한 구순 배우의 마음이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수선화를 검색했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란 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를 곱씹는데 최 선생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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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중략)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혹여나 다시 최은희 선생을 만난다면 네잎클로버가 아닌 수선화를 드리고 싶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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