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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민초 이유식의 러시아 여행기] 20일간의 러시아 여행을 떠나다- [다섯째 날]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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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1-10 15:10 조회1,2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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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화가 일리아 레핀의 '결투'

조국이 임오군난이 일어나고 우정국 낙성식에 수구파를 제거한 개화파는 고종 황제를 아관 파천을 시킨다.  

아관은 러시아 대사관 이름 이다. 러시아 대사관에서 며칠을 머무는 동안 민비는 청군을 불러드려 개화파를  몰아내고 고종 황제는 다시 옛 궁궐로 돌아 온다. 아 슬프다. 이 때 러시아는 지하 100미터의 지하철을 타고  있었으며 과학 문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조국은 당쟁으로 병들어 갑론을박을 하고 있었으니  이 참담한 현실을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기억하며 반성하며 살아야 할까. 

그 때 조국에서 당쟁을 일삼을 때 러시아는 지하 100 미터의 지하철을 교통 수단으로 사용했으며 그 때 아니 그 전에 만든 지하철을 필자가 관광객이 되어타고 보니 우리 민족의 민족성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질시와 증오의 세계 내가 아니면 안되고 남이 잘되면 배가 아파오는 민족성을 한탄해 보는 순간이다.
 
여기서 푸쉬킨을 다시 한번 상고해 보면 푸쉬킨의 본명은 알렉산드르 세르게에비치 푸쉬킨이다.그는 1799년 5월 6일 출생하여 1837년 2월 10일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외조부는 에디오피에서 이민을 와 군인으로서 승승 장구를 하여 장군이 되고 귀족의 반열에 오른다. 

그의 생애를 간단히 피력한다면 유년시대에는 백부 바실리와 친지인 카람진 제톱스키 등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들의 영향을 받는다. 1811년에서 부터 1817년까지 세인트 피터스 버어그 차르스코예셀로의 전문학교에서 수학을 했으며 1820년 농촌이라는 시가 널리 알려지고  이 시는 정부에 대한 반항이란 명목으로 남부 러시아로 유배를 보낸다. 그 때 푸쉬킨은 키시너우나 오데사에서  살았으며 그 시절 데카브리스들과 지내며 그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데카브라스라는 것은 일종의 시민 단체로서 낙후된 질서를 파계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시민운동을 뜻하고 있다. 1824년 타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하다가 잡혀 다시 유배의 길에 오른다. 

1837년 1월 27일 그의 아내 나탈랴 곤차로바 를 짝 사랑하는 푸랑스 망명 귀족 단테스와 최후의 결투로 부상을 입은 2틀 후 38세의 나이로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시 중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시 이기에 이 시는 다음으로 미루고 그의 시 꿈의 전문을 여기에 기록해 본다. 이 시는 푸쉬킨의 삶이란 시 못지 않게 필자가 좋아 하는 때문임을 밝히며 독자님들과 같이 한번 음미코자 한다.
 
꿈이여/ 꿈이여/너의 달콤함은 어디로 갔느냐/
밤의 기쁨이여/너는 어디로/ 어디로 갔느냐/
즐거운 꿈은 사라지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잠이 깬다/
주위는/ 말없이 밤에 싸여 있다/
사랑의 꿈은/싸늘하게 식어/ 한순간에 멀리 날아갔구나/
아직도 영혼은/ 욕망으로 가득차/ 추억의 꿈을 낚는데/
사랑이여/사랑이여/ 너의 환영을 내게/다시 한번 보내 주렴/
다시 한번 환희에 젖어/ 아침이 되어도 깨어나지 않은 채/
죽을 수 있게 해 다오.
 
아내를 탐하는 남자로부터 사랑과 명예를 지키려고 결투를 벌인 그는 그의 동서이자 연적의 총탄에 쓰러졌으니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며 남자에게 명예라는 것은 무엇인지  마음 한편 아련하고 쓸쓸함이 깃들게 한다. 

그 날도 세인트 피터스버어그의 아침은 옛날의 아침이나 별 차이가 없이 태양도 뜨고 사람들은 일상에 몰입한 날이였다 오후 4시가 넘어 교외 공터의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주변은 나무가 둘러싸고 있고 두껍게 눈이 쌓인 러시아의 전형적인 겨울 풍경이다. 총을 든 두 남자의 눈가에 분노와 긴장이 서리발 같이 감돈다. 정적을 깨뜨리며 발사된 총탄. 한 남자가 배를 움켜쥐며 눈밭에 쓰러진다. 눈밭을 적시는 낭자한 선혈. 온 얼굴이 눈 범벅이 된 채 겨우 일어난 남자가 소리친다. 

"브라보!"  이 남자 푸쉬킨은 세인트피터스버어그 모이카 12번지에 있는 집으로 급히 옮겨진다. 때는 1837년 2월 8일 오후 4시 30분경. 남자는 이후 이틀 동안 심하게 앓았다.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남자. 아내는 남편의 비명에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남자는 아내가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의 방에 들어왔다. "얼음을 달라!"  아내가 갖다 준 얼음을 이마에 올려 굴리다가 얼음을 먹는 남자. 그가 입을 연다. "잘 있어! 친구들!" 곁을 지키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느닷없이 친구라니. 그가 부른 친구란 서재에 있는 책들이었다. 남자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꿈에서 책 더미 위로 올라갔어요. 책 더미가 너무 높아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지요"
 
2월 9일과 10일에 걸쳐 모이카 12번지 주변에 2만여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크게 놀라 명령을 내렸다. 장례식 장소를 비밀리에 변경할 것, 일반인의 장례식 참석 엄금, 가족과 친구들만 참석 가능, 군대는 비상 대기할 것, 황실 주치의를 보낼 것, 불법 결투를 벌였지만 사면할 것, 신문의 과격한 추모 기사는 엄금' 결국 남자는 2월 10일 숨을 거두었다. 

러시아 구력(舊曆) 1월 29일. 신력으로 2월 10일 오후 2시 45분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쉬킨이 38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법으로 금지돼 있던 결투를 벌인 푸쉬킨의 상대는 조르주 단테스. 러시아로 망명한 프랑스군 장교로 네덜란드 공사 헤케른의 양자였다. 

푸쉬킨이 단테스의 양아버지 헤케른에게 모욕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내자 단테스는 푸쉬킨에게 결투를 신청한 것이다. 그들이 결투한 곳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서 있다. 

결투를 위해 두 사람이 각각 자리 잡았던 곳이다. 푸쉬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 에서 렌스키는 오네긴과의 결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렌스키의 운명이 곧 푸쉬킨의 운명이 되고 말았으니, 설이 하나의 예언이 었던가. 꽃다운 16살 소녀 곤차로바를 처음 만나 '아!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여인이여!'라며 정열을 불태웠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건만, 매혹적인 자태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1831년에 결혼해 네 명의 자녀들을 남겨두고 푸쉬킨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곤차로바는 1844년 재혼을 했다.
 
오후에는 케스린 궁을 관람했다. 휘황찬란한 금 물결로 장식된 모든 예술품과 가구들이 즐비하다 3층의 건물을 몇번인가 개축을 했기에 새 건물같고 앞 광장에는 호수와 깊어가는 가을 하늘이 여행객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이 케스린 궁에는 장래 러시아를 짊어지고 나갈 귀족의 자녀들이 공부를 하는 특별한 학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푸쉬킨도 이 귀족하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한다. 15명의 학생들이 여기에서 공부를 하면 이나라의 장관도 되고 이나라를 경영해 나가는 모델 학교 였다. 

푸쉬킨이 이 학교를 졸업할 때의 성적은 하류에 속했으며 남어지 14명은 졸업후 장관도 되고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 성장해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한다. 그러나 관료보다 글을 쓰며 민중의 삶과 나은 세계를 추구한 푸쉬킨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이 14명의 부귀 영화를 누린 다른 사람들 어느 누구도 세계인은 기억하지 않지만 푸쉬킨의 이름은 인류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으니 그의 철학과 생애가 얼마나 위대했으며 앞날을 보는 예지에 필자는 머리를 숙였다. 

주변에는 푸쉬킨 식당 카페. 스바니어점 등 모두가 푸쉬킨으로 꽉 차있는 케스린 궁전을 보았다. 유람선으로 돌아와 몇 그라스의 와인을 걸쳤것만 잠은 오지 않아 푸쉬킨을 그리며 자작 시 한수를  썼으니 여기에 상재해 본다.시제는"이 그리움을"로 붙여 보았다 푸쉬킨을 그리는 그리움만은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당신은 아는가 / 어느 먼 곳에서 찾아왔던 인연이 / 생존의 폭죽으로 터지며 / 은은히 풍겨주는 당신의 향내를.
당신은 아는가 / 내 마음 깊고 깊은 곳에  / 당신을 생각하며 / 눈물로 간직했던 / 지난 날의 기쁨을.
당신은 아는가 / 지금은 영영 멀어져간  / 당신의 환영을 영원히 간직하고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를.
당신은 아는가 / 내 사랑의 깊이를  / 내 눈물의 깊이를   / 무궁화 꽃잎의 흔들림을.
당신은 아는가  / 사랑의 기쁨이 고통으로 변할 때  / 내 조국 내 동포는 멀리있고 /
그 사랑 은 슬픔을 안고  /  먼 길을 떠났슴을  / 오 내 사랑이여 / 내 그리움의 깊이여  /  당신 마음의 깊이여 /
풀벌레는 울면서 울면서 잠행의 길을 떠나노라.  이런 시 한편을 상재하며 또 한 그라스의 와인을 마셨다.
 
이제 이 유람선은  3 박 4일의 세인트 피터스버어그의 관광을 마치고 아디오를 외치며 유럽에서 제일 큰 대양같은 호수 라도가를 향해 항해의 닻을 올리고 있다. 나는 문득 삶이란 무엇인가 푸쉬킨의 시처럼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고 살아간다면 언제나 기쁨이 오려니를 중얼거리면서 살아가야 하나 정녕 그렇지만 않으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즉 돈을 많이 벌고 명예를 얻어 출세를 해서 만인으로 부터 추앙을 받고 한평생 평탄한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잘 살아가는 삶이라 할지 모르지만 삶이란 이 보다는 안락을 버리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자유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도 잘 살아가는 삶이란 생각을 하며 대양같은 호수에 진입한 유람선의 배전에 파도가 철석임은 내 마음의 철석임이라 흥얼흥얼하며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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