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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거대 협곡의 속살, 원시 지구를 보는 듯 숨이 턱 막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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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2-04 11:36 조회1,1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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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 매더 포인트에 모인 관광객이 일출을 지켜보고 있다. 전망대 주변에는 눈이 소복이 쌓였지만, 협곡 안쪽은 15도 정도 기온이 높아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랜드 캐니언을 무덤덤하게 맞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랜드 캐니언에 대해 얼마나 많이 들어보았든, 사진을 보았든, 막상 가보면 숨이 턱 막힌다.” 미국 작가 빌 브라이슨이 『발칙한 미국 횡단기』에 쓴 것처럼 그랜드 캐니언 앞에서는 누구든 속수무책이 된다. 자연 풍광에 별 감흥이 없는 사람, 제 아무리 무뚝뚝한 사람도 터져나오는 탄성을 억누를 수 없다.
 

지난달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에서 나흘을 머물렀다. 협곡 안으로 걸어 내려가기도 했고, 협곡 위를 헬기를 타고 내려다보기도 했다. 비가 내렸고, 눈도 쏟아졌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불리는 이 거대한 협곡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감동을 안겨줬다.


억겁의 세월이 빚은 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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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은 미국 애리조나주 북부에 있는 거대 협곡이다. 협곡의 동서 길이가 400㎞가 넘는다. 평균 폭은 16㎞, 최대 깊이는 1.6㎞에 달한다. 협곡 아래로 콜로라도강이 흐른다. 협곡 아래에서 보면 롯데월드타워(555m) 3개를 쌓은 높이다. 역사도 장구하다. 의견이 분분한데, 멀리는 약 20억 년 전, 가까이는 600만 년 전부터 발생한 지각 활동으로 협곡이 생겼다고 한다. 억겁의 세월이 빚은 풍경 앞에서 인간은 먼지처럼 초라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거대한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에서도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은 노스 림(North Rim)과 사우스 림(South Rim)이다. 노스 림은 해발 2438m로, 사우스 림보다 400m 높다. 춥고 눈이 많이 내려 5~10월에만 개방한다. 반면 사우스 림은 지형이 평탄하고 날씨가 따뜻해 연중 관광객이 찾는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을 듯한 협곡 안에 예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았다. 하바수파이와 왈라파이 부족이 깊은 협곡 안 강가에 터를 잡고 살았다. 서양인이 처음 협곡을 찾은 건 1540년 즈음이었다. 스페인 탐험대가 금을 찾다가 협곡까지 이르렀다. 그랜드 캐니언이 관광지로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19세기 들어서였다. 지질학자 존 웨슬리 파월이 배를 타고 콜로라도강을 탐험한 뒤 계곡의 엄청난 규모에 놀라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명명했다. 파월은 1871년 두 번째 탐험을 마친 뒤, 그랜드 캐니언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렸다. 1919년 그랜드 캐니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그랜드 캐니언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BBC가 실시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50곳’ 설문조사에서도 1위에 올랐다. 한국인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미국 여행지이기도 하다. 해마다 440만 명 이상이 그랜드 캐니언을 찾는데, 거의 절반이 외국인이란다.

죽기 전에 꼭 가볼 곳을 찾아 또 한 명의 이방인인 기자가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도착했다. 자동차를 몰고 동쪽으로 4시간 30분을 달렸다. 숙소가 몰려 있는 그랜드 캐니언 빌리지에 도착한 건 한밤 중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비와 눈이 만든 또 다른 비경
 
 

데저트 뷰 전망대.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명당이다.

 

오전 4시 30분. 일출을 보기 위해 매더 포인트(Mather Point) 전망대로 향했다. 이미 하늘은 진한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둠을 헤치며 함께 걸어가던 사람들이 연신 “오 마이 갓”을 외쳤다. 점점 붉어지는 하늘을 보니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다. 자연의 힘과 색에 압도당해 말을 잊었다. 점차 하늘이 밝아지며 협곡 사이로 한두 줄기 햇살이 사선으로 비쳤다. 어둠 속에 숨죽이고 있던 바위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랜드 캐니언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일출은 처음이었다. 그랜드 캐니언은 일출과 일몰을 꼭 봐야 한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그랜드 캐니언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반전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공원을 순환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셔틀버스는 개인 차량으로 갈 수 없는 곳까지 다니는 만큼 색다른 풍광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밋 휴게소(Hermits Rest)까지 가는 레드 루트(Red route) 버스를 탔다. 인상이 험악한 운전기사가 안내방송을 했다. “버스 안에서는 음식을 먹어도 안 되고, 장난쳐도 안 되고, 물도 마시면 안 됩니다.” 잠시 후 기사는 자신의 물통을 집어들더니 거만한 표정으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마개가 있는 물통은 괜찮습니다. 허허허.” 기사의 농담에 관광객 모두 큰 웃음을 터트렸다.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마리코파·파월·호피·모하비 포인트에 차례대로 멈춰섰다. 먹구름이 비를 뿌리며 계곡으로 들어와 봉우리를 에워싼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안개가 피어올라 시선을 가렸다가, 바람이 불면 파란 하늘 밑으로 계곡이 드러났다. 구름 사이로 빛이 내리며 협곡을 비추기도 했다. 협곡에 무지개가 드리운 모습은 단연 압권이었다. 무지개를 세 개나 봤으니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맑은 날보다 훨씬 웅장하고 다이내믹한 풍광이었다. 비를 맞으며 레드 루트의 종점인 허밋 휴게소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어느새 어두워졌다. 협곡은 구름과 안개로 가득 채워졌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다음날 사우스 림 주변은 하얀 눈 천지였다.


협곡 속으로 내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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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


그랜드 캐니언에는 걸어서 협곡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트레일이 여럿 있다. 개중에서 그랜드 캐니언 빌리지에서 출발하는 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Bright Angel Trail)이 가장 인기가 높다. 협곡 아래 야영장까지 15.3㎞ 길이로, 이 코스를 모두 걷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왕복 30㎞이니 하루 만에 다녀오기도 버겁거니와, 표고 차가 1300m를 넘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협곡 중턱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이 간편한 복장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길은 생각보다 완만했다. 지그재그 모양의 트레일은 누구나 걷기 쉽게 잘 닦여 있었다. 위에서 내려보기만 했던 협곡 속을 걸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 모두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걸었다. 협곡과 나무에 하얀 눈이 덮여 더 수려한 풍경을 선사했다. 20분만 내려가려 했는데 경치에 취해 걷다 보니 이미 45분이 지났다. 협곡 속에서 어떤 힘이 강하게 끌어당기는 듯했다. 협곡 밑에서 야영을 하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야영은 다음 기회로 남겨뒀다. 다음엔 철저하게 준비해 콜로라도강에 발을 담가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 헬기투어

 

그랜드 캐니언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헬기나 경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러나 기상 악화로 헬기 출발이 연거푸 연기됐다. 이틀을 기다린 뒤에야 헬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국립공원 남쪽 관문인 투사얀(Tusayan)으로 향했다. 독일·중국·푸에르토리코에서 온 관광객과 함께 헬기에 올랐다.

설렘과 불안이 교차했다. 프로펠러가 굉음을 내며 돌더니 헬기가 땅을 차고 떠올랐다. 그랜드 캐니언 쪽으로 방향을 잡은 헬기가 엄청난 속도로 질주를 시작했다. 녹색의 고원지역을 지나자 발 밑으로 땅이 푹 꺼진 협곡이 나타났다. 오금이 저렸고, 저절로 눈이 감겼다. 헬기는 인간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았을 협곡 위로 날아갔다. 비와 콜로라도강의 침식작용으로 드러난 협곡의 속살은 짙은 회색이었다. 지금까지 봤던 협곡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수만 년 전으로 돌아가, 사람도 문명도 없던 원시 시절의 지구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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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입장료는 자동차 1대에 30달러다. 최대 7일 머물 수 있다. 길 상태, 하이킹, 셔틀버스 노선 등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nps.gov/grca)에 잘 나와 있다. 국립공원에서 하루 이상 머문다면 빌리지 안에 있는 숙소를 잡는 게 좋다. 이번에는 야바파이 로지(visitgrandcanyon.com)에 묵었다. 로지에 식당과 슈퍼마켓이 있어 편했다.



글·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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