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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그 길 속 그 이야기- 지리산둘레길 오미~방광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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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edbear3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7-09 04:43 조회1,1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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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 운조루, 대숲, 장수마을 당물샘 … 힐링이 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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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마을 어귀에 서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을 걷는 길이 아니라 지리산 자락의 마을과 마을을 이은 길이다.



다시 지리산에 들었다. 오랜만이었다. 지리산에 소원했던 시간을 돌아보다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세상이 나를 내팽개쳤다고 느꼈을 때 지리산을 찾았다. 그 산자락 어느 깊은 골에 숨어 들어가 상처 입은 짐승 모양 옹크리고 살았다. 시간이 흘러 다시 지리산을 찾은 지금 세상과 연을 끊고 지리산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도 지난날의 나처럼 지리산 자락에 제 상처를 비비며 지우고 있었다. 그래, 이게 지리산이다. 잘난 놈이거나 못난 놈이거나 품으로 들어오면 기꺼이 가슴을 열어 젖을 물리는 어미와 같은 산이다. 지리산둘레길을 걸었다. 오랜만이었다. 산자락을 따라 난 마을을 들렀고, 지리산에 기대어 사는 삶과 눈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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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이 불편한 이유

지리산둘레길 얘기부터 해야겠다. 제주올레를 생각하고 지리산둘레길을 걸었다가 고생만 하고 돌아왔다는 불평을 여러 번 들은 바 있어서다. 제주올레와 비교해서 설명하면 더 쉽겠다.

지리산둘레길은 제주올레와 더불어 국내 트레일(trail. 걷기여행 길)의 효시라 할 수 있다. 2007년 1월 지리산둘레길을 조성·관리하는 주체 ㈔숲길(이사장 도법스님)이 꾸려졌고, 이듬해 4월 시범구간(산내∼휴천)을 개통하며 선을 보였다. 그리고 2012년 5월 25일 모두 22개 코스 274㎞ 길이의 지리산둘레길이 완성됐다. 현재는 2개 지선이 추가돼 22개 코스 295㎞에 이른다.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는 2007년 9월 7일 설립됐고, 같은 달 17일 제주올레 1코스가 개장됐다. 제주올레는 2012년 11월 24일 26개 코스(부속 코스 5개 포함) 425㎞ 길이의 제주도 올레길을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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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트레일은 걷기여행의 열풍을 몰고온 주인공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열었고, 같은 해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산과 가장 큰 섬을 한 바퀴 도는 장거리 트레일을 각각 완성했다. 두 길 모두 새 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옛길을 찾아서 복원한다는 원칙을 공유한다.

지리산둘레길은 민간운동 차원에서 시작해 민관 협력사업으로 진화했다. 지리산 자락의 네 남자, 그러니까 실상사의 도법·수경스님, 박남준·이원규 시인이 2004년 45일 동안 지리산 둘레를 걸어서 한 바퀴 돈 생명평화탁발순례가 발단이 됐다. 당시 정부가 이들이 걸었던 길을 토대로 지리산 옛길을 복원하는데 예산을 지원했고, 지리산을 끼고 있는 3개 도 5개 시·군(전북 남원시, 경남 함양군·산청군·하동군, 전남 구례군)이 트레일 조성과 관리에 참여했다. 지금은 민간단체 ㈔숲길이 지리산둘레길 운영을 담당한다.

반면에 제주올레는 처음부터 끝까지 민간의 힘으로 일군 트레일이다. 서명숙 이사장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고서 제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 낸 트레일이 제주올레다. 제주올레는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자치단체 예산이 고정적으로 배치되지 않는다. 이따금 ㈔제주올레가 주최하는 행사에 후원자격으로 결합하는 정도다.

지리산둘레길은 솔직히 제주올레보다 불편하다. 길 이름부터 헷갈린다. 지리산둘레길은 제주올레처럼 코스 앞에 숫자를 붙이지 않는다. 이번에 걸은 길 이름도 ‘오미∼방광 구간’이다. 지리산에 어두운 사람이면, 이 길이 지리산 어느 자락에 얹힌 길인지 알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 지리산둘레길은 포장도로가 많다. 지리산 깊은 숲에 난 보드라운 흙길을 상상했다가 실망한 사람도 많다. 제주올레처럼 편의시설이 많은 것도 아니다.

바로 이 불평과 불만에 지리산둘레길의 특징이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 기슭에 들어선 마을을 잇는 길이다. 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잇다 보니 길 이름에 마을 이름이 들어갔고, 마을 주민이 실제로 걷는 길을 찾다 보니 포장도로가 많다. 지리산둘레길은 모두 120여 개 마을을 지난다고 꼭 밝힌다. 제주올레도 제주 사람이 걷던 옛길을 이었지만, 길이 통과하는 마을 개수를 일일이 세지 않는다. 여기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

지리산둘레길은 애초부터 관광객을 우선 고려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지리산에 들려면 이 정도 수고는 감내해야 한다는, 순례를 나서는 탁발승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야 한다는 생각이 지리산둘레길에는 깔려 있다. 지리산둘레길보다 제주올레를 걷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열혈 매니어는 지리산둘레길이 제주올레에 못지 않은 까닭이다. 지리산에 들려면, 마음부터 고쳐먹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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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대청. 왼쪽의 대청마루는 통나무다.



week&이 걸은 지리산둘레길은 구례군 토지면 오미마을과 광의면 방광마을을 잇는 12㎞ 구간이다. 구례 구간은 2012년 5월 지리산둘레길이 완전 개통할 때 일제히 조성됐다. 역사가 가장 짧은 구간이어서, 가장 덜 알려진 구간이기도 하다. week&도 구례 구간은 이번에 처음 걸었다. 

구례 구간 7개 가운데 오미∼방광 구간을 고른 이유가 있다. 오미∼방광 구간은 지리산 남쪽 기슭의 삶을 들여다보는 코스다. 지리산 남쪽 자락에 걸터앉아 섬진강을 내려보는 볕 바른 농촌마을 7곳을, 길은 꼬박꼬박 들어갔다가 나온다. 풍수에 문외한이어도 동네가 앉은 터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그 첫 증거가 되는 장소가 오미마을의 고택 운조루(雲鳥樓)다.

운조루는 남한 3대 길지(吉地)로 알려진 명당이다. 노고단의 옥녀가 형제봉에서 놀다가 금반지를 떨어뜨린 곳에 들어섰다는 99칸 고택이다(지금은 70여 칸만 남았다). 운조루는 조선 영조 때 낙안 군수를 지낸 류이주가 세운 고택으로, 현재 국가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운조루에 명물이 있다. 뒤주다. 뒤주 아래에 가로 5㎝ 세로 10㎝ 크기의 구멍이 있는데, 구멍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쓰여 있다. 누구나 구멍을 열고 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이 뒤주는 주민을 위해 늘 열려 있었다고 한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지리산 남쪽 마을은 유난히 곡절이 많았다. 동학농민운동·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숱한 마을이 풍비박산났지만, 누구도 운조루는 해코지하지 않았다. 입장료 어른 1000원.

 

04.gif수한마을 입구에 있는 조형물. 수레로 만들었다.

오미마을을 나온 길은 하사마을 앞을 지나 상사마을로 들어간다. 상사마을은 20년쯤 전 전국 최고의 장수마을로 이름이 높았다. 영험한 효력의 당물샘 덕분이라는데, 요즘엔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한 외지인이 이 마을을 선호한다고 한다. 길은 상사마을 뒤편 산으로 올라간다. 외진 산길이지만 길 대부분이 시멘트로 포장이 돼 있다. 동행한 구례군청 공무원이 “산수유·명이·매실 등 마을에서 거둔 작물을 차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풍경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고단한 일상일 때가 많다. 섣부른 감상은 삼가야 한다.

산길에서 내려오니 황전마을이다. 황전마을 하면 몰라도, 화엄사 아랫마을이라고 하면 안다. 길이 화엄사를 들르지는 않지만, 황전마을에서 화엄계곡을 따라 20분쯤 걸어 오르면 일주문에 이른다. 지리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니, 부러 들를 만하다. 천 년 고찰에는 녹음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황전마을에는 들를 만한 명소가 하나 더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종복원기술원이다.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이 여기에서 진행된다. 매일 탐방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시관만 둘러봐도 재미있다. 월요일 휴관. 061-783-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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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촌마을에서 수한마을로 가는 길에 만나는 대나무숲



황전마을에서 나와 다시 숲을 통과하면 당촌마을을 지나 수한마을로 이어진다. 수한마을로 내려가기 직전 대숲을 지날 때는 잠시 걸음을 쉬시라 권한다. 한동안 하늘을 가린 대나무를 올려봐도 좋고, 댓잎 깔고 앉아 바람 지나는 소리를 들어도 좋다. 수한마을은 길이 지나는 7개 마을 중에서 가장 예쁜 마을이다. 여행자를 위해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설치한 정성도 고맙지만, 낮은 돌담을 가득 덮은 덩굴만 바라봐도 걸음이 가벼워진다.

방광마을은 마을 어귀를 지키고 선 커다란 느티나무가 기억에 남는다. 논 사이에 자리를 잡은 느티나무 그늘이 유난히 넓어 보인다. 나무 뒤로 마을이 있고, 마을 뒤로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서 있다. 나무 아래 평상에서 하늘을 보고 누웠다. 잠깐 졸았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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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가든 산채보리밥 상차림



●길 정보=지리산둘레길 오미∼방광 구간은 걷기에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시간은 넉넉히 잡는 게 좋다. 운조루·화엄사 등 들를 데가 많아서다. 12㎞ 길이지만 6시간 정도 생각하는 게 좋다. 구례 읍내에 있는 지리산둘레길 구례센터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061-781-0850. 게스트하우스는 두 곳을 추천한다. 하나는 오미마을 운조루 바로 옆에 있는 ‘산에사네(061-781-7231)’다. 14년 전 귀촌한 김서곤(54)·노정애(52) 부부가 운영하는 집이다. 지리산둘레길 매니어 사이에는 이미 유명한 집이다. 1박 2만원부터. 황전마을 근처의 게스트하우스 ‘구례둘레길(010-8653-6337)’도 명소다. 구례 출신으로 지리산에서 생태운동을 주도한 우두성(64)씨가 운영한다. 1박 2만원부터. 점심은 방광마을 입구 ‘노고단 가든(061-781-0529)’에서 산채보리밥을 먹었다.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나물로 한 상이 거하게 차려져 나왔다. 7000원.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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