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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삶과 죽음 경계에서 만났다, 1600년 전 구도자들 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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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2-10 12:07 조회1,0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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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돈황 버스·열차로 2000㎞ 
절벽에 빽빽한 막고굴 492개 위용 
당나라 때 만든 거대한 와불에 
측천무후가 세운 33m 화려한 불상 
벽화엔 말타고 활쏘는 고구려인도

중국 돈황 막고굴의 불상 중 가장 큰 와불(臥佛)이다. 당나라 때 조성한 148호 굴에 있다. 부처의 열반상 뒤로 제자들이 조각돼 있다. 동굴 천장에는 1000개의 부처를 그린 천불상(千佛像)이 보인다.

원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 주최로 지난 2~6일 시안에서 돈황까지 중국 불교석굴을 순례했다. 옛날에는 꼬박 석 달이 걸렸다는 실크로드 2000㎞를 버스와 야간열차를 타고 따라갔다. 돈황의 석굴과 사막에는 목숨을 걸고서 법(法)을 구하려 했던 옛 수행자들의 간절함이 오롯이 녹아 있었다.

 중국 시안(西安)과 란저우(蘭州)를 거쳐 12시간 동안 야간열차를 타고 4일 돈황에 도착했다. 새벽이라 아직 캄캄했다. 동행한 동국대 황순일(불교학부) 교수는 “돈황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돈황 역사(驛舍)도 새로 지었고, 시내의 거리도 엄청나게 넓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하는 중국 불교의 힘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수년 전만 해도 돈황까지 오는 열차가 없었다고 한다. 근처 유연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130㎞를 더 들어가야 할 만큼 돈황은 오지였다.

 돈황은 중국땅의 서쪽 끝이다. 돈황에서 더 서쪽으로 가면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타클라마칸은 ‘돌아올 수 없는 땅’이란 뜻이다. 실크로드의 상인들과 구법승들은 중국의 오랜 수도였던 장안(지금의 시안)에서 란저우, 돈황을 거쳐 사막을 건넌 뒤 멀리 인도와 로마까지 갔다. 그건 동·서양 문명을 잇는 거대한 징검다리였다. 불교 문명 역시 이 비단길을 따라 동서를 오갔다.

 버스는 시내에서 20㎞ 떨어진 돈황의 막고굴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칼바람이 뺨을 때렸다. 현지인 가이드는 “여름에는 섭씨 44도, 겨울에는 영하 24도까지 떨어진다”고 했다. 막고굴 입구로 들어서자 사막의 모래와 자갈이 뭉쳐서 만든 높다란 절벽이 나타났다. 그곳에 492개의 동굴이 있었다. 1600년 전부터 하나씩 생겨난 거대한 석굴 사원이다. 동굴마다 문이 잠겨져 있었고, 막고굴 안내인이 열쇠를 들고 다니며 안내했다.

4세기 북위 시대에 만든 동굴에 들어섰다. 캄캄했다. 손전등을 비추자 마술처럼 벽화가 드러났다. 사방의 벽에도, 천장에도, 바닥에도 연꽃 무늬와 부처상, 비천상 등이 즐비했다. 정면에는 붉은색과 녹색으로 채색된 불상이 앉아 있었다. 동굴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미술관이었다. 북위 시대부터 수·당·송·원·명·청나라까지 무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성된 동굴들이 사막의 절벽에 펼쳐져 있었다.

돈황 석굴 벽화에 등장하는 고구려인의 사냥 모습.

 동굴마다 고유 번호도 있었다. 335번 굴에 들어섰다. 당나라 때 조성했다는 벽화에는 머리에 깃을 꽂은 인물이 둘 그려져 있었다. 현지인 가이드는 “저 두 사람은 고구려 왕자들이다. 복장도 고구려 양식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동굴에는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를 똑 닮은 벽화가 있었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인물, 그 역시 고구려인이라고 했다.

 중국 최초의 여성 황제인 측천무후가 막고굴에 조성한 대불(大佛)인 북대상(北大像·96호굴)은 놀랍게도 화려한 무늬가 수놓인 여성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원 문무왕 박사는 “측천무후가 33m 높이의 여성적인 불상을 세워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크로드를 오가는 상인들과 구법승들에게 돈황은 삶과 죽음의 땅이었다. 서쪽으로 가는 이들은 목숨을 걸고 사막을 건너야 했고, 서쪽에서 오는 이들은 “이제 살았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곳이 돈황이었다. 동행한 원택 스님은 “당시 구법승들이 남긴 기록에는 사막을 건너다가 사람의 해골이 보이면 ‘내가 가는 길이 맞구나’ 하고 오히려 이정표로 삼았다고 한다. 현장 법사도 이 길을 따라 인도로 가 불교 경전을 가져왔다. 목숨을 걸고 법을 구하던 그들의 심정이 얼마나 간절했겠는가”라고 말했다.

 17호굴에도 들어갔다. 『육조단경 돈황본』 등 5만여 권의 불교 경전과 유서가 발견돼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곳이다. 감회가 남달랐다. 신라 승려 혜초의 인도 여행기 『왕오천축국전』도 1900년에 이 동굴에서 나왔다.

 막고굴에서 나와 월아천으로 갔다. 사막과 오아시스가 펼쳐졌다. 모래바람이 불었다. 끝없는 모래 언덕, 바람이 불면 모래가 운다 하여 붙은 이름이 명사산(鳴砂山)이다. 그 울음을 뚫고서 구법승들은 인도를 향해 발을 뗐다. 저 모래 어딘가 그들이 밟았던 발자국이 있으리라. 그곳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돈황=글·사진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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