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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종로길 46만㎞ 누빈 12번 버스 … 안데스 4000 고지도 가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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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edbear3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6-27 13:12 조회1,3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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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마을버스로 세계 도는 임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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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또 다른 나를 찾는 길이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호수에 서 있는 마을버스 은수. [사진 임택]


지난 3월 중순 판아메리칸 고속도로(알래스카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종단하는 국제 도로) 칠레 구간. 임택( 55)씨가 모는 ‘12번 마을버스 은수’가 대형 버스를 제치며 시원하게 내달렸다. 임씨는 쾌재를 불렀다. 

“은수는 폐차를 앞둔 버스예요. 평생 좁은 골목을 오가던, 시속 60㎞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은수가 120㎞ 속도로 세계를 질주했어요. 마을버스의 역사를 다시 쓴 셈이죠. 여러분도 자신의 능력을 믿어보세요.”

 임씨는 당시 현장을 찍은 동영상을 본인의 페이스북(nulbo1019)에 올려놓았다. 지난해 10월 22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출정식’으로 스타트를 끊은 ‘버스로 떠나는 세계여행 프로젝트’다. 은수는 평택항에서 페루로 보내졌고, 임씨는 지난해 12월 17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부르릉~’ 남미 일주의 시동을 걸었다. 6개월여의 남미 여행을 마친 그는 현재 멕시코에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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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닭고기집 직원과 함께한 임택씨.(왼쪽) [사진 임택]


몇 차례 e메일과 메신저로 소식을 주고받았던 그에게 지난 22일 전화를 걸었다. 밝고 씩씩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렀다.

 “아, 기자님, 저는 지금 멕시코 남부 국경도시 이달고에 있습니다. 멕시코시티를 거쳐 미국 마이애미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은수는 과테말라의 푸에르토바리오스 항구에서 마이애미로 먼저 배로 보냈고요.”

 - 왜 은수와 동행하지 않는 거죠.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멕시코에선 3.5t 넘는 외국 여행차량은 통과를 불허한다는 겁니다. 은수는 4.8t이거든요. 세관에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과테말라로 되돌아가려 했는데 다시 입국이 거부됐습니다. 한 번 나간 외국 차는 3개월이 지나야 재입국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나요. 청천벽력, 진퇴양난이었죠. 그때 천사를 만났어요. 과테말라 관세사 루돌프와 멕시코 아가씨 파비가 애써준 덕분에 은수를 여행차가 아닌 ‘수출품’ 자격으로 과테말라 항구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솟아날 구멍을 찾은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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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적도박물관(사진 왼쪽), 버스 바깥에 붙인 남미 지도(사진 오른쪽). [사진 임택]


 - 매우 당황스러웠겠습니다.

 “파비와 루돌프 얘기는 책 한 권을 쓸 정도예요. 어떤 경험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 자체입니다. 자기 일처럼 얼마나 성심껏 도와줬는지 몰라요. 파비는 딸처럼 가까워졌고요. 저를 ‘파파’라고 불러요. 헤어질 때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이산가족이 따로 없었죠. 여행은 그런 것이죠. 계획대로 풀리지만은 않죠. 일반 관광에서는 맛볼 수 없는, 여행만의 참맛입니다.”

 - 여행의 최고 선물은 역시 사람이죠.

 “그렇죠. 전혀 예상 못했던 휴먼 스토리가 생겨납니다. 한 편 한 편이 드라마 같죠. 볼리비아 사막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어요. 사방에 모래폭풍이 불고, 기름은 떨어지고, 밤은 다가오고…. 그때 사막의 노동자들이 저희를 구해주었습니다. 밥을 주고, 재워주고, 기름도 넣어주고. 콜롬비아 안데스 고원 도로에선 차에 이상이 생겼는데, 지나가던 트럭기사들이 서로 고치려고 달려들었어요. 차 밑을 살펴보고 회의도 하더니 연료 필터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 왜 하필 마을버스입니까.

 “마을버스는 평생 좁고 가파른 골목을 다닙니다. 가장 큰 세상이 2차로, 간혹 4차로죠. 은수도 10년간 46만㎞를 달렸습니다. 마을버스는 우리네 서민을 닮았어요. 쳇바퀴같이 살아온 5060세대에게 새 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은수도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라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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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경에서 만난 여고생들(사진 왼쪽), 볼리비아 오루로축제 현장(사진 오른쪽). [사진 임택]


 - 은수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종로 12번 마을버스 ‘은수교통’의 준말이에요. 주로 서울대병원을 오가는 사람을 실어 날랐습니다. 환자와 그 가족들의 애환을 품고 있죠. 어릴 적 친구의 사촌 누나 이름도 은수였고요. 저를 꽤 예뻐해 주었죠. 일종의 운명 같아요. 이번 여행을 위해 요리교실도 다니고 정비수업도 받았습니다. 출발 전 여기저기 은수의 ‘아픈 곳’을 수리하고 내부도 개조해 침대·주방 등을 만들었습니다.”

 - 그동안 경비도 제법 들어갔겠죠.

 “이번 여행은 5년 전에 기획했습니다. 서울 평창동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마을버스를 보고 나이 50줄에 들어선 제 삶을 돌아보게 됐죠. 2년 전 멤버 다섯을 구성, 각자 3000만원씩 내자고 뜻을 모았는데 한 명 한 명 포기하더니 결국 둘만 남게 됐죠. 막판에 다른 한 분이 동참해 셋이 함께 떠났다가 그중 한 명이 파나마에서 그만두는 바람에 현재 둘이 다니고 있어요. 중간중간 희망자가 있으면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기름값만 조금 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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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콜카협곡의 노점상(사진 왼쪽), 안데스산맥 가파른 절벽에서 차량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십자가(사진 오른쪽). [사진 임택]


 - 원래 여행가가 되고 싶었나요.

 “고향이 경기도 김포입니다. 어릴 적부터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며 언젠가는 별나라 저편으로 가보겠다는 꿈을 키워왔어요. 수입 오퍼상으로 일해오다가 2년 전 세계여행 뜻을 굳혔습니다. 인생 2모작이죠. 20여 년 전에 이미 휴대전화 끝자리 번호를 5060으로 정해놓았습니다. 늦어도 50대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고 결심한 거죠. 앞으론 번호를 7080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하하하.”

 - 반퇴 사회, 노령화 문제가 심각합니다.

 “요즘 나이 50이면 청년입니다. 75세도 경로당(실버센터)에서 담배 심부름을 하는 세상이죠. 은퇴한 다음에도 무언가에 몰두할 일을 찾아야 해요. 너도나도 치킨집을 하다 주저앉을 수는 없잖아요. 은수의 메시지도 바로 그것이죠. 노인이 젊어지면 나라가 젊어집니다. 요즘 청춘에게 우리도 늙어 저렇게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자극이 될 수 있고요.”

 - 갑자기 돈키호테가 생각납니다. 

 “돈키호테는 그냥 뛰어나갔지만 저는 5년을 고민한 겁니다. 은수의 별명이 ‘타키’, 즉 몽골의 작은 말이라는 뜻인데, 돈키호테가 타고 다녔던 로시난테를 닮은 것도 같네요.”

 -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든다면요.

 “정비를 한다고 했어도 은수가 자주 멈춰 섰어요. 가장 큰 원인은 기름이었어요. 남미 지역 연료에는 우리나라의 100배가 넘는 유황이 함유돼 있다고 합니다. 사막 미세먼지와 섞여 연료 파이프가 막혔던 거죠. 동료 간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여행을 떠난 개념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죠. 저도 관광을 생각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지 몰라요.” 

 - 중남미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은수와 제가 한류스타가 된 기분입니다.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법석을 떨어요. 은수를 함께 타고 가며 ‘강남스타일’ 춤을 추기도 했고요. 한국어 사인을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현대나 삼성은 다 알아요. 현대자동차 정비소는 대규모 공장처럼 크고, 사람들 손에는 삼성 모바일 폰이 들려 있죠.”

 - 이제 여행의 반을 마쳤습니다.

 “미국을 보름 정도 돈 다음 독일로 갑니다. 시즌2의 시작이죠.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거쳐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아시아 10개국을 관통합니다. 내년 3월께 5대륙 48개국 순례에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에요. 아시안 하이웨이 1번 도로(터키에서 일본을 잇는 도로)를 탑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이 도로가 지나가는 나라에서 살죠. 최종 목표는 북한을 거쳐 판문점으로 되돌아오는 겁니다. 북한 청년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죠. 결과에 관계없이 이 시대 움츠러든 어른과 청년 모두에게 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대만족입니다. 국가대표 마을버스이자 저의 연인, 은수도 끄떡없이 달려주겠죠.”

[S BOX] 웃음의 힘 … 치안 불안 중남미서 무사고, 경찰도 체포했다 풀어줘

“미소만큼 강력한 소통은 없습니다.”

 임씨는 이번 여행에서 아무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치안이 불안한 곳으로 알려진 중남미 지역을 순례했지만 말이다. 그는 웃음의 힘을 꼽았다. 누구든 눈만 마주쳐도 ‘부에나(buena·스페인어로 ‘좋은’이란 뜻)’라고 인사를 건넨다고 했다. “간단한 먹거리를 사서 아이들 입에 무조건 넣어줘요. 강도도 자식은 있잖아요. 애들하고 친해지면 어른들은 절로 가까워집니다.”

 임씨는 여행자가 아닌 친구가 돼라고 권했다. 웃음은 기본 조건이다. 위기의 순간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사례 하나를 들었다.

 “지난해 말 볼리비아 광산 지역을 지나다 시위대와 진압 경찰 사이에 끼인 적인 있었습니다. 시위대는 다이너마이트까지 들고 있었어요. 제가 차에서 내려 ‘페리스 나비다(Feliz Navida·성탄 축하)’라고 외쳤더니 사람들이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터뜨렸죠. 동행했던 남미 동포 가수 박우물씨의 즉석 공연을 열었어요. ‘아리랑’도 불렀고요.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자며 달려들고, 완전 난리였죠.”

 웃음 앞에선 경찰도 친구가 된다. 지난달 임씨는 멕시코 무장경찰에게 체포된 적이 있다. 멕시코에선 유니폼 차림의 학생이나 경찰·군인 촬영이 금지됐는데 김씨가 무심코 학교 안의 초등학생을 찍었던 것. 그는 예의 웃는 얼굴로 경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신 영어 잘한다’ ‘예쁘게 생겼다’ 등. 

“오해가 풀렸는지, 휴대전화를 꺼내 셀카를 찍어댔어요. 잡혀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죠. 제 숙소까지 경찰차로 데려다 주기도 하고. 하하하.”

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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