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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 [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꼭꼭 싸인 연잎에 고소한 잡곡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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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edbear3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6-27 11:17 조회1,1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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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이야기’ 연잎 밥

 

오래전부터 일본을 드나들었다. 오십 번은 넘은 듯하다. 혼슈의 북쪽 아오모리부터 남쪽 끝 섬 오키나와까지. 비슷한 것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지만 들여다보면 결국 비슷한 우리나라와 일본이다. 친근한 이웃으로 때론 으르렁거리는 앙숙으로 살아야 하는 두 나라의 설정은 나쁘지 않다. 가족과 친구들끼리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던가. 만만하지 않은 이웃을 곁에 두고 산다는 것은 축복이라 생각한다. 서로 거울의 역할이 되어 보완할 일이 많다. 

얼마 전 교토에 다녀왔다. 도시의 분주한 일상은 우리와 다를 게 없다. 출근 시간대 편의점에서 아침을 대신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편의점 앞에 세운 차 속에서 홀로 도시락을 먹는다. 젊은 직장인 아가씨와 머리 희끗한 중년 신사가 왜 옹색한 아침을 먹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다 안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 아침을 먹기로 했다. 

진열대에서 고를 아침 메뉴는 넘치고 넘쳤다. 종류만 많았다면 감동은 없다. 웬만한 전문 음식점 수준을 넘는 내용의 품격과 정갈함은 놀랍다. 고시 히까리 쌀의 반질한 윤기가 눈에 띄는 벤또(도시락)를 골랐다. 몇 점 되지 않는 반찬의 색깔과 흰밥의 어울림은 먹어보지 않아도 맛을 느낄 것 같았다. 밥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서툰 일본어라도 “오이시! 혼또 오이시!”를 연발할 만했다. 

일본에 다녀온 많은 이들이 유난히 맛있는 밥을 이야기한다. 별 기대 없이 산 편의점의 밥조차 맛은 만만치 않다. 바로 지은 듯한 풍미와 밥알이 뭉치지 않고 탱글탱글한 식감은 각별하다. 똑같은 쌀을 일본에서 짓게 되면 각별한 맛으로 바뀌는 이유가 뭘까. 밥맛을 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바로 찧은 좋은 쌀이 출발이다. 여기에 물의 양과 불의 세기를 정성껏 조절해야 맛있는 밥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쉬워 보이는 일을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다. 밥맛을 내는 일이 여기에 해당된다. 


큰 솥 한가운데 밥이 맛은 최고 

일본에 드나들며 절집에서 밥 짓는 승려를 만난 적 있다. 밥 짓는 일이 곧 도(道)와 통한다는 그의 말은 공허하지 않았다. 마루에 앉아 먹은 밥은 부드러움과 쫀쫀함이 다투지 않고 쌀알의 흰색과 밥 냄새가 겉돌지 않았다. 밥에 이런 맛이 숨겨져 있는지 처음 알았다. 같은 쌀이 다른 밥맛을 낸다면 사람 때문이다. 승려는 밥맛의 비결을 달걀의 노른자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흰자에 둘러싸인 노른자는 저절로 안정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밥 또한 큰 솥의 중심부분이 노른자라 했다. 큰 솥에 많은 양의 밥을 지어 가운데 부분만을 퍼내 먹을 때 가장 맛있다는 말이 저절로 다가왔다. 삼십 년 동안 밥만 지으며 터득한 공력은 놀라웠다. 쌀로 만든 최고의 음식은 밥이다. 

이후 이렇게 맛있는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밥 심으로 산다는 우리는 의외로 밥맛에 둔감하다. 음식점에서 내주는 엉망인 밥을 별 투정 없이 먹고 있지 않은가. 어딜 가나 같은 지경이니 포기의 심정으로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집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잘 보관된 벼를 바로 찧어주는 정미소의 쌀이 집 주위에 없다. 알량한 3인분 전기밥솥엔 노른 자위가 들어설 여유도 없다. 누구도 불 지펴 밥하지 않으며 두터운 가마솥을 걸쳐놓을 부엌도 없다. 맛있는 밥은 전설 속의 이야기 마냥 허공에 떠돌고 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누라가 해 주는 밥보다 공장에서 지은 인스턴트 밥이 더 맛있다. 음식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그나마 못 얻어먹을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비겁한 속내를 마누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공장에서 지은 밥은 맛의 조건을 집보다 더 정확하게 지킨다. 좋은 쌀을 바로 도정해 대량으로 밥을 짓는 제법은 믿을 만하다. 유해성 논란은 나의 관심 밖이다. 맛있는 밥의 기대만으로 선호하는 회사의 제품을 선택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 밥맛을 지키는 노력은 끝없이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밥 말고 다른 것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한국인이다. 


경남 함양의 솥밥을 연잎으로 감싸 

맛있는 밥이 간절한 사람은 넘치고 넘친다. 집에서 여유롭게 밥 먹지 못하는 사람이란 얼마나 많은가. 바쁜 일과와 여건은 끼니조차 제대로 찾아 먹지 못하게 한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사람들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기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을 확률이 높다. 역과 기차 안에서 파는 도시락을 먹어본 이들의 불만을 아시는지. 값에 비해 조악하기 짝이 없는 내용과 맛에 분노마저 치밀 판이다. 제대로 된 도시락 하나 준비하지 못하는 기차 동네의 무신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열 받은 사업가가 있게 마련이다. 벤치마킹 대상은 식습관이 비슷한 일본이다. 벤또에서 맛 본 밥의 기억은 강렬했다. 한 끼의 식사가 감동으로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맛있는 밥만 있다면 반찬이 별 필요 없었던 자신의 체험을 떠올렸다. 맛있는 밥, 밥을 확보해야 다음이 풀릴지 모른다. 전국을 누벼 경상남도 함양의 밥 잘하는 집을 찾아냈다. 국산 곡물만을 사용하는 고집과 커다란 솥을 갖춘 곳이다. 제대로 지은 밥맛은 기억속의 강렬함을 재현시켰다. 입맛만은 섣부른 타협을 허용하지 못하는 법이다. 

벤또와 다른 우리만의 특색이 필요했다. 혼합 곡으로 지은 밥을 연잎에 싸 도시락으로 만들기로 했다. 조선시대 임금들의 야참거리였다는 연잎 밥이다. 연잎에는 독특한 향과 방부 성분이 담겨있다. 만들어 바로 먹을 수 없는 도시락의 용도에 부합한다. 반찬의 개수를 늘릴 필요도 없다. 밥맛으로 먹는 도시락인 덕분이다. ‘연 이야기’의 연잎 밥 도시락은 이렇게 탄생했다. 

연잎 도시락은 아무리 급해도 바로 먹을 수 없다. 꼼꼼하게 싼 연잎 속에 밥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잎을 풀어야 섞이게 되는 연의 향과 밥 냄새다. 두터운 연잎에 찹쌀, 흑미, 쥐눈이 콩이 섞인 밥의 모습은 평소 보던 찰밥의 느낌과도 다르다. 여느 흰밥에서 느껴보지 못한 색깔과 냄새의 독특함이 다가온다. 뭔가 대단한 것을 먹고 있다는 시각과 후각의 교차 충족이랄까. 온갖 종류의 곡물이 내는 낯선 식감의 차이를 느껴보는 일도 괜찮다. 도시락에 포함된 대나무 젓가락도 평소 보던 것과 다르다. 가느다란 통 대나무를 그대로 썼다. 

어쩌다 먹게 되는 특별한 도시락의 요건은 디자인으로 꼴을 갖췄다. ‘연 이야기’의 도시락은 플라스틱 재질을 쓰지 않는다. 연잎 밥과 단촐한 반찬 몇 개, 국은 종이로 만든 상자에 담겼다. 연잎에 대응하는 유기적 디자인의 흐름을 고려했을 것이다. 얼핏 지나치기 쉬운 디테일이 충실하게 채워진 세심함이 다가온다. 

‘연 이야기’의 연잎 밥이 간절할 때가 많다. 미리 공기에 퍼 담아 보온시킨 밥을 내주는 식당의 무성의를 참지 못해서다. 바로 밥을 지어주는 집이 있기는 하다. 그런 식당은 대체로 음식 맛이 별로다. 밥과 음식이 다 맛있는 집은 너무나 찾기 어렵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맛있는 밥이 담긴 도시락 하나로 한 끼 해결하는 게 깔끔하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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