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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 리옹의 대자연을 닮은 요리사, 기 라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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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edbear3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6-13 08:30 조회1,3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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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 
연중내내 인기 높은 메추리 요리 
셰프는 말보다 손으로 보여줬다

 

 

퀴즈 하나를 내보겠다. 비행사이자 『어린 왕자』의 저자인 생택쥐베리, 필름 영화를 처음 만든 뤼미에르 형제, 1800년대 아시아 고대 유물과 미술품을 수집해 파리 기메 박물관을 세운 에밀 기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렵다면 힌트. ‘요리의 교황’이라는 불리는 프랑스 셰프 폴 보퀴즈와도 교집합이 있다. 

답은 이들의 고향이 모두 리옹이라는 사실이다. 리옹으로 말하자면 ‘미식의 도시’ ‘요리의 수도’ 아닌가. 또 ‘요리사들의 성지’라 불릴 만큼 순례하고 싶은 멋진 레스토랑이 차고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지역 주민을 일컫는 ‘리요네(Lyonnais)’ 역시 ‘먹기 위해 산다’고 할 만큼 미각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사람들이다. 

리옹이 이같은 명성을 얻은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지리적 조건이 탁월하다. 알프스 피레네 산맥에서는 다양한 야생 동물과 가금류를 얻을 수 있고, 알자스 로렌 지방에서는 신선한 농산물이 자라난다. 또 리옹 북쪽으로는 보졸레가, 남쪽으로는 꼬뜨 드 론 포도밭이 펼쳐진다. 

게다가 고급 음식 문화가 발달하게 된 역사적 배경도 함께 한다. 1600년 앙리 4세가 이탈리아의 마리 데 메디치를 왕비로 맞이하면서 이곳에서 결혼식을 거행했던 것. 당시 까칠한 성격의 새 왕비는 고국의 요리사와 음식 재료를 들여왔고, 이는 ‘신문물’이 됐다. 17세기 이탈리아 요리의 농축된 조리법은 물론이요, 개인용 포크를 쓰는 세련된 테이블 매너까지 프랑스에 전파되는 계기였다.

이처럼 장황하게 리옹을 소개하는 건 나 역시 그 도시와 인연이 있어서다. 2004년 그곳의 요리학교 폴 보퀴즈에 입학한 나는 첫 번째 스타쥬(인턴쉽)를 고민하게 됐다. 그러던 중 선배의 추천으로 기 라소제(Guy Lassausaie) 셰프를 찾게 되었다. 

기 라소제-. 그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은 리옹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인구 200여 명의 작은 마을 샤슬레에 자리하고 있었다. 리옹 시내를 왕복하는 버스가 하루 4대 뿐인 곳이지만 미슐랭 2스타를 받은 맛집이었다. 그는 스물 세 살에, 자신의 고향이자 100여 년 전 증조 할아버지가 호텔을 운영했던 고향에 자기 이름으로 식당을 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먹어 친숙한 ‘부숑 리요네’(감자와 돼지고기를 주로하는 리옹의 전통음식)는 물론이고, 리옹을 가로지르는 손강·론강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들로부터 무한한 영감을 받은 요리들을 선보였다. 그 결과 93년 서른 두 살의 나이에 그는 ‘요리 명장’의 타이틀을 따 냈다. 프랑스 정부에서 각 분야 최고 명장에게 주는 ‘M.O.F(Meilleurs Ouvriers de France)’를 얻은 것이다. 이듬해엔 레스토랑엔 미슐랭 1스타 사인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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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샤틀레행 버스에 오르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차창 밖으로 서양배나무를 심은 들판이 끝없이 펼쳐지며 정말 레스토랑이 있을까 싶을 때쯤에야 식당은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 규모에 비하면 거대했다. 아니, 첫인상이 그렇게 느껴졌다. 당시 청운의 꿈을 안고 요리계에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새내기에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오너 셰프의 레스토랑은 태산보다 커보였으리라. 

푸근한 첫 인상의 셰프는 친절하고 차분한 어투로 레스토랑 곳곳과 직원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자마자 깨닫게 됐다. 그의 요리가 ‘식재료의 보물 창고’ 리옹이 지닌 장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을. 

휴일마다 강가 낚시를 즐기는 그는 생선을 유난히 좋아해 서비스 시간이 되면 언제나 생선파트에서 직접 생선을 조리했다. 또 메추리 요리는 셰프의 시그니처로, 연중 내내 인기가 높았다. 메추리 가슴살에 프아그라를 넣고 동그랗게 말아 곱게 간 빵가루를 입혀 튀겨낸 이 요리는 바삭하고 고소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거기에 메추리 육수로 뽑은 소스와 살구를 곁들여 단맛을 더했다. 

또 다른 시그니처는 차가운 전채인데. 아보카도 무스와 게살 케이크였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으로, 아보카도 크림 위에 게살과 허브 샐러드를 층층히 올리고 얇은 감자칩과 요거트 소스, 완두콩과 깍지콩을 추가했다. 정성을 들이는만큼 인기가 좋아서 늘 엄청난 양의 게를 손질해야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땐 60석이나 되는 이 교외 레스토랑에 누가 올까 하던 걱정했는데 그것이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이내 알게 됐다.

조금 한가했던 일요일 저녁을 제외하고는 식당은 언제나 만석이었다(휴무는 화·수요일). 놀라운 건 그뿐이 아니었다. 주방에는 셰프를 포함한 6명의 요리사와 디저트 요리사 2명이 전부였다. 나조차 콜드 파트에서 서비스를 시작해 일이 끝나면 바로 생선과 고기파트의 보조로 넘어가 손발을 맞췄다. 더구나 일요일 저녁에는 다른 직원들의 경우 반차의 휴무를 냈다. 주방에는 셰프와 부주방장, 그리고 나 이렇게 3명만 일했다. 

그럼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 라소제 셰프는 말없이 민첩하게 갖은 일을 다 해냈다. 혹여 서비스 중 문제가 생기면 바로 가서 직접 해결했다. 절대 주방에서 큰 소리로 호통치거나 무겁게 위계질서를 잡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바쁜 주문이 밀려들어도 요리사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요리에 집중 할 수있도록 도와줬으니, 내가 그동안 거쳐온 주방 중 가장 조용했던 주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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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 아무리 우아하고 분위기 있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라 할지라도, 주방만큼은 군대에 비유되곤 한다. 정신없이 주문이 밀려드는 주방에서 한번 규율이 어긋나면 ‘맛’으로 귀결되는 가장 중요한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에, 때때로 고성이 오가기도 한다. 얼마 전 프랑스의 일부 유명 레스토랑 주방에서 수습생들이 당하는 각종 폭력의 실태가 공개돼 문제가 됐었는데, 이 또한 그런 배경에서 벌어진 일일 터다. 

하지만 기 라소제 셰프는 자신이 조금 더 몸을 움직여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해결했다. 이런 셰프의 진가를 여실히 보게 된 기회는 바로 크리스마스 기간이었다. 레스토랑은 디저트 부티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주로 테이크 아웃하는 음식이나 케익을 판매했다. 12월이면 부티크로 어마어마한 주문들이 들어오는 건 당연지사. 모든 직원은 오전 7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쉴 새없이 3주 간 일을 하는 게 예사였다. 셰프 역시 다른 요리사들과 똑같은 근무일정을 소화해 내며 주방 음식뿐만 아니라 제빵·제과 등 각 분야에서 전천후로 일했는데, 그런 그의 모습은 진정 슈퍼맨처럼 보였다. 

나는 전쟁 같던 크리스마스 기간이 끝나고 셰프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은 직원들에게 맡겨두고 크리스마스에 쉬고 싶지 않으십니까?” 셰프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요리하는 시간이 시간이 너무나 즐거워. 그래서 이 시간이 늘 바캉스 같지.” 

요리와 일을 별개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로 즐기는 마음은 지금까지 내가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셰프의 모습이다. 그는 이름을 알린 후 더 큰 도시로 나아가 레스토랑을 확장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5대 째 리옹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이 고장의 기름진 토양과 뛰어난 자연 조건은 기 라소제 셰프가 표현할 수 있는 무한한 요리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랑스 문학가 스땅달은 “런던에 스물 두 가지의 감자 종류가 있다면 리옹에는 스물 두 가지의 감자 조리법이 있다”고 했다. 옛날부터 축적된 요리 내공만큼이나 구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될만큼 시간의 보물들도 넘쳐나는 도시. 리옹은 진정 입과 눈이 즐거운 식도락의 도시다. 그리고 이곳에 리옹의 대자연을 닮은 요리사, 기 라소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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