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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 오배기·막찍기…낯설어 궁금하다, 12가지 맛 고래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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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edbear3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6-28 20:04 조회2,0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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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포 '고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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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울산 장생포항에 잡혀온 고래를 아이들이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다. 당시 이곳에선 20여 척의 포경선이 잡아온 고래가 매일 5~6마리씩 팔려 나갔다. [중앙포토]


“먹을 게 귀했던 어릴 적 어느 날 아버지가 신문지로 둘둘 싼 뭔가를 들고 와 어머니에게 건네셨지. 곧 주안상이 차려졌고, 아버지는 소주 한 잔에 고기 한 점을 맛있게 드셨어. 내 입에도 넣어줬지. 순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게 아직도 그 맛이 잊히질 않아. 그게 고래고기였다는 건 훗날 어머니가 말해줘서야 알았지. 고래고기만 보면 그때 기억이 나.”

 1960~70년대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울산 장생포항 주민들에게 고래고기는 특별한 존재였다. 장생포에서 고래고기 전문점을 운영하는 윤경태(50)씨는 “마을 잔치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고 회고했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장생포항에서는 20여 척의 포경선이 부지런히 고래잡이에 나섰다. 하루 평균 5~6마리가 장생포항에서 팔렸다. 당시 돼지고기보다 쌌던 고래고기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서민들에겐 소중한 단백질 보충 수단이었다.

 선조들이 ‘고래의 바다’라고 불렀을 정도로 예로부터 동해엔 고래가 많이 살았다. 5000여 년 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에도 고래를 사냥한 흔적이 남아 있다. 향고래, 북방 긴수염고래, 귀신고래와 그물·작살 등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세계 포경사에도 18~20세기 러시아·미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열강의 포경선들이 고래기름을 얻기 위해 동해로 몰려들어 고래를 남획해 갔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1986년 국내 영해에서 포경이 금지되면서 장생포는 침체기를 맞았다. 고래고기 음식점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그러다 2005년 장생포 고래박물관이 들어선 것을 계기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몰리자 고래고기 전문점도 늘어 지금은 17개 점포가 포구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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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주로 취급하는 고래는 밍크고래. 해경에서 유통증명서를 받아 경매되는 밍크고래의 평균 가격은 6000만~7000만원에 달한다. “고래 한 마리를 낙찰받으면 1년 장사는 거뜬하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포획한 게 아니라 다른 고기를 잡는 그물에 함께 걸린 것으로 확인된 고래만 거래할 수 있다 보니 공급 자체가 많지 않아 상급의 경우 3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곤 한다.

 장생포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고래고기 원조할매집’이다. 51년 문을 열어 3대에 걸쳐 6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숙자(72·여)씨가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아 운영하다 최근엔 몸이 불편해 입원하면서 박씨의 며느리가 이어받았다. 고래고기 수육·육회·막찍기·우네·오배기와 고래찌개 등 전통적인 맛을 접할 수 있다.

 고래고기는 껍질·혓바닥·내장·꼬리 등 부위에 따라 12가지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그중 가슴살을 최고로 친다. 꼬들꼬들한 껍질과 껍질 안쪽에 붙은 기름의 녹는 맛이 일품이다. 붉은 살코기는 육회로 먹는 게 맛있다. 배를 썰어 넣고 참기름 등 양념으로 무쳐 고소한 맛을 낸다. 목살과 가슴살을 얇게 썰어 초장이나 겨자 간장에 찍어 먹는 ‘우네’, 꼬리지느러미를 소금에 절였다가 뜨거운 물에 데친 ‘오배기’, 고기를 썰어 막장·고추장에 바로 찍어 먹는 ‘막찍기’ 등도 인기다.

 

02.gif고래 스테이크

 고래고기는 영양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단백 저지방에 저칼로리 음식으로 칼슘과 비타민 등이 골고루 함유돼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도 “쉽게 피로하고 활동성이 떨어지며 가벼운 운동만 해도 맥박이 빨라지는 사람에게 고래고기가 좋다”고 적혀 있다.

 최근엔 고래고기도 젊은 사람들 입맛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 장생포 고래박물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청해 고래고기 전문점’은 새롭게 선보인 메뉴가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타며 장생포 맛집으로 떠오른 곳이다. 81년 남편을 따라 경남 사천에서 장생포로 온 김정순(58·여)씨는 작은 음식점을 하며 고래고기를 술안주로 조금씩 내다가 찾는 손님이 많자 2005년 아예 고래고기 전문점을 차렸다.

 김씨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고래고기 특유의 누릿한 냄새에 적응하지 못하는 데 착안해 ‘퓨전 고래고기 식단’을 잇따라 선보였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고래 스테이크. 고래 살코기에 칼집을 낸 뒤 하루 동안 올리브유에 재어둔다. 고래고기 냄새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 끝에 찾아낸 김씨의 비법이다. 이렇게 하니 살도 부드러워졌다.

 이 고기에 버터를 둘러 구운 뒤 일주일가량 숙성시킨 소스를 뿌린다. 여기에 구운 야채와 어린이 주먹밥을 곁들여 낸다. 관광객 김미영(31·여·경남 진주시)씨는 “고래 특유의 냄새를 없애 마치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는 느낌”이라며 “씹는 맛이 좋고 거부감이 없어 아이들도 매우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손이 많이 가다 보니 주말에만 개수를 정해 팔고 있다.

 고래비빔밥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메뉴 중 하나다. 미역 줄기와 세모가사리 등 해조류와 무순·유채싹·배추싹을 섞은 뒤 익히지 않은 오이·무채·배에 붉은색의 고래 육회를 올려 낸다. 여기에 밥을 넣고 김씨가 직접 만든 초고추장을 슥슥 비벼 먹으면 된다. 호박나물과 멸치볶음·부추절임·쌈채소 등 10여 가지 밑반찬이 나오는 백반에 고래 수육, 고래 육회, 고래탕을 곁들인 고래고기 정식도 빼놓을 수 없다.

 김씨의 고래고기 밥상은 2011년 울산 남구청이 내놓은 메뉴가 참고가 됐다. 당시 남구청은 유경희 울산과학대 식품영양학 교수에게 의뢰해 18개의 새로운 고래고기 메뉴를 개발했다. 고래고기를 재료로 한 범고래밥상, 해산물을 재료로 쓴 고래밥상, 아이들을 위한 아기고래밥상, 코스 메뉴인 고래정식 등이다. 김씨는 “이들 메뉴 중 외지인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고른 뒤 조금씩 보완해 내놓았더니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고래고기 전문 음식점이 날로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가게 주인들의 마음 한구석은 늘 편치 않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고래고기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고래고기 음식점에 공급되는 고래의 상당수는 불법으로 잡은 것”이라며 “고래 불법 포획을 엄단하고 유통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씨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합법적으로 고래고기를 팔면서도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하지만 이는 어차피 풀어야 할 숙제다. 떳떳하게 영업하며 울산 향토음식의 자부심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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