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우하한 비행-문학) 슬픈 한라산의 기억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Vancouver
Temp Max: 8.54°C
Temp Min: 3.58°C


LIFE

문학 | (한나의 우하한 비행-문학) 슬픈 한라산의 기억

페이지 정보

작성자 JohnPark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1-21 09:11 조회1,200회 댓글0건

본문

IMG_4184.JPG

 

IMG_4095.JPG

 

한라산은 처음이었다.


암 청색 한라산에 오르면, 그것이 거느린 새끼 오름의 작은 능선 무리들이 어디론가 가는 것이 보인다. 산이 좋은 건, 아무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걸음을 떼어야 마주하는 풍광 때문이다. 꽃 물결 속으로 출렁이는 쪽빛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곱게 올라온 나무서리가 손짓한다. 처음 오른 나에게 한라산은 부서지는 햇살로 환대했다. 몽실몽실한 구름이 한라산 허리를 휘감아 돌고, 나는 구름보다 더 높은 곳, 백록담에 닿았다. 


68년 전 사람들도 한라산 자락에 올랐다. 걸을 수 있는 자들은 거의 모두 산에 올랐다.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무산시키기 위해 선거일에 앞서 주민들은 산으로 올라야만 했다. 제주도민의 선거 거부로 당혹한 미군정은 5.10 선거 후 제주도 민중들을 탄압하는 정책을 진행시킨다. 무자비하고 대대적인 강경 진압 위주의 작전으로 불안해진 주민들은 산으로, 계곡으로 도망쳐야 했다.
무장대가 시키는 대로 올랐지만, 그들은 공산주의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사람들이었다. 다만 분단 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믿고 있었다. ‘제주는 빨갱이 섬’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응원 경찰이 대거 파견되어 옴으로써 이 섬 출신 사람들은 가족 중 누구 한 사람을 잃어야만 했다. 


남편이 어디론가 사라져 '도피자 가족'이 된 부인은 늙은 시부모와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눈 덮인 한라산으로 향했다. 군인과 경찰의 총부리에서는 벗어났지만 피난생활은 너무나 처절했다. 겨울철 한라산에는 살을 에는 추위만 있을 뿐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웠다. 많은 피난민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었다. ‘죽으려야 죽을 수 없고, 살려야 살 수 없다’고 절규하는 제주도민들의 목소리가 망망대해, 온 섬을 울리고 있었다.


무장대 300여명을 잡겠다고 그 많은 목숨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사라졌다. 무장대 역시 경찰, 우익단체와 인사, 그들의 가족을 지목해 보복 살해했다. 동백꽃처럼 툭툭 떨어진 목숨이 2만 5000명에서 3만 명이었다. 


이 아름다운 한라에 잔혹한 세월이 묻혀있다. ‘하얗게 때죽나무 뚝뚝 지듯 떼죽음의 한라산’이다. 9시간의 산행이 고됐으나 고된 것 만은 아니었다. 나의 발걸음은 기억의 골짜기에서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위하여 부른 진혼의 노래였다. 역사의 현장을 찾아 떠나는 일, 또 다른 슬픈 역사가 쓰여지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하나의 ‘저항’ 이자 ‘희망’을 바라는 일이다. 

 

김한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41 LIFE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10-10 16:19:24 문학에서 이동 됨]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36건 20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