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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시계태엽을 감아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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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0-24 13:11 조회2,1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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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오래된 시계를 고치는 사람이 어디 있을가.


서랍에서 오래도록 잠을 자던 결혼시계를 남편이 꺼내 시계 Repair shop에 알아보았다. 
 
고치는데 드는 비용이 웬만한 시계를 살만한 액수인데다 고치는데 2개월 정도나 걸린다니, 요즘같이 IT 기술의 발전으로 손목시계가 거의 필요 없어진 시대에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차라리 돈을 조금 더 보태 새 시계를 사는 게 낫지 않겠나 하니 남편은 결혼시계여야 의미가 있다며 오랫동안 생각했던거라 했다. 

늘 있던 자리에 머물러있던 사람이라 외로움이 깊어지는 줄도 몰랐었는데, 나이든 후의 삶이 얼마나 허전했으면, 젊은 시절의 한 부분들이 담겨있는 결혼시계가 소중하게 느껴질 가 싶어 더 반대하지 못했다.
 
찬란한 오월<WunderschÕnen Monat Mai>이라는 노래를 즐겨부르던 우린, 1973년 맑은 오월의 어느 날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의 손목에 잘 어울리는 시계를 찾아다니다 만난 깔끔한 디자인의 수동식 시계, 결혼해 살아온 세월만큼 함께 했던 42년의 나이를 먹었다. 수선한 시계를 찾아와 오래전의 그날처럼 다시 남편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이 시계를 처음 주고받았던 시간들이 살짝 스쳐갔다. 

우리들의 꿈을 키워가며, 어렵더라도 마음까지 삭막해지지 말며 살아가자 다짐했던 시간들,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던 시간들이었다.
 
미래가 멋진 그림으로 그려져 있으리라는 막연함으로 살던 젊은 시절, 허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림은 저절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성실하게 한 조각씩 그림을 맞추어가야, 오랜 시간을 함께 견디고 배려하며 살아온 후에야 채울 수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서로가 다른 성격이기에 부딪힐 때도 있지만, 이젠 오래 살아감의 익숙함으로 조금은 편안해진 사이가 되었다. 

삶의 시간 속애서 남은 시간을 아껴 써야 할 시간 위에 서있는 듯하다. 살아버린 날들을 돌아보니 어느 한순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다. 
살아가면서 기쁜 일 슬픈 일들이 늘 함께 있지만, 살아가는데 소중한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니라 가끔 느껴지는 따듯한 마음, 젊은 시절의 추억들이 힘이 되어 남은 시간들을 살아가게 하는가 보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은 시계 태엽을 감아주며 마음으로만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듯하다. 아마도 그 안에 담겨있는 과거의 희망이 현재의 희망으로 되살아나 마음 안에 숨겨진 어떤 에너지가 생기는, 태엽을 감아주는 일은 다가올 새로운 시간을 보여주는 일이기에, 과거에 멈추어져 있는 새로운 꿈이나 희망을 끌어내보고 싶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가. 

그렇다면 고쳐진 손목시계는 새 시계에 견줄 수 없는 값어치가 있지 않나 싶다. 삶을 고쳐 사는 일이 그리 쉽진 않지만 고쳐보려는 마음을 가져본 이 봄이 우리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지 않을런지.

이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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