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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풍월을 읊는 서당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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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종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2-18 14:07 조회2,3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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灘川 이종학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堂狗三年吠風月)는 속담이 있다. 원래는 서당개가 아니라 서당 집 할머니(堂姑)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귀로 많이 듣고 눈으로 많이 보면 자연히 영향을 받는다. 어떤 분야에 대하여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그 언저리에 오래 있다 보면 얼마간의 지식과 경험을 갖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힘, 연조나 연륜을 무시할 수 없다고 여긴다. 일종의 학습이론에도 해당한다. 한 우물을 파라, 두 마리 토끼를 쫓지 말라는 등의 속담이나 맹모삼천지교 같은 고사 또한 무관하지 않다. 많이 듣고 본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다음 어떻게 했느냐에 학습이론은 빨간 줄을 친다. 개천에서 용 나는 과정이다.

 

서당개든, 서당 집 할머니이든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발상은 비유일망정 대단히 위헌한 관습이다. 개 꼬리는 삼 년을 묵혀도 황모가 되지 않는다. 어깨너머로 보고 듣는 데 그친다면 삼 년은 고사하고 삼십 년이 지나도 결과는 그게 그 타령이다. 아니, 비록 서당에 앉아서 훈장의 가르침을 직접 받아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백면서생을 면치 못한다. 누군가가 외쳤다. “겨우 높은 계단 아래턱에 올라서서 별과 구름을 관측하겠다고 말하는가!” 사람 잡는 선무당을 나무라는 호통이다. 서당개 같이 풍월을 하는 척하는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아닌가. 남이 쓴 논문을 표절하고, 학위나 자격증을 예사로 사고 판다. 공정해야 할 문학상을 돈으로 거래한다. 돈 있고 줄만 잘 서면 불가능이 없다는 우리 주변의 한탄이 평범하게 들린다. 그렇게라도 못하는 놈이 병신이라는 말을 당연한 것처럼 하는 걸 보면 누구 말마따나 막 가자는 판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어둡다. 

 

외가 쪽으로 가까운 인척 중에 꽤 알려진 한의원이 있었다. 슬하에 장성한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아버지 의원 옆에 딱 붙어서 손발처럼 도왔다. 이렇게 수년이 지나자 두 아들 다 제법 의술을 익혔다. 찾아온 환자의 진맥도 하고 침술도 배워 시술하면서 아버지 대신 의원행세를 했다. 고명한 아버지 밑에서 배운 터인지라 서당개 삼 년이면……운운 속담을 들먹이며 환자들은 이들 형제의 의술을 곧잘 인정해 주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작고하고 나서가 문제였다. 작은아들은 틈틈이 면학한 보람이 있어 한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해서 큰 도시에 나가 당당하게 한의원 간판을 내걸었다. 한편 큰아들은 아버지의 유업을 물려받았으나 돌팔이 의원의 오명을 벗지 못했다. 의료사고도 생기고 걸핏하면 당국의 단속에 걸려 가슴을 조였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분이 모호하고, 프로가 오히려 대접을 받지 못하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평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능력은 뒷전이고 유별나게 학벌이나 부모의 신분 따위를 따지는 분위기가 가관이다. 그런데도 대필한 자기소개서가 용납되는 이율 배반이 예사롭게 여겨진다. 하긴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이 성공의 좌우명처럼 들리는 현실을 누가 비난하겠는가. 각종 시험 철, 선거철이 다가오면 신문과 방송이 앞장서서 소위 사주명리학자들을 초청 특집 퍼레이드를 펼치는 광경은 보기에 민망하다. 관상가, 점술가, 예언가, 역술 도사 등 소위 사람의 미래를 알려준다는 점쟁이들의 집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녀들을 여기저기 학원에 보내랴 용하다는 역술가들을 찾아 애원하랴 이래저래 부모의 애간장과 호주머니는 말이 아니다. 학교 우등생이 사회 열등생이라는 괴담이 설득력을 과시한 지 오래된 판인데 서당개 삼 년을 일 년 미만으로 줄여도 아무도 시비할 사람이 없다. 사람이 산다는 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거든! 공부와 인연이 먼 팔자일수록 오히려 재물과는 인연이 가깝다는 헛소리를 공기 마시듯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산다.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다. 타고난 운명보다는 꾸준히 연마한 실력에 방점이 찍힌다. 실력은 오로지 노력의 결실이다. 오죽했으면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는 속담도 있겠는가. 서당을 오가며 훈장의 가르침을 어깨너머로 들었을망정 스스로 익히고 또 익히면 그 결과인 자기 변혁은 엄청나게 나타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수없이 크지만, 누군가의 지적을 세 가지만 인용해 본다. 첫째, 프로는 불을 피우고 아마추어는 옆에서 불을 쬔다.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고 남의 군불에 밥을 지으려 하는 얌체이다. 둘째, 프로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지지만, 아마추어는 책임을 회피한다. 심지어 남에게 떠넘긴다. 셋째, 프로는 기회가 오면 우선 잡고 보지만, 아마추어는 남이 하는 걸 보면서 뭉그적거리다 시기를 놓친다.

 

인공지능이 차세대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세돌 프로기사와 알파고의 역사적 대결은 알파고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날이 머지않았음을 깨닫게 한다. 인간이 필요할 때마다 태연하게 침소봉대하는 따위 인지(人智)를 가지고 어영부영 살 자리는 없어질 것 같다. 서당개 삼 년이나 들먹이며 배운 척, 아는 체하는 세상은 완전히 지나갔다. 기술과 산업이 몇 개월 단위로 급변하는 4차 산업 혁명기가 닥쳤다. 이제는 당신과 내가 정말로 무엇이든 꾸준히 배우고 노력하는 끈을 놓치지 말아야 제대로 생존할 수 있는 시간 속에 떠밀려가는 존재들임을 새삼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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