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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분절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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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선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1-29 09:24 조회1,6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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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일 년 전에 수술을 했는데 그 후 체력이 많이 약해졌다. 간단한 수술이었는데도 생각만큼 쉽게 회복되지 않아 지난 한 해 동안 애를 먹었다. 몸 상태가 좋아진 듯해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면 다음날은 완전히 지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뻗어버렸다. 지레 겁을 먹고 지적인 활동은 접었다. 외출도 자제하고 거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집안일만 자분자분 하면서 장보기나 쇼핑도 인터넷으로 해결했다. 

 

 글을 쓰는 일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는데 이런 일들을 아예 못하고 있으니 몸보다 마음이 더 괴로웠다.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안되는 일이니 휴가라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할 수 없는 일에 애면글면 나를 다그치는 것은 아무 이득이 없지 않은가. 주어진 여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서도 즐거움을 찾으면 되었다.

 

 해야 할 일들 때문에 항상 긴장했던 신경이 쉽게 나긋나긋해지길 거부하지만 시간은 그 대상이 무엇이건 날카로운 끝을 무디게 하는 힘이 있다. 긴장도 어쩌면 욕심이었는지 긴장의 끈을 놓으니 희한하게 마음속 욕심도 사라졌다. 여유가 빈 자리를 차지했다. 원해서가 아니라 강요된 것이지만 어쨌든 휴식은 휴식이다. 욕심이나 목적 없이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나면 아무 이유 없이도 즐거웠다. 적은 체력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자동차의 속도로 가던 삶이 타박타박 걷는 걸음의 속도로 늦춰졌다고나 할까. 보지 못했던 주변의 풍경이 보이고 더 중요한 건 풍경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무리하게 욕심을 부려 건강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소중하게 다루지 않은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이 준 느린 시간 동안 참아왔던 것들에 화도 내고 또 편안하게 웃기도 하면서 신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억지로 주어진 것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이면 풍요로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돌아보니 일 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잠깐인지 아쉽기만 하다. 한 해는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며칠 머리를 식히고 온 짧은 여행 같다. 지난 한 해를 지나면서 얼마나 새해를 꿈꾸었는지 모른다. 자연의 시간은 끊어짐이 없는 흐름이지만 사람의 시간은 단위가 있고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온다. 인간의 시간에는 새로운 운명과 새로운 일들을 꿈꾸며 새로운 기대를 품어보는 희망 가득한 시간의 분절이 있다. 끊어놓은 시간의 매듭을 통과하며 우리는 변화하고 성장하고 힘을 얻는다. 삶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는 소중한 자산이고 에너지다. 달라질 거라는 기대,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만으로도 힘겨운 오늘을 견딜 수 있으니까.

 

  지난해를 힘들게 보낸 나에게 새해는 더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인간의 시간이 주는 무상의 선물이다. 이어지면서 끊어지는 시간이라는 선물에서 이미 올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얻었는지 모른다. 이 무심한 선물을 누리면서 무리하지 않고 성숙한 변화를 얻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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