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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바다건너 글동네] 버리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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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춘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4-16 10:35 조회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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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희 

 

나는 별로 부지런 한 사람은 못되어 깔끔히 집 정리를 잘 못한다. 그러나 철이 되면 갈아 입어야하는 옷들 때문에 본의 아닌 옷장 정리를 하게 된다. 꽃들의 찬양이 울려 퍼지는 부활절 휴가철이면 나름대로 옷장 정리는 연중 행사다. 겨울 내 입었던 두툼한 옷들을 옷장에서 꺼내 빨기도 하고 봄 옷들을 챙겨 걸기도 한다. 그러다 몇 년을 비좁은 옷장 자리만 차지하는 입지 않는 옷들은 과감히 옷장에서 빼낸다.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몇 년 째 한 번도 입지 않고 걸어 둔다는 것은 그 옷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서 그런 옷들은 모두 꺼내 한 보따리가 되면 적당한 곳에 보내거나 그나마 누구도 입지 않을 것 같은 모양새면 눈 꾹 감고 버린다.

 

  그런데 올 봄에도 못 버리는 것들이 꽤나 된다. 무엇에 집착하는 것도 아닌데 왜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니는지 모른다. 양털로 안을 바쳐 지은 한복 조끼, 실크 파자마, 첫 아이 첫 번째로 사용한 기저귀 등... 웃기는 물건들이다. 그런 것들이 이민 나올 때 그리고 이사 할 때마다 소중한 물건으로 짐 속에 묻어오는 것들이다. 이 버리지 못하는 것들 중에 가장 오래 된 것들은 역시 실크 파자마와 양털 조끼다.

 

  내가 결혼 할 나이가 되자 어머니는 유물같은 선물을 해 주셨다. 내가 아직도 신주 단지 모시듯 끌고 다니는 그 명주 천 실크 파자마와 양털 조끼다. ‘시집올 때 갖고 왔던 명주 천과 양털인데 명주는 알아서 쓰고 양털은 너희 둘을 위하여 조끼로 만들어 준다’ 하시며 동생들은 어려서 귀한 물건을 알지 못할 거라며 언니와 나에게만 주신 물건들이다. 명주 천으로는 내가 결혼 할 때 파자마로 만들어 몇 번 입어보고는 옷장 속에 늘 보관만 해둔  옷이 다. 명주와 양털의 역사는 이렇다.

 

  우리 집은 해방이 되자 곧바로 남으로 내려 온 삼 팔 따라지(삼 팔 선을 건너 피난 온 사람들) 집안이다. 해방이 되자마자 아버지는 벌써 서울로 가셔서 미리 자리 잡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고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올망졸망 5명 아이들을 등에 업고 끌고 야밤에 임진강을 건너 남으로 내려 왔다. 피난민 형편으로 남하 하면서 우리 어머니도 나처럼 시집올 때 갖고 온 물건들을 피난 보따리 속에 넣어 갖고 온 물건들이다. 그러니까 이 물건들은 골동품 자격이 충분히  있다. 나는 지금 약 20년 모자라는 100년을 살고 있고 내 위로 세 살씩 터울 지는 오빠와 언니가 있었으니 거슬러 계산 해 보면 대략 100, 잛게는 90년 묵은 물건들이다. 이제 그 물건들을 딸에게 유품이라고 준다면 아마도 기겁을 하고 펄쩍 뛰며 버리라고 할 만한 넝마 조각에 불과한 물건들이다. 옷장 정리 때마다 버리자 하고 꺼냈다가는 못 버리고 다시 옷 장 속에 처넣어 모셔두는 내 모습을 보며 이 버리지 못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 해 본다.

 

   물건이든 마음이든 버려야 가벼워져서 천국도 가볍게 오를 수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거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이 물건들이 나에게 무슨 위미가 있을까.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가 뭐라 하지도 않을 텐데 못 버리는 마음, 이것이 욕심은 아닌데 아무래도 맘에 걸린다. 맘에 걸린다는 건 뭔가 반성의 여지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거슬러 13세기 살았던 프란치스코 성인은 무엇이라 가르치셨는지 살펴 보자.

 

  그는 44년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 버리는 연습을 철저히 하신 분이라 그분의 정신은 오늘 날도 살아남아 우리의 심금을 울릴 때가 있다. 그 분이 가르친 가난. 단순. 겸손. 의 가르침에서 버리는 연습이 가장 우선이다. 버리지 않고는 단순 할 수도 없고 버리지 않고는 겸손 할 수도 없고 더욱이 버리지 않고는 가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오늘날 가톨릭을 혁신하는 교황님도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교황님 이름을 정하셨을까.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으로 교회를 이끄시겠다는 뜻이리라. 물건 뿐 아니라 무엇에 집착하는 마음 버리기, 그것이 가난의 정신이다. 이미 먼저 세상을 떠난 분들에 대한 지나친 애정 집착 또한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마음 중에 하나일 것이다.

 

  3월의 습한 기운이 영영 우리 곁에 있을 것만 같아도 부활절을 앞뒤로 봄꽃들은 다투어 만개한다. 듀드니(메이플 릿지) 길을 운전하다 문득 벛꽃 나무 가지들이 무겁게 달려 핀 꽃가지들의 무게를 주체 못하고 휙휙 지나가는 자동차에게 천천히 가라고 손짓 하듯 가지를 흔들어 대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저리도 고운 꽃들도 때가 되면 아낌없이 언제 내가 예쁜 꽃이었던가 시든 꽃잎을 스스로 가지에서 떨구어 자신을 땅으로 내려놓는다. 꽃들의 자기 비움이다. 시들어 버린 자신을 버림으로써 다음 해에 다시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활이다. 맞다. 꽃을 다시 피우고 부활하기 위하여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13세기의 프란치스코의 영성으로 가지 않아도 하찮은 꽃들의 떨어짐을 보며 버리는 연습을 배운다. 또 다시 부활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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