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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봄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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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4-23 09:32 조회1,3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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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인 / 시인, 수필가(캐나다 한인문학가협회원) 

 

 

떠오르는 해가 매일 모두 다르듯 매 년 찾아오는 봄 또한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마치 새로운 연인처럼 다소곳이 고개 숙여 나타나거나 혹은 온 천지에 화사한 분내음을 풍기며 찾아온다. 더불어 약동하는 봄에 찾아오는 것이 또 하나가 있다. 마음속에 숨은 나만의 소망이 숨죽여 오롯이 피어나고 있다. 들녁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마음 속에 소망 하나가 움트며 나를 간질이고 있다. 겨우내 묵혀왔던 몸의 근육들과 혈관들 사이를 뚫고 어떻게든 나오려 아우성치며 꿈틀거리고 있다. 소망 하나가 대적해야 할 이 세상의 많은 것들과 싸우려 나오려 한다. 힘들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려 고개를 드밀고 나오는 녀석이 참으로 고맙기만 하다. 인생을 살다보면 기나긴 겨울처럼 어둡고 추운 터널을 지날 때가 있다. 그것은 때때로 골목 끝에 휘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처럼 우리에게 슬픔과 절망, 그리고 비통함을 안겨다 준다. 하지만 우리가 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음속에 간직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소망이란 어머니 뱃속에 잉태된 순간부터 함께 영양분을 받아 먹고 자란 나의 자아 (自我)이자 강한 태(台)의 생명을 똑같이 나누어 가진 세상에 둘도 없는 든든한 나만의 조력자이다.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이 너무나 탐스러워 그것을 보는 순간 무작정 그 구름을 쫓아간 적이 있었다. 학교가 끝난 후 모든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 엄마가 준비한 맛난 간식을 먹으며 받아온 숙제를 하기에 여념이 없던 시간에 나는 등에 책가방을 맨 채 구름을 쫓아 벌판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 하염없이 걸었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푸근하고 멋져보이는 뭉게 구름을 놓치기 싫어 계속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걷거나 달리기를 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 허기졌지만 그 구름을 친구로 삼고 싶은 오직 하나의 소망에 매달려 지친줄도 모르고 연신 발걸음을 떼놓았다. 커다란 솜사탕같기도 하고 눈사람같기도 한 그 구름은 내가 걸으면 다정하게 어깨 동무를 하여 주었고 손을 내밀면 하늘로 펄쩍 내달리며 나와 경주를 하였다. 어린 마음에 달려가 잡으면 그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내 곁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다. 해가 어렴풋이 서산으로 살포시 기울고 내내 쫓던 두 다리의 힘이 풀릴 때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구름은 나와는 절대로 친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나를 놔두고 그 녀석은 야속하게도 하늘 저 멀리로 흩어져 버렸다. 그 때의 허망함이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구름은 그저 구름일 뿐 내가 쫓는다고 해서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사라진 텅 빈 하늘을 보며 처음 깨달았다.  

 

소망이란 누구보다도 내 자신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꿈꾸고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터득하고 나로 하여금 실천하게 한다. 소망을 갖는 것은 뜬구름을 무작정 쫓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소망은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늘 나를 지켜보며 나와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손을 내밀어 나를 구원한다. 그것은 때로는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우게 하고 눈을 들어 현실을 바로 보게 하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리를 판단하게 한다. 그것은 내가 인생에서 참으로 어렵고 힘들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다시금 세상에 도전하게끔 나를 빼내어 준다. 마치 아무런 걱정없이 엄마 품에서 어리광부리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여 나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를 갖게 하거나 혹은 순수한 동심을 가졌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친구와 하교길에 따먹던 사루비아 꽃 속의 달디단 꿀처럼 내게 커다란 위안을 심어준다. 소망은 이렇듯 나를 도약하게 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한다. 소망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벗이요 나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스승인 셈이다. 세상의 여러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기도 하고 잘못된 유혹의 길로 들어서려는 나를 호되게 깨우쳐 주기도 한다. 소망은 온전한 순정을 갖고 절대로 나를 배신하려 들지 않는다. 노력하는 만큼 그 댓가를 반드시 손에 쥐어주게 한다. 약동하는 이 신선한 봄에 함께 찾아온 새로운 소망 하나를 마음에 품고 나는 힘차게 봄의 노래를 부른다. 누구든 소망 하나를 마음밭에 심는다면 가슴에서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정답고 흥겨운 소망의 노래를 살아가는 내내 들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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