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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싹 트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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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민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6-11 09:46 조회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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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민 자 / 캐나다 한국문협 

 

전철 안에서 mp3를 듣는다. 주머니 속의 뮤즈, 날렵한 시간 도둑. 나는 요즘 그에게 빠져 있다. 공원에 갈 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요즘엔 늘 그와 함께다. 요즈막의 나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징후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다른 만남도 당연히 줄였다. 그와 함께인 순간에만 본연의 나로 돌아와 있는 느낌이다. 

 

건너편 좌석에 눈을 감고 앉아있는 처녀도 귀고리 목걸이 대신 이어폰 줄을 늘어뜨리고 있다. 출입구 쪽 청년도 마찬가지다. 청바지 주머니에서 기어 올라온 케이블이 양쪽 귓바퀴 안으로 파고들며 사라졌다. 언플러그드(unplugged)에서 플러그드(plugged)로! 신인류의 반열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최신버전의 신무기를 빠르게 장착해가며 낡은 본체를 부지런히 업그레이드시켜주어야 한다. 

 

전자 의족이나 인공심장까지 이식하진 않았어도 현생인류는 사이보그로 변신 중이다. 간이나 쓸개는 빼 놓고 나와도 휴대전화를 두고나왔다간 큰일이라도 나는 듯 불안해 한다. 입술이 못하는 말은 엄지가 대신하고, 신의 계율에는 불복해도 네비게이터의 명령에는 군말 없이 순종한다. 전자문명에 감염되고 중독되었다 하면 붉은 피톨은 마이크로칩으로, 영혼은 나노 소자로 치환되어버리는 건가. 

 

낯을 익히고 용법을 파악하기만 하면 인간보다 빨리 친해지고 쉽게 정드는 게 기계일지 모른다. 기계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문명이 인간을 소외시킨다 하지만 소외당한 사람과 불평 없이 놀아주는 것도 기계다. 인종이 다르다고, 나이가 많다고, 부자가 아니라고 원칙 없이 내치는 법이 없고, 백 번 천 번 같은 일을 시켜도 불평을 하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는다. 감정도 융통성도 없는 기계라지만 기계야말로 때로 더 인간적일지 모른다. 

 

아날로그 인간에 부착된 디지털 신체, mp3는 청력의 진화다. 인간의 얼굴 중 가로로 재단된 눈과 입은 보기 싫고 먹기 싫으면 덮개를 닫고 지퍼를 채우면 그만이지만 세로로 부착된 코와 귀는 싫어하는 냄새나 듣기 싫은 소리도 속수무책으로 참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귀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소리도 여과 없이 견디어야하는 피동적인 장치만은 아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선별적으로 듣고 바깥 소음도 차단할 수 있는 양수겸장의 인공고막으로 동서고금의 악사와 가객을 언제라도 취향대로 불러들일 수 있으니 말이다.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이 천상의 눈물처럼 가슴으로 흘러든다. 허스키하면서도 애상적인 이 남자의 목소리는 슬픔조차도 감미롭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슬픔을 치유하고 위무하는 것이 기쁨이 아니고 슬픔이라는, 삶의 아이러니에 나는 안도한다. 기쁨이 표피적인 것이라면 슬픔은 보다 깊숙이, 진피나 피하조직 어디쯤, 아니면 뼛속 깊이 스며흐르는 것이어서 천천히, 아주 조금씩 분해되고 배출된다. 슬픔에 관한 한 시간만한 명약이 없긴 하지만, 질척거리는 눈물바다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허우적거리거나, 서럽고 유장한 가락을 샤워기처럼 틀어놓고 슬픔의 미립자들이 알알이 씻겨내리기를 기다려보는 것도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이따금은 유효하다.

 

음악에 취해 있는 동안 내 영혼은 고양된다. 아니, 물리적으로 공중부양된다. 육신이 해체되고 영혼만으로 채워지는 오롯한 실존. 나는 지금 이 귀에서 저 귀까지, 양쪽 관자놀이 사이를 수평으로 이어놓은 두개골의 윗부분만, 반구형의 울림통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눈높이 위, 높지도 낮지도 않은 허공을 투명한 해파리처럼 유영하는 느낌이라 할까. 

 

무표정하게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 모두 나처럼 철저하게 혼자인 타인들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달리고 있지만 서로의 존재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함께 있어도 다른 꽃을 피우고 다른 열매를 매다는 나무와 같이, 누구는 조용필을, 누구는 장한나를, 또 다른 누구는 안드레아 보첼리를 불러세워놓고 각자의 기억과 상상 속을 배회한다. 존재를 내면적으로 수렴시키기에 음악만한 것이 또 있을까. 도시라는 벌판을 숨가쁘게 내달리는 21세기 유목민들에게, 음악이란 경직된 심신을 이완시키는 긴장완화제요 불안을 해소시키는 신경안정제요 고통을 경감시키는 소염진통제다. 

 

서 있던 사람들이 많이 내려 벌목한 숲처럼 전철 안이 훤하다. 그새 앞자리엔 플러그드가 더 늘었다.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고 있는, 건너편 좌석의 남자를 바라본다. 도시살이에 시달린 표정없는 얼굴 위로 매연과 소음을 견디고 서 있는 도시 복판의 가로수가 오버랩된다. 가슴팍 어디에 링거병을 매달고 기사회생을 꿈꾸던 지친 나무처럼, 저 남자도 지금 가늘디가는 관을 통해 스스로 처방한 영양수액이나 문명의 해독제 같은 것들을 깊이깊이 흡입하고 있는 중이다. 

 

조는 듯 눈을 감고 있던 남자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들썩인다. 구두코가 가만히 움직거리고 입꼬리가 거짓말처럼 올라붙는다. 물 마른 그의 영혼에 봄비처럼 노래가 스며, 수액이 돌고 피돌기가 빨라지고 있는 것 같다. 조금만 기다리면 닫힌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고개까지 흔들거리게 될 것 같다. 약발이 먹히고 있는 건가. 마른 구근 같은 그의 머리 위로 푸른 싹이 돋아오르면 좋겠다. 경쾌한 음표처럼, 아지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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