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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 공동묘지와 메모리얼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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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재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7-15 18:40 조회2,5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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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리치몬드엔 묘지가 없다.한국에선 공동묘지가 마을 뒷산에 올라가 양지 바르고 전망 좋은 곳에 가면 줄줄이 열을 맞추어 서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양지 바르고 물을 볼 수 있는 곳엔 이미 오래전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묘지들이 있다. 특히 서울이나 경기도엔 왕릉과 유명재상들이 묘가 아주 좋은 자리에 자리하고 있다.매장의 문화에서 땅 한 평도 없는 서민들은 고인이 되어 버린 부모나 형제 상을 당하게 되면 슬픔도 슬픔이지만 현실적인 문제 장례는 어떻게 치를지 장례비용은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지 장지문제는 어떻게 해야할 지를 경정하게 된다. 그리고 결혼식의 축의금받듯이 조의금을 받기위해 많은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하게 된다. 물론 여유가 있어서 미리 장지를 준비해 놓고 가묘를 준비해 놓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허둥지둥하게 된다.나이가 많아서 사망하는 경우는 마음의 준비라도 하겠지만 요즘같이 교통사고나 암등의 병으로 인해 갑자기 사망하게 되는 경우 마음의 준비조차 못하게 된다.

 평소에 살때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조차 않다가 주변의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게 되면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조금은 생각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장례를 어떻게 지내는지 장지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 점이 생기게 되고 특히 한국이 아닌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을때가 많다. 평소엔 혼자 지내도 상관이 없지만 상을 당한다든가 하는 큰일을 당하게 되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걸 깨닫게 된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만 있다면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 크게 신경쓰지않아도 모든 것이 해결이 된다. 물론 조문객이 없어 쓸쓸한 장례를 치른다고 해도 말이다.

 

 배우자의 떠남이라든가 부모의 상을 당했을때 당사자보다는 주변에서 일을 처리해줄 제3자가 필요하다.당사자는 슬픔에 젖어 울기도 바쁘기 때문이다.그래서 한국에서는 상조회에 가입해서 상조회에서 일을 처리해준다든지 아니면 병원 영안실에 연계된 장례회사에서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상을 당하게 되면 평생에 처음 당하게 되는 많은 과정들이 복잡하기도 하고 알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어린 시절 같이 살던 작은 할아버지의 죽음과 그 장례과정을 지켜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상여가 다리를 지날때마다 상여는 움직이지 않고 상주가 봉투를 내밀어야 움직이는 것을 기억한다.그때도 슬픔에 젖은 사람들에게 꼭 그래야만 할까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생은 처음인 것 투성이다. 처음으로 걷고 처음으로 학교를 가고 처음으로 졸업을 하고 처음으로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아이들의 탄생을 보고 그리고 처음으로 상을 당하기도 하고 그중에 가장 힘든 일이 상을 당하는 일이 아닐까. 인생은 처음이라서 실수 할 수 있다. 하지만 되돌릴 수는 없다. 다른 것은 혼자 할 수 있다. 비록 쓸쓸할지라도 하지만 상을 당하고 혼자인 것은 너무도 아픈 일이다.

 

 어린시절 우리들 놀이터중에 하나가 묘지였다. 묘지에 잔듸씨를 받아 오라는 학교 숙제를 하던 추억과 묘지에 할미꽃이 그리 슬플 수가 없었던 기억. 엊그제 볼일이 있어 들린 버나비에서 도로옆에 메모리얼 가든을 그냥지나칠 수는 없었다. 지난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지인의 장례식에 왔던 일이 떠오르고 일을 마치고 들려서 인사라도 하고 가자는 생각에 일을 마치고 들려 그지인의 묘지를 찾다가 못찾았다. 묘비가 없는 것일까? 내가 길치여서 못찾튼 것일까? 사무실에 가서 알아 볼까하다가 여기까지 왔으니 알거야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지난해 장례식때의 생각에 장시 고인을 떠올리고 명복을 빌며 먼산을 보면서 고인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당시에 느꼈던 생각은 만약에 내가 잘못된다면 준비가 없는 가족들은 얼마나 당황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에 느꼈던 교회에 다니면 교회 교인들의 위로를 많이 받고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천주교는 천주교에서 모든 장례과정을 주관해서 상주가 슬픔에 빠져 있는데 장례까지 이것저것 신경써야 하는 것을 해결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천주교로 다시 돌아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던 일들. 그리고 장례도우미로 써리의 한 메로리얼 가든에 취직을 하려고 면접까지 본적도 있다.30여년을 조리사로 일한 경력이 오히려 악족건이었던 당시 상황 결국 장례도우미로 장지인 묘지를 팔고 장례식을 원만히 치르도록 도와주려던 계획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비행기표를 사서 갔는데도 이미 장례를 치르고 난뒤여서 사모제까지 맏상주로 상복을 입고 밤낮없이 곡을 하다 지쳐서 방한쪽에 잠깐씩 눈을 붙이던 일과 할머니가 돌아가서서 장지에서 처음 만난 성이 다른 사촌?형이 남의 장지에 상복을 입고 오면 안된다던 말이 아주 오래 되었는데도 기억이 뿌리를 내리고 떠나지 않는다.염을 하고 널에 입관하기전에 삼베로 둘둘 싸여있던 작은 할아버지... 그리고 이민온 후론 친척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해 더욱 가족의 끈이 멀어 진 것은 아닌가 싶다. 장례건 결혼식이건 일종의 품앗이 같은 것인데 이민생활이다 보니 친구는 물론 친척의 경조사를 참석하지 못해 더욱 경조사가 서툴고 어색한 것이 많다. 자주 장례식에 참석하면 장례절차 같은 것도 잘 알 것인데... 결혼식도 자주 참석하지 못하다 막상 내 결혼식에서 실수아닌 실수를 하게 된적이 있다.음식을 못해도 자주 먹어본 사람은 음식에 대해서 소상히 잘 알듯이 말이다. 어머니 장례에도 가지 못하고 만 어려운 이민자의 삶.

 

 무서워서 밤에 지나가기 힘든 한국의 공동묘지엔 흰 천만 나부껴도 가슴이 오싹한 수많은 귀신이야기와 함께 밭가장자리에 모셔진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 뵙지 못하는 이민자의 한처럼 아프고 쓰린 고국에 묘지와 차를 타고 가다가도 아니 메모리얼 가든 인근에 산다면 산책하듯 나와서 산사람과 죽은 사람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캐나다의 묘지가 비교된다. 물론 이곳에도 닭장같은 명패만 다닥다닥한 모습도 있고 장지에도 살아서 계급사회같은 큰묘지와 큰비석 작은 묘비와 묘비도 없는 묘지등이 존재하지만 함께 도시에 살아 가는 영혼들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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