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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말 장구 맞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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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원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7-19 13:55 조회1,8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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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현 / 캐나다  한국문협

 

 

 또 아내와 마찰이 생겼다. 요즘 여러 가지 서로 긴장된 상황으로 예민해 있던 차에 내가 던진 말이 거슬렸나 보다. 

 

아내는 요즘 POP글씨를 배우고 있다. 예쁜 글씨로 좋은 글을 써놓고 보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고 하더니 가까이 있는 문화센터에 등록을 했나 보다. 이제 두 번인가 나갔는데 오늘은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고 좋아한다. 내게 수업시간에 썼던 글씨를 보여주면서 집에서 예습을 하고 갔더니 훨씬 잘 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교본대로 획 긋기 연습을 집중적으로 많이 하니 손의 움직임도 부드러워지더라고 했다. 

 

그 말끝에 내가 당연히 그렇지 않겠느냐고 했다. 붓글씨도 획 긋기부터 시작하지 않더냐고 말이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당신은 왜 남의 말에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김빠지게 말을 하느냐는 것이다. 당신이 모르는 것은 뭐가 있느냐고 따졌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화낼 만도 했다. 딴에는 처음 해 본 일인데 칭찬까지 들어 한껏 기분이 우쭐한 상태가 아닌가. 그냥 맞장구를 쳐주면 될 것을 예습도 하고 집중적인 연습도 했으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응대를 했으니 김빠지고 맥 풀려 기분이 상할 만도 하다.

 

그렇고 보니 나도 그런 경우를 심심찮게 경험했던 것 같다. 진지하게 내 아는 정보를 알려주려는 것인데 상대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거나 반응이 별로일 때 나도 매우 기분이 나빴었다.

 

사람이란 말을 하는 것은 쉬워도 들어주는 것은 어렵다고들 한다. 사실 듣는 것이 쉽고 하는 것이 어려울 텐데 그 어려운 일은 쉽게 생각하고 쉬워 보이는 일은 어려워한다. 정신과 의사의 최상의 진료방법은 그저 환자 말을 많이 들어주는 것이란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되 가끔씩 그래요, 그렇군요, 그래서요 하고 응대만 해주면 상대는 몇 시간이고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서 실컷 얘기를 해놓고는 선생님 때문에 다 나은 것 같다며 대단한 의사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해인 수녀의 시에 ‘잘 사랑한다는 것’이라는 시가 있었다. 

 

  

 

오늘도 잘 들으라고 저를 초대하시는 주님/좀 더 잘 듣는 연습을 하겠다고/매일 새롭게 결심하지만/자주 실수하고 실천이 어려운 저에게/부디 잘 듣는 겸손함과 참을성을 주십시오/주님과 이웃을/자연과 사물을/자신이 따라야 할 마음의 소리를/예민하게 들으며 깨어 있는 사람/그래서 더욱 사랑을 넓혀가는/아름다운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 이해인 산문 집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중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말 장구와 맞장구를 잘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말 장구는 상대가 하는 말에 대해 동조하거나 부추기는 말이고 맞장구는 ‘그래 맞아’ 하며 덩달아 호응해 주거나 동의하는 것인데 적당히 말 장구를 해 주고 필요에 따라 맞장구를 쳐주면 어떤 사람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찌 그렇게 말 장구 맞장구 쳐 줄 일만 있던가. 아니다 라고 목소리 높이고 그렇지 않다고 화를 내는 일도 많은 게 우리 사는 세상 아니던가. 

 

사실 아내에게도 그랬다. 당연한 것일지라도 참 잘했다고 정말 당신이니까 그만큼 해낸 거라고 부추겨주고, 칭찬까진 못 해주더라도 그랬느냐고 자연스레 말 장구만 쳐 주었더라도 아내는 더욱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돈도 안 들고 힘도 들이지 않는 일인데도 뭐 그게 그리도 어렵다고 아니 해 주어서 모처럼 좋은 기분 망치게 했는가 생각하면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이만큼 나이가 들었으면 좋은 일 나쁜 일에도 가볍게 반응하기 보다는 한 박자씩 늦어지더라도 무게 있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이 바뀔 만한 일이 어디 말 장구 맞장구로 일어나겠는가. 그러니 웬만한 일에는 그러자고 그러라고 해 주는 것이 좋을 것도 같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면 아내의 어떤 말에도 말 장구와 맞장구를 쳐주어야겠다. 그러면 아내의 입이 함박만큼 벌어질 것 아닌가. 부부간에도 때론 이만한 인위적 이벤트는 필요할 수 있다. 그게 사는 맛을 나게 해 주고 가정의 평화를 만들며 사랑의 힘도 불러일으킬 게다.

 

‘자신이 따라야 할 마음의 소리를 예민하게 들으며 깨어 있는 사람 그래서 더욱 사랑을 넓혀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바로 말 장구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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