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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스토리’라는 카페에서 보내는 어느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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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의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7-26 15:30 조회1,7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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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라는 카페에서 보내는 어느 아침 

 

                                            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까딱까딱 자꾸만 불이 꺼졌다 켜졌다, 그리고 또 다시 꺼졌다 켜졌다. 나는 작게 눈살을 찌푸려 거북함을 뿜어댔다. 정확하지만 아주 미약하게. 그래서 그 누군 가에게도 닿지 않았나 보다. 여전히 불은 꺼졌다 또 켜진다.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이는 금발의 검은 뿔 테 안경을 낀 중년의 여인, 목청을 높이며 친구들에게 묻는다. 

 

“이건 어때? 그럼 이건 어때?”

 

한번 물었으면 되었을 것을 묻고 또 묻는다. 갓 애 티를 벗은 보드라운 피부의 어린 점원은 눈동자의 떨림 외에 미동조차 없다. 눈을 제외하면 마치 정지화면과 같다. 당황한 듯 그 눈은 나와 그 여인 사이를 끊임없이 진동한다. 나는 가벼이 신호를 보낸다. 이번에도 정확하지만 미약하게. ‘괜찮아요.’ 점원이 알아들었을까는, 잘 모르겠다.

도심 안에 남들이 잘 지나지 않은 구석진 거리에 작은 카페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금 나는 조용히 따뜻한 커피 한잔에 얇은 매거진을 들어 조용한 아침을 즐기고 있다. 약에 취한 사람들, 정신에 병이 든 사람들을 위해 지워진 공공 맨션 일층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공간이라나. 그래서 사람들은 좀처럼 발길을 하지 않는 곳. 이곳은 나만의 보물섬 같은 곳이다. 살아오며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경험을 나는 이 작은 카페에서 만나고 작게 웃기도 때론 작게 짜증이 나기도 한다. 아마도 오늘은 후자일 듯하다.

카페 앞에는 종종 홀로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터를 잡고 있다. 그 담배가 담배일지 약일지는 잘 모르겠다. 대마초 따위로 벌 받지 않는 나라에서 길가에서 쉬이 얻은 어떤 건초더미일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누구누구는 냄새를 맡아 구별한다는데 냄새에 무감한 나에게 대마도 담배도 모두 익숙해지지 않는 그저 좀 더 역한 냄새다.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길은 그래서 늘 숨을 참는 시간이다. 내쉬지도 들이마시지도 않은 채 종종 걸음으로 들어와 바로 후우 하고 깊이 내뱉는다. 

숨을 참으면서까지 이 곳을 찾아오는 건 바로 그 덕분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커피는 스타벅스에서나 마실 수 있는 이곳에서 사람들과 떨어져 커피 향과 함께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곳은 따로 찾기 어렵다. 한국에선 쉬이 보던 핸드 드립을 전문으로 하는 소박한 커피숍들이 여기서는 그렇게나 귀하다. 좀 오래 걸리고, 좀 더 비싸도 그곳에선 작게 읊조리듯 이야기 하는 사람들과 오며 가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게 된 점원들 덕에 축축 처지던 아침의 기운을 모두 다 털어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던 생활이 조금은 그립다. 

스토리라고 하던가, 어울리지 않게 고전적인 이름을 쓰는 이곳을 멀리 돌아 걷고 걸어 찾아와 보내는 시간은 한국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는 나에게 주는 하루 한 번의 선물이다. 누구를 만나 수다를 떨며 맛난 브런치를 먹을 일 따위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곱게 차려 입고 삐딱삐딱한 하이힐을 신고 거리를 나설 일도 없는 이곳에서의 유일한 사치다. 부스스한 머리를 질끈 묶고 매일 입는 보푸라기 잔뜩 붙은 트레이닝 바지에 반질한 운동화를 신고 산책하듯 공원을 가로질러 출근하듯, 그렇게 오늘도 찾아 들었다. 사람이 찾지 않아 조용하리라 그런 기대를 품고.

그렇지만 오늘은 내가 꿈꾸던 평화로운 아침은 기대한 줌 없는 모래처럼 모두 손가락 사이로 사르르 빠져 사라져간다. 너무 즐겁네, 카페가 조금 어둡네, 내 마음에 안 드네 따위로 하하 호호 하는 무리네들의 입김과 그들로 인해 점멸하는 조명등 때문에 퍽 소란스럽다. 타인의 일 따위 알 바도 아니고 크게 신경 쓰지도 않던 내가 고개를 돌려 그네들을 쳐다볼 정도로 참으로 강렬한 사람들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이 맨션에 기거하는 아픈 정신의 사람들일까, 그들을 돕겠다 온 봉사자들일까, 혹은 지나가다 조용한 카페를 쫓아 흘러 들어온 나 같은 사람들일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눈으로 매거진을 훑으며 귀로는 한편의 소리를 찾아 더듬듯 신경을 흘려 보낸다.

까르르 소리, 들뜬 소리, 톤이 하나쯤은 더 올라간 대화는 이들이 서로 낯선 이가 아님을 알린다. 서로들은 너무 친밀하고 가까워 카페 안 이질적인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움터 자리한 듯하다. 그들을 제외한 점원과 나는 이공간의 풍경을 자아내는 저들을 그저 관조한다.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침입할 수도 없는 저들이 사뭇 위협적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어떠했더라. 내가 ‘이래서 안 된다니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무뢰배들에게 어떠했던가 가만 생각해보니 그때도 여전히 나는 철저히 방관으로 일관했고, 포기를 하고 금세 자리를 떴다. 비싸게 주고 산 핸드 드립 커피를 채 마시지도 않고 일어나 기분이 좋지 않음을 점원에게 표출해대거나 일회용 컵에 옮겨 담으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하며 급히 자리를 피하곤 했다. 

다만 퍼스널 스페이스의 중요성을 그리도 강조하던 이 나라 이 땅에서 예상치 못한 경험에 조금은 놀랐는지도 모른다. 잠시 뜸을 들여 어찌 행동할지 고민을 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내가 지극히 편견에 가득 차 금빛의 머리 색을 가진 사람들은 무례하지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몇 달 채 되지 않은 타향살이에 바로 그것이 얼마나 나태한 사념에 불과한 것인지 깨달아버렸다. 

보던 매거진을 나는 탁 소리 내어 내려놓고, 계산대로 가서 일회용 컵에 담아 달라 그리 일렀다. 불행히도 종이컵이 없는 친환경적 카페란다. 먹던 커피를 반납하든 카운터에 버려두고, 매거진을 돌돌 말아 고고한 부채들 잡아 쥔 듯 들었다. 눈을 내리깐 채 우아하게 하지만 성큼성큼 그네들 옆을 지나며 ‘참으로 예의가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들이군요.’ 라는 메시지를 눈에 담아 정확하지만 미약하게 다시금 보냈다. 물론 그네들이 알는지는 나는 잘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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