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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맏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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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8-02 14:00 조회1,3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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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진 양/ 캐나다 한국문협 

 

    김영 김씨 가문에 맏이신 아버지와 의령 남씨 가문에 맏이신 어머니로부터 나는 맏딸로 태어났다.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할아버지(미혼이신 할아버지의 동생) 그리고 삼촌들과 고모들, 이렇게 대가족에 첫 아이로 태어나서 온 식구의 사랑을 혼자 흠뻑 받으며 자랐다. 적어도 오 년 뒤에 여동생이, 칠 년 뒤에 어른들께서 무척이나 기다리시던 종손인 남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유교 집안의 종가 댁에 첫 남자 아이가 태어난 것은 나의 부모님뿐 아니라 가족에게 크나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남동생이 8개월 됐을때 6.25 전쟁이 나면서 집안이 큰 어려움에 처했다. 전쟁 통에 아버지를 잃은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졸지에 남편을 잃고 혼자 되신 어머니의 심경이 어땠을는지 그 때는 내가 어려서 어머니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피란 생활을 하면서 맏며느리신 어머니는 남편 없이 층층시하에 대 식구의 살림을 총괄해야 하셨으니 얼마나 애닯고 서글프셨을까! 철이 늦게 든 내가 맏며느리가 되어 생각하니 그때 삼십 대 초반의 어머니는 가족 중에 누구랑 속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하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매우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조부모님께서는 살아계신 동안 어머니에게 또 우리 삼 남매에게 아버지 없이 자란 아이들 같지 않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대학 교육까지 다 시켜주셨다.

 

    충청도 양반집의 맏딸이셨던 어머니는 매우 순종 형이고 인내심이 대단한 분이셨다. 맏이인 나는 어머님의 성품과 조부모님의 인자하면서도 엄격하신 가정교육 덕택에 지금의 내가 된 것 같다. 거스르기를 싫어하고, 참아서 될 일이면 참고, 순종하며 항상 사촌형제들을 통 털어 큰누나, 큰언니 노릇하면서.

 

    결혼할 나이가 돼 가니까 어느 날 어머니께서 무슨 말씀 끝에, “형제들 있는 집에 시집가려면 맏이한테 가는 게 차지보다 낫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4대가 한 지붕 밑에 살면서 얼마나 힘이 드셨을 텐데도 맏며느리 역할 담당이 보람도 있으셨던 것 같다. 아마도 어머니 세대엔 그랬나 보다. 대학생이 되고 교회에 다니면서 한 진실한 청년을 만나게 됐는데 그 사람이 맏이임을 알고 그 자리를 피하려 했으나 여러 해 후에 무슨 인연인지 다시 만나게 되어 나주 정씨 집안에 큰며느리가 되었다. 어머니의 특수 상황에서의 그 자리와는 많이 다르지만 큰며느리임에는 틀림 없다. 결혼할 때는 내가 밴쿠버에 이민으로 와 있었고 남편 될 사람은 미국으로 유학 가서 학위 마친 후에 이곳에서 다시 만났기 때문에 신혼생활이 아주 단촐 했다. 그러나 맏이는 맏이라 몇 년 뒤에 시누이, 다음으로 시동생 내외가, 그 후에 시부모님도 모셔와서 함께 살게 되었고, 친정 여동생도 오게 되어 맏이 노릇을 제법 하고 살았다. 맨손으로 시작한 외국 생활이라 모든 것을 아끼고 매사에 절제하면서……

 

    우리의 맏이를 장가들여 맏며느리를 맞은 것도 어느새15년이 지나고 손주가 둘이다. 옛말에 사돈 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고 한 말이 과연 그런 건지, 지역적으로 사돈네와는 거리가 있어서 별 문제 없었다. 그러나 문화적 시대적 차이로 지금의 젊은이들로부터는 맏이라고 해서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저 우리의 대를 이을 손자와 손녀를 안겨 준 것만으로도 그들의 몫을 다 했다고 고마워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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