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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어느 가족의 오래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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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8-16 13:51 조회1,6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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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최근 개봉한 영화 <어느 가족>에 관한 인터뷰 기사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면서, 아버지가 되려는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의 시간이나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 라고 이야기 했다. 

    그는 많은 작품들에서 주로 가족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영화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가족들의 모습들을 보며 가족의 대한 의미와 나의 가족들을 떠올린다. 지금 이곳에선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있는 한 가족으로 남편과 아버지이지만, 한국에선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는 막내로 대가족의 일원 이기도 하다. 최근 사업차 한국에 자주 들르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멀리 캐나다에 사는 이유로 명절 때나 어머님 생신, 조카들의 결혼식에도 참석을 하지 못하고 축하의 말만 보내야 했다. 집안 행사 때마다 나의 빈자리가 죄송스럽고, 한국에 있는 다른 가족들의 마음과 내게 늘 아쉬움을 남게 했다.

 

   이번 한국 방문 때엔 큰 누님이 새로 이사를 하면서 집으로 온 가족들을 초대 하였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하고, 무료 가족사진 촬영권으로 사진관에서 가족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를 비롯한 5남매가 흰 셔츠에 청바지로 갈아입고 사진 촬영을 했다. 카메라 렌즈를 향해 함박 웃는 모습으로 한 컷 사진이 만들어졌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가장 잘 나온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편집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다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이었다. 사진 속 얼굴은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했다. 얼굴에 담긴 주름과 하얀 머리, 넉넉한 뱃살은 인생의 깊이와 세월의 무상함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 날 저녁, 어머니께선 옛날 앨범에서 오래 전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보여주셨다. 색이 바랜 흑백으로 그 때의 기억과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일한 사진이었다. 아마 내가 태어난 지 백일 째 되던 날로 기억한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어머니와 나를 안고 계신 아버지, 아직 애띤 모습에 어린 티가 그대로 남아 있는 형님들과 누님들이 옆에 서 있었다. 사진 속의 아버지 나이를 훨씬 뛰어 넘어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이지만 그 때의 시간과 공간은 사진 속에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았다. 가족 사진은 추억 속의 기억들을 하나 둘씩 끄집어 내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당시엔 흑백 사진처럼 여러모로 부족하고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매일 5남매가 북적거리며, 서로 부대끼면서 바쁘게 보냈던 일상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추억 속에 여러 장면들을 떠올렸다. 화사하게 핀 꽃들을 볼 수 있는 봄날, 학교에서 간 소풍에서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싸주신 김밥과 과자랑 음료수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생일이나 졸업식 등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먹을 수 있었던 짜장면처럼 요즘엔 흔하게 먹을 수 있던 먹거리도 그 땐 먹기가 쉽지 않았다. 한여름엔 온 가족이 더위를 피해 대청 마루에 이불을 깔고, 큰 모기장안에서 다 함께 잠을 청했던 기억이 생각난다. 모기장 밖으로 보인 밤하늘과 옥상에 걸린 초승달은 한 편의 동화 같았다. 가을엔 온 가족이 집에 있는 모든 미닫이 문들을 빼어다가 새롭게 문풍지를 발랐다. 손가락으로 낸 구멍과 노랗게 바랜 옛 문풍지를 떼어 내고, 빳빳하게 풀 먹인 새로운 한지로 바꾸었다. 한 겨울엔 따뜻한 아랫목이 있었지만, 우풍이 세었던 한옥 집 방 안에선 이불 속에서 고개를 내밀면 코가 시릴 정도로 추웠다. 한 밤중에 일어나 불이 꺼지지 않게 연탄을 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봐도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았지만 정서적으론 행복했던 시간들 이었다. 그 밖에도 이런 저런 기쁨과 슬픔의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직도 가족끼리 한데 모이면, 옛 기억 속에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그만큼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냈기에 늘 그립고 생각난다. 아버지께서 돌아 가시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도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는 한 마디였다. 가족이 항상 힘이 되어 주지 못하고, 때론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하지만 가족들이 함께 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머니가 거실에 새로 찍은 가족사진 액자를 갖다 놓으셨다. 48년 전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처럼 여기에 우리 가족의 행복한 순간이 들어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야기처럼, 함께 했던 우리 가족의 평범한 일상의 시간과 공간들이 다시 오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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