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강의 손거울] 화장실에 갇히면 알게 되는 일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LIFE

문학 | [그레이스 강의 손거울] 화장실에 갇히면 알게 되는 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그레이스 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8-16 13:55 조회1,840회 댓글0건

본문

 

 

변기에 앉아서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이며 낯선 땅에서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잃지도 않았을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나서 다시 찾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쓰면서 노력을 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강변했던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여행'이란 책에 나오는 구절을 보면서 내가 이스탄불에 살려고 가기 전에 답사여행을 갔던 첫번째 터키 방문에서 느낀 마음과 어쩌면 그렇게 똑 같은지 무릎을 쳤다.  설령 그렇다해도 여행을 포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 우리 몸의 막힌 기운을 열어주는 것이 여행이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 듣고는 그 말을 마음판에 새긴 채 여행을 하곤 했다. 

 

막상 여행에서 돌아오면 기가 더 막혔는지 너무 피곤해서 여행한 날 수 만큼 쉬어야만 몸이 풀릴 것 같은 여독도 느끼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날 설레는 기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이 또한 여행이다. 이스탄불하면 듣기만 해도 멋진 콘스탄티노플이란 이름이 동시에 떠 오른다. 천년의 고도이자 수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고 지금도 묻혀있는 도시이다. 터키 농부가 자기 밭에서 땅을 갈다가 유물이 나오면 발굴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다시 흙으로 덮어 버린다든지 해저터널을 뚫다가 바다 밑에서 돌덩어리 같은 건축물이 나오면 피해서 할 지 파내야 할지를 의논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공사기간이 늦어지는 통에 공사비용이 더 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과장도 있겠지만 그만큼 오래된 도시답게 땅 속에 묻혀있고 쌓여있는 유물과 유적이 많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이스탄불의 끝자락은 유럽에 속해있고 나머지는 아시아에 위치한 특이한 지형을 이유로 EU에 가입하려고 EU에서 요구하는 기준의 인프라를 개선하고 정비하면서 노력을 했건만 유럽은 여러 이유를 들어서 터키를 회원국으로 받아주지 않고있다. 자동차 번호판에도 한쪽 면은 EU 표시를 하려고 파란 공간을 남겨 놓았는데도. 

 

음식은 또 어떤가? 식량을 거의 자급자족할 정도의 곡창지대이면서 헤이즐 넛의 세계 총 생산량의 40%를 생산하고 터키의 딸네 집에 놀러온 친정 어머니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먹다남은 밀가루를 가져갈 정도로 그 밀가루로 만든 빵맛이 기가 막히다.  빵이 맛 없기로 치면 미국이나 캐나다가 손꼽힌다. 그것도 슈퍼에서 사는 식빵이나 햄버거빵은 뻣뻣하기가 나무등걸이 차라리 나을 정도로 맛이 없다. 그러나 터키의 빵은 어디서 사든 다 맛이 있고 슈퍼에서도  직접 구운 빵을 팔기 때문에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가면 따끈따끈한 빵을 살 수가 있어서 그날도  남편과 둘이서 소풍가는 애들처럼 신나게 콧김을 뿜으며 슈퍼에 갔다.   

한국사람들이 꽃빵이라고 부르는 둥그런 모양의 빵을 오븐에서 커다랗고 긴 나무주걱으로 떠서 주는 것을 트레이에 담기도 전에 두 개를 사서 종이봉지에 담았는데 숙소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려서 화장실에 가면서 남편이랑은 건물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이층의 구석에 있는 기도실을 거쳐서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려는데 화장실 문이 안 열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돌리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자켓을 벗고 본격적으로 화장실 탈출작전을 감행하려는데 갑자기 해리슨 포드의 리즈시절 영화인 'WITNESS'가 생각나면서 다행이 아래 위로 뚫린 문이라 아래로 나갈 수 있나 보니까 영화에서는 어린아이라서 가능했겠지만 나는 어림도 었었다. 문을 두드리며 '헬프 미'라고 외쳐도 보고 '매니저'라고 소리쳐 보았지만 여자들이 웅성거리기만 하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땀나는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가 밖에서 문을 열어주어서 나와보니 화장실 한가득 히잡을 쓴 여자들이 근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영어를 하는 여자매니저가 친절하게 문을 여는 법을 알려 주는데  그 당시에는 귀에 들어 오지도 않고 나중에 터키 아파트에 살면서 비로소 그 무시무시한 열쇠법을 알게 되었다. 삼중 키에다가 안에서 열쇠를 꽂아 놓으면 밖에서 아무리 열쇠로 열려고 해도 열 수 없다는 것 까지도. 

 

캐나다에서는 삼중 키는 커녕 이중 키도 없고 한번 돌리면 열리는 열쇠구멍을 어떤 때는 의심스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할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데 그나마도 어떤때는 잠그지도 않고 잔 적도 많았다. 그러다가 삼중 키를 만났으니 마치 숲속에서 원숭이가 까불다가 코끼리를 만난격이랄까?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슈퍼 입구에 오니 남편은 남편대로 나를 찾느라고 다니다가 저 쪽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뛰어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고 남사스러워서 남편 품에 안기지는 않았지만 심봉사가 눈을 떴을 때 이렇게 감격했을까 싶을 정도로 생환의 뿌듯함이 밀려왔다. 내가 터키에 간다니까 1980년대에 터키에 갔다 온 친구가 선배로써 충고한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여자들이 터키에서 실종되면 창녀로 팔려간다고. 다시 말해서 인신매매가 있다는 말이었는데 화장실에 갔다가 없어지기야 하겠냐 마는 요즘처럼 여자 혼자 여행을 많이 하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현지인들이 여행객에게 친절하다해도  언어, 문화, 생활, 종교가 다른 곳에서 사고가 안 생기면 0%이지만 일이 터지면 100%이니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조심한다해도 나처럼 화장실에 갇히는 '망칙한 터키여행' 같은 경우도 생기지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56건 3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