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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남편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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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8-23 14:24 조회1,2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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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옥/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열린 남편의 고등학교 졸업 50주년 기념행사에 같이 참여한 적이 있다. 행사 첫날에 정기총회가 삼성역 인터 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하모니볼룸에서 있었다. 한국 방문 때에 자주 만나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남편에게 그야말로 50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는 동급생 친구들도 있었다. 예전의 특징이 얼굴에 그대로 있어서 비록 주름이 생기고, 체중이 좀 늘고, 머리가 빠지거나 희어졌어도 반가이 알아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어떤 친구들은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 가르치셨던 스승들도 몇 분 정기총회 행사에 초대하여 참석하셨다고 한다. 남편은 한 명씩 악수하며 먼저 알아보고 이름을 대기도 하며 인사하였다. 도중에 어떤 사람을 전혀 알아볼 수가 없어서 “너는 누구지…?” 하니까 옆의 친구가 꾹 찌르며 “이분은 선생님이셔” 하여 너무도 죄송하였다고 한다. 사실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세월이 50년이 흘러가니 모두 다 나이 들어 늙고 머리 희어지고 주름살이 있게 되었으니 차이가 나지 않게도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모두 나이든 할아버지들인데, 서로들은 “너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하면서 기뻐하며 반가이 만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정기총회 후에 오락시간이 있었는데, 남편의 동창들보다 4년쯤 선배 되시는 분이 사회를 보셨다. 화면에 사자성어와 격언들을 띄워 보여 주는데 “인명재천”이 아니라 “인명재처”라고 하시며, 주요 골자로 강조하시기를 각자 부인에게 잘해 주는 것이 앞으로 살길이요 행복해지는 비결이라고 하시어 모두 폭소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머리가 가장 많이 희어진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여 나의 남편도 앞으로 나갔고 모두 4명이 나와서 경합을 하였는데, 남편의 뒤 머리 부위에는 아직 검은 머리가 많아 우승하지는 못했다. 대부분 동창은 은퇴하여 집에 있는 분들도 많았으나, 아직도 사업을 하거나 직장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있어, 머리를 검게 염색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어서 머리가 온통 희게 된 분들은 많지 않았다. 머리가 가장 많이 빠져 머리표면이 가장 빛이 나는 사람을 뽑는 경합도 있었다. 나이 들어 동창 모임에 참석하니 경합하는 조목이 흘러간 세월에 늙은 것에 관한 것들이라 웃으면서도 씁쓸한 마음에 슬퍼지기도 하였다. 

우수한 중, 고등학교에서 6년간 반장을 하였고 좋은 대학을 나온 남편은 참으로 머리가 우수하고 기억력이 좋았다. 남편이 나에게 강조하는바 학생 때에 공부도 잘하였고, 영어 노래의 가사도 많이 암송하여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자타가 공인하는 인재였던 남편이 노화되는 겉모습과 비례하여 순발력, 기억력 등도 노화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인간의 정신 능력은 20대 초반에 정점에 이르렀다가, 20대 중반 이후부터 뇌세포가 감퇴하기 시작하여 추리력, 생각의 속도, 공간 시각, 인지 능력이 쇠퇴한다고 한다. 

하긴 남편의 자동차 운전 실력, 주차하는 실력도 젊을 때보다 떨어진 것을 보게 된다. 젊을 때는 앞으로나 뒤쪽으로나 단번에 자동차를 주차 공간 중앙에 똑바로 주차하였는데, 요즈음에는 한 번에 중앙에 똑바로 주차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다시 자동차를 빼서 똑바로 주차해 놓아야 옆의 차들이 우리 자동차를 다치고 갈 확률이 적다고 부탁을 해도 많은 경우에 남편은 그 정도는 되었다며 다시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우리가 참여하는 남편 고등학교 동문 걷기 모임에서 같이 걷는 부인들에게 나의 남편이 주차장 공간에 똑바로 주차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다시 똑바로 주차하라고 해도 듣지 않는다고 호소하였다. 그분들도 모두 이구동성으로 남편들의 운전 실력이나 주차 실력이 젊을 때 보다 저하되었다고 동감하신다. 그 중 한 선배 부인께서는 남편이 잘못된 주차를 고치려고 다시 주차하면 오히려 처음에 주차했던 것보다 더 나쁘게 주차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신다. 또 다른 선배 부인은 남편이 더 잘 주차하려고 자동차를 뺐다가 다시 주차하나 원래 주차했던 잘못된 위치로 그대로 주차된다고 하신다.

모두 젊을 때는 잘하던 것들이 나이 들어 노화되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력이 떨어지게 됨을 보게 된다. 대체로 남편들보다 나이가 어린 부인들이 이제는 더 계산도 잘하고, 순발력, 기억력이 더 좋기도 하니, 주도적으로 선도하며 살아온 남편들이 부인들과 위치가 바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이 들면 남편이 부인에게 잘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유머도 생기는 것 같다. 나이 많은 남편들보다 젊은 부인들이 때로는 더 똑똑하고 지혜로워 보이기도 하겠으나, 흘러가는 세월에 아내들도 역시 남편 따라 노화되고 있으니, 남편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없겠다.  

젊은 날부터 열심히 일하며 아내와 자식을 위하여 살아온 남편의 희생과 사랑을 생각하며,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듬직한 버팀목이 되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오랜 친구로, 반려자로, 돕는 배필로 살아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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